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EBS[하나뿐인 지구]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로드킬, 길 위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야생동물 로드킬 실태를 집중조명했습니다.
로드킬(Road Kill)이란 야생동물들이 먹이를 구하거나 이동을 위해 도로에
갑자기 뛰어들어 횡단하다가 차량에 치어 죽는 것을 말합니다.
로드킬이 발생하면 야생동물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주행중이던 차량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특히 국토에서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는
야생동물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도로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로드킬로 인한 운전자 불안 및 사고위험이 더욱 큰 것이 현실정입니다.
도시화로 사람들은 편리하게 살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야생동물들의 생존기반을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 또한 외면할 수 없을 듯합니다.
지금 도로에서는 갈 길을 가야 하는 인간과 설 곳을 잃은 야생동물들이 수없이 충돌하고 있다.
동물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사람들도 항변하고 싶다.
나도 동물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뜻하지 않게 가해자가 되어버린 이 상황,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교통 체증이 멈춘 시간, 뻥 뚫린 도로 위에서 한밤중의 질주가 시작된다.
눈앞에 아무런 장애물도 보이지 않던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불과 몇 미터 앞에서 무언가가 운전자를 보고 있다.
피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상황, 결국 도로 위에서 충돌한다.
어둠 속에서 도로를 건너는 고라니를 들이받는다
다음날 고라니는 그 자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길 위의 죽음, 바로 로드킬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EBS [하나뿐인 지구]의 제작진은 로드킬이 얼마나 빈번한지 전국의 도로를 다니며 지난 3주간 실태조사에 나섰다.
로드킬 피해를 입는 동물들은 다양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은 지역과 도로를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 한켠에 방치돼 있는 사체들도 목격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죽음이었다.
야생동물에게 도로는 새로운 천적이 되었다.
야생동물연합의 조범준 사무국장은 "도로 위에 뱀이 한 마리 죽어 있으면 이차적인 피해가 생길 수 있다.
뱀을 먹으러 들어오는 다른 동물이 또 로드킬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로드킬은 한 마리만 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죽게 되면 연쇄적으로 계속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킬의 위협은 밤낮없이 계속된다.
밤 9시, 야생동물들이 지금 막 전북야생동물구조센터에 도착한다.
상자 안에 담긴 녀석은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멸종 위기종 수달이다.
체온이 떨어져 있는데, 아직 물가에서 버틸 만큼 지방층이 충분히 두껍지 않아서다.
아기수달은 아직 어미 품이 절실할 때이지만, 함께 구조센터로 실려온 어미는 이미 로드킬로 목숨을 잃었다.
피를 엄청나게 흘렸다. 머리 쪽을 치어서 현장에서 즉사한 것이다.
전국 고속도로 로드킬 현황-연도별 발생 현황
과연 로드킬은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한국도로공사의 로드킬 실태조사에 따르면 매년 2,000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피해를 입는 동물들 가운데 90%에 육박한다.
전국 고속도로 로드킬 현황-동물 종별 발생 현황
동물은 고라니, 너구리, 멧돼지, 삵, 멧토끼 순이다. 특히 국내 생태계의 최상의 포식자,
멸종 위기종 삵은 알려진 것만 해도 최근 5년간 130마리가 고속도로에서 죽었다.
지리산 일대 로드킬 현황-조사구간
우리나라 생태계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지리산의 로드킬 실태를 보면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해진다.
서울대 환경계열연구소에서 1년간 하루보 빠짐없이 로드킬 동물을 조사한 결과,
지리산 일대의 고속도로와 국고, 지방도로 총 119킬로미터에서만 조사했는데도
연간 목숨을 잃은 야생동물이 연간 2,934마리였다.
야생동물 종별 로드킬 현황-종별 로드킬 현황
피해동물은 거의 모든 종이 망라되었다.
양서류가 가장 많고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순이었다.
그나마 고속도로는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다.
전국에 촘촘하게 깔린 지방도로는 정확한 실태조사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양서류나 파충류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믿을 만한 통계조차 없는 현실, 현재 전국 도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드킬 피해는
어림잡기조차 힘들 정도라고 한다.
해외 로드킬 사고 발생 현황-스위스
외국의 경우도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대형 종이 많다 보니 그 피해가 엄청나다.
스위스는 연간 7.500건의 로드킬 사고가 발생한다.
