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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녹둔도 잃어버린 땅 역사채널e

 

녹둔도 잃어버린 땅 역사채널e

 

녹둔도 잃어버린 땅 EBS 역사채널e

 

녹둔도(鹿屯島)라는 섬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함경북도 경흥 부근 두만강 하구의 지류인 녹둔강을 끼고 있던 작은 섬인데, 사슴들이 모여사는 언덕처럼 보여서 녹둔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태조가 개척한 후 5백여 년간 우리 선조들이 거주했던 이 녹둔도가 지금은 러시아 영토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남들은 다른 나라 땅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뺏어가는데, 우리는 언감생심 남의 것을 뺏기는커녕 제 것도 못 지켜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EBS 역사채널e에서 간도와 더불어 장차 통일한국이 되찾아와야 할 미수복 영토 녹둔도 잃어버린 땅에 대해 방영한 내용을 좀더 보완해서 올려봅니다. 

 

녹둔도 잃어버린 땅 지금은 러시아 영토가 되어 있다

 

녹둔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와 있다. 본디는 사차마도로 불렸으며 녹둔도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세조 원년인 1445년이다. 이곳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5년 전인 1587년(선조 20년) 여진족들이 쳐들어왔다.

 

 

그때 여진족의 침입으로 조선 군사 11명이 살해되고 백성 160여 명이 납치되었는데, 이순신 장군은 그 책임을 지고 조산만호(造山萬戶. 정사품관)직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조선은 이듬해 다시 반격에 나셨고,  치열하게 펼친 이 두번째 전투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첫 전투의 패배의 치욕을 씻고 큰 승리를 거뒀다.

 

 

조선왕조 5백여 년간 우리 영토였던 녹둔도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만 했던 국경지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함경북도 경흥 두만강 하류의 하천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녹둔도는 조선 말의 두만강 어귀와 연해주 일대의 인문지리를 최초로 밝힌 아국여지도(俄國輿地圖)에 따르면 여의도 면적의 약 2배 크기에 둘레 8킬로미터의 작은 섬이었다. 

 

 

조선 초 세종의 북방지역 개척 이후 함경도 주민들은 춘경추수기에 배를 타고 이 섬을 오가며 벼, 조, 옥수수, 보리 등을 재배했고 섬 주변에서는 연어, 붕어, 황어, 숭어 등 풍부한 해산물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녹둔도는 국경지대에 인접한 전략적 요충지로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최전방 요새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오랑캐들이 들어와 약탁을 벌일까 염려되니 방어를 더욱 엄밀히 하라고 적혀 있다. 

 

 

그 후 조선이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던 어느 날 함경도의 관리가 급히 전갈을 보내왔다.

 

 

러시아 군사들이 우리 영토에 들어와 건물을 짓고 다닌다는 전갈이었다. 우리 영토가 러시아 땅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30여 년 전인 1860년 북경의 자금성에서 청나라 의정왕대신(議政王大臣)과 공친왕은 제2차 아편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온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의 사신들에게 둘러싸인 채 마침내 중국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조약문건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바로 북경조약이다. 이 북경조약으로 영국은 홍콩이 있는 주룽(九龍)반도를 차지하고 프랑스는 몰수된 기독교 재산의 반환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러시아는 중재를 해준 명분으로 우수리 강 동부 연해주를 챙겼다.

 

 

그런데 러시아에게 연해주 일대를 이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북경조약과 전혀 상관 없는 조선의 녹둔도가 얼떨결에 연해주와 함께 러시아로 편입돼 버린 것이었다. 남쪽으로 영토를 넓혀갈 목적으로 부동항을 얻기 위한 러시아와 러시아의 비위를 맞추려는 청나라 사이에 이루어진 거래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인지한 조정에서는 녹둔도에 관리를 파견해 조사를 벌였다.

 

 

아국여지도에 따르면 1885~1905년 녹둔도에는 민가 113호, 인구 822명이 거주했는데 모두 조선사람들이었다. 

 

 

조선 말의 문신 어윤중이 고종황제에게 올린 보고서에는 "녹둔도는 본래 우리 땅입니다.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우리 국민이고 다른 나라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라고 씌어 있다.

 

 

녹둔도가 우리 영토임을 증명하는 자료와 기록들은 많았다. 하지만  뒤늦게 녹둔도가 러시아 영토가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조선 정부가  수차례 청나라에 항의하고 10여 차례에 걸쳐 러시아에 녹둔도를 반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19세기 초 녹둔도는 퇴적작용으로 인해 두만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그 북쪽이  연해주 땅과  연결되었다. 그리고 결국 반환되지 못한 채 크라스노예 셀로라는 이름의 조선인 정착촌이 된다.

 

 

여기에다 또 다른 비극이 발생했는데,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이 시행된 것이다. 

 

 

러시아의 관할하에 있었지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걸쳐 우리 민족이 녹둔도로 이주하고 마을을 건설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녹둔도에 거주하고 있던 우리 민족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고 그 후 지금까지 녹둔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군사통제지역으로 묶여 있다.

 

 

그리고 그 이후 녹둔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1984년 11월 북한과 러시아 간에 이루어진 국경회의에서도 녹둔도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게 되었고, 1990년 서울주재 러시아대사관에 녹둔도를 반환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이 역시 거부당했다. 그리고 북한은 1990년 옛 소련과 북경조약을 그대로 이어받은 국경조약을 체결했다. 결국 북한은 녹둔도가 러시아의 영토임을 공식 인정해 준 셈이다.


 

국경지대의 우리 영해를 넓히는 군사적 요충지인 녹둔도는 현재 러시아의 군사기지 건설로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관련전문가들은 통일 이후에도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 맺은 조약과 관행을 그대로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즉 통일 후에도 녹둔도가 우리 영토가 되지 않을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러시아의 녹둔도 영유에 대해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정부가 발행한 지도에도 녹둔도가 한국 영토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녹둔도는 간도와 더불어 장차 통일한국이 되찾아야 할 우리나라 미수복 영토임이 분명하다.

 

 

녹둔도 잃어버린 땅 역사채널e,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