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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보는 세상/시사/사회/교육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으킨 신선한 바람 인자한 개혁가 베르골료 추기경의 리더십

 

 

"진정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무엇보다도

주저없이 나서는 용감한 증언자여야 한다.

진정한 지도력과 그 권위의 근원은 실제적인 경험에서 나온다.

리더십은 터득할 수 있는 예술이다. 그리고 리더십은 연구할 수 있는 과학이다.

또한 리더십은 헌신과 노력, 끈기가 필요한 임무다.

그렇지만 리더십은 이성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기에게 뽀뽀를 하고 있는 모습 

 

 

전 세계에 따뜻하면서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베르골료 추기경이 리더십에 대해 피력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자한 개혁가로 일컬어지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둘째날인 8월 15일 오전 10시30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천주교인 5만여 명과 함께

성모승천대축일미사를 드립니다. 미사전후 문화행사 진행은 다음 표와 같습니다. 

소프라노 조수미님, 가수 인순이님도 참석하고, 대전교구 연합 풍물단도 공연을 하네요. 

 

미사 후 교황님은 세종시에 있는 대전가톨릭대로 이동해 오후1시30분부터 17개국 

청년대표 17명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오후 5시30분부터는 아시아청년대회가 열리는

충남 당진 솔뫼성지를 찾아 청년 2,000여 명을 만난다고 합니다.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을 가진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하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전,후 문화행사. 자료출처:대전일보

 

 

이 포스팅을 읽으실 때쯤은 저도 교황님을 뵈러 대전월드컵경기장에 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가기 전에 교황님에 관한 것을 좀더 알아보고 싶어서 독일 출신의 

바티칸 출입기자  위르겐 에어바허가 쓴 [프란치스코 교황]을 읽었는데, 

읽다 보니 교황님의  어린시절 사 진 등 함께 보면 좋을 사진들이 눈에 띄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올립니다.  책에는 교황님을 일컬어 "힘내!"라고 하기 전에

먼저 안아주신 분"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그 글만으로도 왠지 정말로 기운이 나는 기분입니다.

 

 

호르헤 마리오(왼쪽)와 동생 오스카 아드리안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범한 집안이었지만 그의 가족은 행복했다.

호르헤에게 신앙을 가르쳐준 사람은 그의 조부모였다. 

특히 그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준 분은 할머니였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으로 선출된 후에도 할머니의 친필 유언이 쓰인 성무일도를 사용하고 있다.

깊은 신앙심이 담긴 할머니의 유언은 호르헤의 신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10대 시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3세가 되자 호르헤의 아버지는 그에게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집이 그리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어려운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일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추기경이 된 후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제게 일을 시켰던 아버지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인간의 선한 모습뿐만 아니라 잔인하고 악한 모습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196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살바도르 대학교에서 강의하던 시절. 그는 여기서 문학과 심리학을 가르쳤다.

 

 

호르헤는 여러 분야에 박학다식했다. 그는 횔덜린의 시를 좋아했으며, 미사강론 중에 보르헤스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단테의 <신곡>과 만조니의 <약혼자들>은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톨킨의 작품 <반지의 제왕>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프로도 배긴스는 먼 길을 걸어야 하는 원정의 소명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강론 중에 이렇게 멈춰서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 교회의 기본적인 모습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고 있는 베르골료 추기경.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주교나 추기경이 되어서도 대중쇼통을 애용했다

 

 

베르골료 추기경은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대주교 시절 대성당 뒤쪽에 있는

작은 연립주택에서 살았다. 예수회 관구장 시절부터 개인기사를 따로 두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차를 운전했다. 대주교 시절에는 지하철과 버스도 이용했다.

 

 

아시시를 방문하여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쇄신의 비결이 십자가 안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말로만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생활을 통해서

함께 바꾸려 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개혁적으로 보인다.

사실 그가 하는 행동은 가장 기본적인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파격은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교회를 근본적으로되돌아보게 하는 힘이다.

 

 

한 아기가 필레올루스(가톨릭 성직자의 모자)를 벗기자 교황이 웃으며  모자를 되찾아 고쳐쓰고 있다.

 

 

교황은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최고의 미덕이지요. 그렇다면 사랑의 반대말인 증오가 가장 큰 잘못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증오보다 교만이 더 큰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만이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저도 가끔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당연시하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렇듯 교만은 항상 경계해도 누구나 저지를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강론 중에 자신에게 장난치는 어린아이를 오히려 쓰다듬어 주고 있다.

 

 

교황은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호의를 베풀 때

사람들은 그 행동의 동기에 대해 궁금해하게 되고, 그렇게 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전할  수 있다. 이처럼 교황은 행동으로 실천하고 그 다음에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강복을 전하는 교황들의 모습(위 프란치스코 교황. 아래 베네딕토 16세 교황)

이 두 사진은 1년 사이에 어떤 점이 변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교황으로 즉위한 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 들어오기 전부터 지녔던

검소한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 그는 작은 의자를 사용하고, 주교 시절에 사용하던

은제 가슴 십자가를  그대로 사용하며, 빨간 교황 구두를 신지 않는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벤츠 리무진을 타지 않고 소박한 자동차를 이용한다.  

 

 

2013년 성목요일 카사 델 마르모 소년원에서 발씻김 예식(세족례)을 거행하는 교황

 

 

교황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줄곧 '힘없는 사람들'과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보살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을 기념하는 발씻김 예식에서 수감자와 환자와 에이즈 환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었다. 교황이 된 후에도 그는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