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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비밀의 문 의궤살인사건..비운의 사도세자와 비정한 영조, 청사에 남을 왕비를 꿈꾼 혜경궁 홍씨

 

 

비밀의 문 의궤살인사건

비운의 사도세자와 비정한 영조, 청권청사에 남을 왕비를 꿈꾼 혜경궁 홍씨

뒤주 속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은 사도세자는 과연 비정한 영조에게 살해된 것일까?

아니면 정치적 음모에 의해 정신병자라는 오명을 쓰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일까?

 

 

비밀의 문 의궤살인사건 강력한 왕권을 지향했던 영조와 신분의 귀천이 없는 '공평한 세상'을 주창했던 사도세자  

 

 

비밀의 문 의궤살인사건이 다음주 월요일부터 SBS에서 방영될 예정입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다룬 사극으로, 한석규가 영조를,

이제훈이 사도세자 이선 역을 맡습니다. 강력한 왕권을 지향했던 영조와 신분의 귀천이 없는

'공평한 세상'을 주창했던 사도세자 간의 갈등을 다룬 궁중 미스터리입니다. 

'의궤‘(儀軌)란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식의 책을 말합니다. 즉 의식(儀式)과 궤범(軌範)을 합한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국가행사를 자세한 기록으로 남겨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편찬된 책이 바로 의궤입니다.

 

비밀의 문에 출연하는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SBS 비밀의 문 홈페이지 참조)

 

 

비밀의 문 의궤살인사건 영조(한석규)와 사도세자(이제훈)

 

 

눈물 속에 비수를 감춘 영조는 복심(腹心)을 눈물로 포장한 정치 9단입니다. 

술을 멀리하고 무명옷과 소찬(菜饌)을 즐긴 근면하고 검약한 군주였지만 성정은 다혈질입니다.

 

웃음 속에 두려움을 숨긴 사도세자 이선은 준수한 외모, 빠지지 않는 학식, 빼어난 무재까지

갖춘 당대 최고의 상남자로, 대리청정을 통해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지만 정치성적은 시원치 않습니다.

 

 

서지담(김유정)과 혜경궁 홍씨(박은빈)

 

 

상식과 금기에 도전한 뼛속까지 자유로운 서지담(徐池談, 김유정)은 여인네들이

즐겨 읽는 춘향전, 운영전류의 연애소설에는 관심이 없고 무원록, 세원록, 평원록류의

법의학 서책에 열광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행동파 여인입니다. 계집의 몸으로 겁없이

사건현장을 누비며 사설포교를 자처함은 물론 치밀한 수사를 바탕으로 억울한 송사를 

바로잡는 외지부(外知部. 오늘의 변호사)의 숨은 실력자입니다.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 여자 혜경궁 홍씨(박은빈)는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 이산의

모후입니다. 지적이고 자색이 수려한 재원(才媛)으로, 언제나 최고여야 하는 일등만능주의자이며

청사에 남을 왕비를 꿈꾼 지극히 권력지향적인 여인입니다.

 

 

나철주(김민종)와 김택(김창완), 박문수(이원종)

 

그리고 광통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검계 동방(東方)의 수장 나철주(김민종),

노론의 영수로 현직 영의정인 김택(김창환) , 현직 우참찬(右參贊)으로 세자의 스승이자

소론의 실세인 박문수(이원종) 등이 출연합니다.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사도세자에 대해 ‘흉악한 정신병에 걸린 광인’이라는 설과

정치적 구도에 휘말린 희생양’으로 평가가 엇갈리고 있어서 역사왜곡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 SBS 제작진은 “사도세자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 드라마는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를 집중조명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영조 역을 맡은 한석규는 제작발표회에서 "영조는 여러분이 나보다 더 관심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20대 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꿈이었다. 그 역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젊었을 때 리어왕에 대한 꿈보다 배우로서 더 하고 싶다는 뿌리 깊숙이 뒤흔든 인물이 영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아직 내가 영조를 하기엔 나이가 어린 듯싶다. 그런 개인적인 걱정은 있지만

좋은 무대에서 만나게 된 이상 모두가 최선을 다해 작품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고 합니다. 

