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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인간극장 필리핀으로 간 민들레국수집..서영남 베드로 칼로오칸 시에 어린이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을 열다

 

KBS 1TV 인간극장에서 방영하고 있는 필리핀으로 간 민들레 국수집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의 대표 서영남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수사가 되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수도원을 나온 후 2003년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대접하기 위해 국수집을 차렸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자리잡은 곳은 인천지역에서 맨 먼저 생긴 달동네입니다. 설에도 이곳에 와야 떡국이라도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민들레국수집에서만큼은 높고 높으신 VIP 손님들입니다.

 

나와 관계없는 남의 일에는 인정을 베풀지 않는 세상에서  무료식당 민들레국수집을 차려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밥을 대접한 지 벌써 12년이 되었습니다. 300만 원으로 시작한 민들레국수집에서 그는 그 세월 동안 배고프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의 보호자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밥보다 사람대접이 더 중요하다"고.

 

민들레국수집에 관한 내용을 좀더 알고 싶으신 분은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사는 성자 서베드로님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KBS 1TV 인간극장 필리핀으로 간 민들레국수집 

 

그 민들레국수집이 4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도시인 칼로오칸 시에도 들어섰다.

 

KBS 1TV 인간극장 필리핀으로 간 민들레국수집 필리핀에서도 가장 가난한 도시 칼로오칸 시티

 

서베드로는 1988년 수도사생활을 하면서 필리핀으로 파견됐었는데, 그때 가난하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진 필리핀 사람들이 그를 따뜻하게 대해줬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필리핀에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라 로마 가톨릭 공동묘지 옆 자투리땅, 산 방글라시오 성당의 부속건물이 민들레국수집이다. 그는 이곳에서 매일 정성스레 밥을 지어 아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다. 4월 말경에 도착해 건물수리를 하고 6월 9일에 문을 열었으니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여기 있기에 그는 필리핀으로 왔다. 그게 전부다. 새삼스러울 게 없는 것이, 그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필리핀에 온 것뿐이다. 오늘도 그는 문앞에 나와 손님들을 기다린다.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은 모두 어린이손님들이다. 이 아이들은 어쩌면 이게 오늘 처음 먹는 밥일 수도 있다.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든 가난한 이 마을에서 허기진 아이들 120명이 이곳에서 밥을 먹는다. 쌀을 후원해 주겠다는 곳이 있었지만 그가 거절했다. 그 이유는 1인당 60그램씩으로 배급을 제한하고 아이의 체중이 20킬로그램을 넘으면 배급을 중단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밥만큼은 배불리 먹이고 싶은 마음에 그는 아쉽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공동묘지 도시 사이에 끼어 있는 묘지마을.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공동묘지를 뚫고 지나가야 한다. 곳곳에서 죽을 자들의 재력을 과시하는 무덤들이 눈에 띈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필리핀이다. 죽은 자들이 산 사람들의 집보다 너무 좋다. 살아서 부자로 살았던 사람들은 죽어서로 부자로 사는 것이 현실이다.

 

 

서베드로가 이 마을에 민들레국수집을 열기로 결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몇 달 전 이 마을에 큰불이 나서 안타깝게도 다닥다닥 붙은 초라한 집들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그때 천여 가구가 집을 잃어버리고 800여 명에 가까운 이재민들이 성당 마을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곳 마을사람들은 가건물을 지어 그때그때 조금씩 수리를 해가면서 살고 있다.

 

 

서베드로가 매일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밥을 먹으러 오는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보는 일이다. 그래야 그들에게 무엇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집만 해도 좁디좁고 어두운 공간 2층에서 아래쪽에는 6명의이 가족이, 위쪽에 열 명의 가족이 살고 있다. 

 

쌀이 없어서 밥을 못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돈을 벌러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고픈 배를 달랜다. 때로는 돈을 벌러 나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못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 마을 가구 70% 이상이 하루 3000원의 수입도 얻기가 힘들다. 아파도 치료도 제대로 받기가 어렵다. 그래도 이 가장 낮은 곳에도 한줌 햇살이 비쳐들고, 이 어려운 삶 속에서도 아이들이 미소는 해맑기가 그지 없어서 더 가슴이 아프다.

 

때로는 한국에도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필리핀에까자 가서 도와주느냐, "돈이 썩어 문드러지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배고픈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줘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을 조금도 도와주지 않고 안 되는 것, 도움줘 봐야 될 일도 아닌 것 하면서 합리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공동묘지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69세의 마놀로다. 서베드로가 이곳에 와서 사귄 친구다. 그가 끼니를 챙겨다주면 마놀로는 자신만의 감사 표시로 기타를 치며 멋진 노래를 불러준다. 그럴 때면 혼자 외롭게 필리핀에 와 있는 그이기에 마놀로가 불러주는 노래에서 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수사를 그만두고 나서 얻은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 딸이다. 혼자 딸 모니카를 키우던 베로니카는 그를 만나 재혼한 후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고 있다. 

 

 

그가 2003년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면서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는 데 정부지원은 받지 않는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프로그램 공모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후원회라든지 봉사자모임 같은 조직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배고프고 주눅든 우리 손님들을 제대로 대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 극심한 경제공황의 와중에 도로시 데이라는 미국인 여성은 환대의 집을 열어 가난하고 병든 이, 고아, 노인, 여행자 등 누구에게나 따뜻 안식처를 제공했다. 환대의 집은 노숙인이나 실업자가 24시간 언제든 들러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옷을 빨고 책을 읽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이었다. 그도 이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처럼 민들레국수집을 찾는 모든 분들을 환영하며 고귀한 인격으로 대접하고 따뜻한 식사와 편안하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