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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 도산서원과 시사단

 

안동여행 안동 도산서원과 시사단 

 

안동여행 안동 도산서원

 

안동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면 아마 안동 하회마을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전 아직 그 유명한 하회마을엘 가보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1박 2일로 떠났던 안동여행에서도 동화작가 권정생 생가와 권정생 동화나라, 그리고 오늘 포스팅하는 안동 도산서원만 둘러보고 돌아오게 되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짧은 여정 중에 내내 가을비까지 내려 오가기도 좀 수월치 않았고 또 사진도 마음먹은 만큼 찍을 수 없었던 것도 아쉬웠구요. 그나마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아니어서 우산을 쓰고라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안동 도산서원 전경 (이미지 출처 문화재청)

 

위 사진은 도산서원 전체를 찍지 못해서 문화재청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았던 도산서원은 1969년 사적 제170호로 지정됐습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한몫을 담당하고 영남 유림(儒林)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던 도산서원은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당시 훼철되지 않고 남아 이어져 온 전국 47개 서원 중 한 곳입니다.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재와 서재, 퇴계가 손수 기르던 매화가 지금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는 절우사, 책을 보관하던 광명실 등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도 많고 사진으로 남겨둬야 할 것도 많은데, 그저 눈도장을 찍듯 간단히 훑어보고 온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조만간 반드시 다시 안동여행을 떠나볼 생각입니다. 하회마을도 볼 겸해서요.

 

이번 안동여행 때 들른 도산서원에서 직접 사진을 찍지 못한 곳은 문화재청과 도산서원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으로 보완을 했습니다. 그리고 안동 권정생 생가와 권정생 동화나라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안동여행..동화작가 권정생 생가와 권정생 동화나라 방문

 

속리산 정이품송(이미지 출처 문화재청)

 

위 사진은 속리산에 있는 정이품송입니다. 조선시대에 세조가 벼슬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소나무입니다. 안동여행이라더니 왜 뜬금없이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를 이야기를 꺼낼까 싶으시겠지만, 사실 이 소나무를 보기 전까지는 소나무가 아무리 잘나봐야 소나무이지 무슨 벼슬을 다 갖다붙일까 싶었더랬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속리산에 갔다가 이 정이품송 앞에 선 순간 "아, 나무한테도 잘생겼다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정말 잘생긴 나무구나"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엄숙한 마음이 들어 자세를 바로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나무가 아파서 여기저기 지지대도 세우고 영양제도 꽂고 해서 자칫 흉하게 보일 수도 있었는데도 전혀 흉한 느낌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이렇게 흉하다면 흉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이 정도 위용과 위엄어린 모습을 보여줄 정도라면 그전에는 얼마나 더 위풍당당해 보였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었지요.

 

 

안동이라는 도시도 제겐 저 정이품송을 보았을 때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도시에도 잘생겼다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참으로 잘생긴 도시라고 말하고 싶었고, 도시에도 벼슬을 내린다면 단연 큰 벼슬을 받아 마땅한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지요. 마치 학식과 인품이 고루 갖춰진 자애로운 선비 혹은 학자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아직 추수가 끝나지 않은 황금빛 드넓은 논 때문인지 여유롭고 넉넉한 느낌도 더불어 들었습니다.

 

그런 고풍스러운 선비의 도시 안동이 자랑하는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눈을 사로잡는 단풍입니다.

 

 

비가 내려서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없어서 너무나도 호젓한 길입니다. 

 

 

도산서원 표석입니다.

 

 

도산서원 맞은편에 보이는 시사단(試士壇)입니다. 비가 내리는 날 직어서 그런지 많이 흐려보입니다.

 

 

낙동강변 백사장에 우뚝 솟아 있는 이 시사단은 지방 유형문화재 제33호입니다. 시사단은 ‘선비를 뽑은 장소’라는 뜻입니다.

 

 

1792년 정조는 평소 흠모하던 퇴계의 학덕을 추모하여 이 시사단에서 제사를 지내게 하고 또한 이곳 소나무숲에서 지방 별과를 치러 영남 인재를 선발케 했는데, 당시 응시자가 7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후 1797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저곳에 단을 모으고 비와 비각을 세운 것입니다.  

 

 

시사단이 바라다보이는 이 벤치에 앉아 저 고요히 흐르는 낙동강 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삼매경에 빠져들 것만 같습니다.

 

 

도산서원 끄트머리께에 있는 멋드러진 나무입니다.

 

 

위로 뻗어야 할 나뭇가지가 옆으로 옆으로 뻗어나간 모습입니다. 하늘보다는 낙동강을 바라보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걸까요?  

 

 

농운정사, 역락서재, 전교당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서재, 제사를 지내는 상덕사가 있는 도산서당입니다.

전교당(이미지 출처 도산서원 홈페이지)

 

전교당입니다. 도산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1574년 선조 7년에 건립되었으며 보물 제210호입니다. 각종 행사를 열 때 강당으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전교당 현판 (이미지 출처 도산서원 홈페이지)

 

이 도산서원(陶山書院)이라는 현판은 1575년 선조 때 한석봉이 어전에서 쓴 친필이라고 합니다.

 

역락서재(이미지 출처 도산서원 홈페이지)

 

역락서재입니다. 도산서원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이 건물은 퇴계의 제자 정지헌(鄭芝軒)을 비롯하여 뜻있는 제자들이 힘을 합쳐 세운 것이며, 현판의 글씨는 퇴계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역락(亦樂)은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 즉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의미입니다.

 

장판각(이미지 출처 도산서원 홈페이지)

 

장판각입니다. 전교당 동쪽에 있는 출판소로 서원에서 찍어낸 각종 목판이 보관돼 있는 곳입니다. 퇴계의 문집과 유묵, 언행록, 도산십이곡, 선조어필 등 2,790여 장의 병서(屛書)와 액자, 책의 판각(板刻)이 소장돼 있다가 2003년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됐다고 합니다.

 

상덕사(이미지 출처 도산서원 홈페이지)

 

퇴계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으로  보물 제211호입니다. 퇴계의 위패와 제자 월천 조목(月川 趙穆)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월천은 스승 곁에서 오직 학문에만 전념했으며, 퇴계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스승을 대신하여 서원에서 제자들을 훈육한 수재였습니다. 매년 춘추(음력 2월 8일)로 향사를 지냅니다.

 

고직사(이미지 출처 도산서원 홈페이지)

 

고직사입니다. 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이 거처하던 건물로 일반 민가주택 양식을 따라‘ㅁ’자형으로,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고 합니다. 상고직사와 하고직사 두 건물이 있으며,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주사(廚舍)이기도 합니다.

 

농운전사(이미지 출처 도산서원 홈페이지)

 

농운정사입니다. 퇴계의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로 퇴계가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 가운데 '工'자 모양을 본떠 짓도록 했다고 합니다. 공부하던 동편마루를 '시습재',  휴식하던 서편마루를 '관란헌'이라고 불렀습니다.

 

 

천연대입니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데다 주변 경관이 수려해서 퇴계 이황이 이곳 주변을 즐겨 산책했다고 합니다.

 

 

되돌아나오면서 찍은 청량산 운무입니다. 가는 빗줄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운무가 참으로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

 

안동여행..안동 도산서원과 시사단, 재미있게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