믿고 보는 배우인 만큼 본방사수 드라마로 기대를 걸어봅니다.

 


 

다음 글은 사도세자에 관한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에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간략하게

알아본 것입니다. 예전에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방영한 것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뒤주 속에서 죽어간 비운의 사도세자

-그는 왜 아버지에게 비참한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일까?

 

영조 38년 윤5월 13일, 창경궁 휘령전에서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울부짖고 있었다.

한여름 무더위에 갈증에 허덕이며 자신의 오줌을 받아 먹어야 했던 그는

결국 뒤주에 갇힌 지 8일 만에 죽음을 맞았다. 

그는 왜 아버지에게 비참한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일까?
영조는 왜 아들을 이렇게 잔인하게 내몬 것일까?

 

공석이었던 세자 자리를 채워줄 아들을 고대하고 있던 영조는 세자가 태어난 바로 그날

원자에 책봉하고, 태어난 지 14개월 만에 세자로 책봉할 만큼 후계자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영조와 세자 사이에 불화가 싹트기 시작한다. 영조가 세자의 잘못을 엄하게

나무라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혜경궁 홍씨의 묘에서 발견된 한중록(恨中錄)에는 세자가 늘 영조에게 야단을 맞을까봐 

전전긍긍했으며, 한 가지 옷을 선택하지 못하고 많은 옷을 겹쳐 입는 일종의 정신병인

의대병(衣帶病)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궐을 빠져나가 여승이며 

기녀들과 어울리고, 유흥비가 모자라면 남대문 상인들에게 강제로 돈을 빌리기도 했으며,

궁녀와 내시를 살해하고 아들을 낳아준 경빈 박씨까지 살해하는 등 광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몰락한 노론 양반가 출신의 나경언은 영조에게 세자의 10가지 비행을 고했고, 

결국 영조는 전교를 내려 동궁의 자결을 재촉했다. 그리고 영조는 뒤주 안에 가둬 

아들을 죽인 비정한 아버지로 역사에 남게 된다.

 

 

사도세자.  영조는 세자가 죽은 후 '생각할수록 서럽다'는 의미의 사도(思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50년이 흐른 1999년,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된 놀라운 비문이 공개됐다.
영조가 구술로 작성한 사도세자의 묘지문에는 세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매우 애통해하는

글이 씌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영조가 아무런 보고도 듣지 못했다가 사도세자가 죽은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 뒤주를  지키는 자들을 사주해서

사도세자에 대한 소식을 차단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정은 영조 즉위에 공헌한 노론과 반대한 소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노론과 소론을 고루 등용하겠다는 탕평책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노론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조 31년 2월 4일 나주 객사에는 "조정에 간신이 가득해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졌다"는 흉서가 걸렸고, 이 흉서사건의 주범은 소론 가문의 자제 윤지였다.

노론은 세자가 소론을 배후로 지목하며 엄하게 다스려주기를 원했지만 세자가

소론을 옹호하고 나서자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노론과 세자는 등을 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노론이 세조와 영조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하며 세자를 정신병자로 몰았다.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가 남편을 잃은 아내의 구구절절한 애환을 기록한 한중록은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대중에게 역사적 사실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사회학자 이덕일씨는

한중록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혜경궁 홍씨의 의도가 담긴 기록이라고 말한다.

혜경궁 홍씨가 홍씨가문의 신원(伸寃)을 목적으로 한중록을 썼다는 것이다.

신원이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씻는 것을 말한다.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이 세자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것은 사실이다.

홍봉한은 노론의 영수로 영조에게 세자를 가둘 뒤주를 가져다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혜경궁 홍씨의 친정이 몰락의 길을 걸었던 이유는 정조가 아버지를 죽게 한

외척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봉한이 세자의 죽음에 관여한 사실을 은폐하고,

정신병에 걸린 세자와 아들을 죽인 비정한 아버지 영조를 부각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정치적 의도로 저술된 기록이라는 것이다.

 

 

 

 

생각할 사(思). 서러울 도(悼) . 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 영조는 서인으로 폐했던 아들을

다시 세자로 봉하주고 생각할수록 서럽다는 의미의 사도(思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