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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역사채널e 조선을 덮은 하얀 연기 담배..남쪽(南蠻)에서 온 신령스러운 약초..조선을 중독시킨 요망한 풀(妖草)

 

EBS 역새채널e 에서 방영한 조선을 덮은 하얀 연기 담배입니다.

현대와 달리 조선시대 때에는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유입된 지 

5년여 만에 전역에 널리 퍼진 담배에 관해 알아본 것입니다. 

 

 

역사채널e 조선을 덮은 하얀 연기 담배

 

 

담배가 전 세계적인 기호품이 된 것은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원주민들에게 선물받은 것을

유럽에 전파한 후부터다. 당시 담배는 흡연용이 아니라 의료용이나 건강보조식품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1565년 세빌리아대학 교수이며 의사였던 니콜라스 모럴리스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 신비로운 약초가 피부병과 신경통을 치료하고 기침과 천식,위경련은 물론 

몸속 기생충까지 구제할 수 있다"고 씌어 있다.

 

 

역사채널e 조선을 덮은 하얀 연기 담배 - 당시에는 담배를 유익한 것으로 여겼었다

 

 

실제로 조선시대 실학자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담배는 가래를 치료하고 소화에 도움을 주며

가슴이 답답할 때 효과적이고 한겨울 추위를 막는 데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탁월한 효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담배는 남쪽(南蠻)에서 온 신령스러운 약초

남령초(南靈草)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남령초의 또 다른 이름 연기나는 풀(煙草)이었다.  

 

 

 

 

조선을 덮은 이 하얀 연기 담배는 임진왜란 후 17세기 초(광해군) 일본에서 전해졌는데,

의약품 발달이 미비했던 조선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어 뛰어난 약초로써 민생 속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또한 논농사가 어려운 산간지역에서도 재배하기가 쉬웠고, 담배 한 근은 은 한 냥의 가치로

막대한 이익을 주었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로 끌려간 포로의 몸값으로 쓰이는 등

중요한 고부가가치 상품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616년, 1617년부터 들어와 1621년, 1622년 이후 많은 사람들이 피우니

차와 술 대신 담배로 손님을 대한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평민, 기생, 양반, 궁녀, 임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흡연을 즐기니 당시 총인구 약 1500만 명.

조선시대의 흡연율은 최소 25%에 이르렀다.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8세기 말(정조)에는 정조의 시문집 <홍재전서>에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남령초만한 것이 없다. 그 효과를 확산시켜 담배를 베풀어준

천지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하여 14년 동안 우리나라에 살았던 하멜이 기록한 <하멜표류기>에는 

"요즘 조선사람들은 담배를 아주 많이 피우는데, 4~5세 된 아이들도 배우기 시작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놀라움을 표한 글이 씌어 있다.

이 시기에는 아이가 할아버지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받아들여졌고 

신하들 역시 임금 앞에서 장죽을 길게 물고 국사를 논했다고 한다.

 

 

 

 

그러나 약초에서 전 국민의 기호품이 된 담배는 조선을 중독시킨 요망한 풀(妖草)이었다.


 

 

 

흉년에 받은 쌀로 담배를 사피워 오히려 죽는 백성이 늘고, 담배를 뇌물삼아 벼슬을 사는
엽관(獵官)현상이 생겼으며, 1623년 동래 왜관 건물 80칸 소실, 1717년 덕산의 병부 소실 등

담배로 인한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조선에서는 비옥한 경작지가 점차 수익성 높은 담배밭으로 변하면서 식용작물의 경작지가

줄어드는 폐단 때문에 흡연을 놓고 찬반양론이 거셌다. 결국 271명의 신하들은 

"기름진 땅을 모두 담배와 차를 심는 밭이 되어 곡식의 생산이 줄어드니 백성의 어려움이

극심하다" 며 농본사회 조선을 위협하는 담배의 경작을 금지하는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애연가 정조는 나라 차원이 아닌 각 지방 감사의 역할로 정리한다. 

 

 

 

 

이처럼 초기의 담배는 비교적 자유로웠으나 조선의 유교사상과 충돌하여 조선 특유의 흡연예절을 만들었고,

특히 어린아이와 여성의 흡연은 미풍과 해로움으로 더욱 엄격하게 제재를 가했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는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름다운 품행이 아니다.

손님과 맞담배를 피우는 아이도 있는데, 어찌 그리도 불손한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담배는 안으로 정신을 해치고 밖으로 귀와 눈을 해치며 이가 빠지며 살이 깎이고 사람을 늙게 한다고 하여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일이 더욱 증가했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담배의 해악을 강조한 우정척사파에 의해 어린아이와 여성의 흡연의 해로움을

더욱 부각시켰고, 19세기 들어서는 일제에 빌린 차관을 국민의 의연금으로 상환하기 위한

구국(九國) 금연운동이며 담배를 죄악으로 여긴 선교사들에 의한 금연운동 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약 300년 동안 조선을 흔들었던 담배는 새로운 문화로 변모하게 된다.

 


 

 

담배의 해로움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국가적으로도 금연을 위한 갖가지 노력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며칠 전 보건복지부는 “가장 효과적인 금연정책은 담뱃값 인상이다.

2500원인 담뱃값을 4500원 수준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나아가 담뱃값 경고그림을 삽입하고 편의점 등에 담배진열을 금지하는

비가격정책도 함께 검토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국가에서 금연정책이나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단순히 담뱃값을 인상하는 것이라면 과연 금연효과가 있을까 싶습니다.

몇 년 전에도 담뱃값을 500원 인상하니 몇 달은 흡연율이 낮아졌지만 곧 다시 올라갔으니까요.

흡연자들의 건강을 걱정한다면 담뱃값 인상보다는 금연 캠페인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금연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요.

흡연이 건강에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가에 대해 좀더 상세하게 알고 싶으시면

No smoking Please! 흡연의 위험성 되짚어보기를 참조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