해외 로드킬 사고 발생 현황-미국
미국의 경우는 로드킬 사고가 연간 30만 건에 달하고, 이로 인해 해마다 200여 명의 사망자와
연간 차량 수리비용만 28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조원에 달한다.
로드킬은 세계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 이상돈 교수는 “고속도로도 마찬가지이고 택지나 산업단지를
건설한다면 초기에는 동물들이 자신의 서식지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에
로드킬 사고건수가 매우 크게 증가한다”고 말한다.
불과 몇 미터 앞에서 살아 있는 동물을 발견하면 누구든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고 싶지 않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동물을 사람이 피해갈 수는 없다, 치고 가야지 그걸 피하면 차가 더 위험해지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있는가 하면,
멈출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멈춰야 하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면 피해서 가야 한다"는 답변도 있었다.
로드킬 설문조사-운전 중 야생동물과 마주친다면?
제작진이 직접 100명의 운전자에게 물어본 결과 피한다, 멈춘다는응답자가 70퍼센트를 넘었다.
또 야생동물 주의구간에서는 신경을 쓴다는 응답자가 전체 80퍼센 트에 달했다.
전국에 깔려 있는 도로 현황
사실 한국은 국토에서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다.
전국에 깔려 있는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로를 합하면 한국에는 모두 10만 킬로미터가 넘는 자동차길이 있다.
계산해 보면 1제곱미터당 도로가 1킬로미터나 있다는 이야기다.
즉 야생동물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도로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어쩌면 인간은 도시화와 함께 동물과 같이 사는 삶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인간이 빨리 가려고 만든 도로가 야생동물들에게는 죽음이 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야생동물들이 도로를 침범한 것이 아니라, 도로가 나기 전 그 길은 원래 그들의 서식지였는데 말이다.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
현재 로드킬 대책 으로는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 과 내비게이션 안내, 그리고 도로를 낸 곳에
생태이동통로를 짓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야생동물들을 위해 마련된 생태이동통로
현재 전국에는 460여 개의 생태이동도로가 있는데, 평균 생태이동도로 공사비용은 20억 원이나 되어서
큰 비용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생태이동도로의 본디 목적이 단절된 서식지를
연결해 주는 데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로드킬의 직접적인 대책은 못 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영국 로드킬 지도
우리나라 국토 면적과 비슷한 영국은 최근 시민들의 SNS 제보를 통해 로드킬 지도를 완성했다.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미국의 야생동물 출몰 사전안내시스템
그리고 미국에서는 도로 반경 1킬로미터 내에 동물이 접근하면 신호가 울려
운전자가 미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한 사전안내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도로 위에서 발견한 동물은 살아 있을 때는 야생동물구조센터가 맡지만,
이미 목숨을 잃은 사체는 해당 군청의 청소과에서 처리한다고 한다.
이렇게 수거된 사체는 인근 매립장으로 옮겨져 소각처리된다.
다행히 생명을 구조한 야생동물은 구조센터에서 치료를 받는다.
동물마다 각기 이곳에 온 사연이 있는데, 특히 로드킬로 다리가 절단된 삵은 아직 야생성이 살아 있는데다
사람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어서 사람이 조금만 접근해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실명 위기에 놓인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도 있다.
비행중에 먹이를 잡아채기 위해 활강하는 과정에서 고속으로 달려오는 차량과 부딪쳤는데,
차유리가 깨질 만큼 심한 충돌이었다고 한다.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새에겐 전부를 잃는 것과 같다.
로드킬 대책은 없을까?
현재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가장 적극적인 로드킬 대책은 동물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울타리 설치다.
한국도로공사 강원본부 안행준 차장은 울타리가 설치되고 나면 확실히 사고가 일어나는 곳에서
물리적인 로드킬 숫자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울타리 설치가 완료된 구간은 전체 고속도로의 34퍼센트 수준이다.
이렇게 고속도로에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문제는 고속도로가 전체 도로의 3퍼센트에 불과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로드킬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현재 로드킬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운전자가 지게 된다.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소송이 있었는데, 로드킬로 목숨까지 잃은 상황, 당시 보험사는
안전시설 미비를 지적했지만 법원은 운전자 과실에 비중을 두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억울하다는 운전자들이 많다.
과연 우리에게 더 나은 최선책은 없는 것일까
국립생태원 생물복원연구원 최태영 박사는 "우리나라처럼 좁은 면적에 많은 도로와
많은 자동차가 있고 개발 압력이 높은 국가 같은 경우는 최고의 생태계를 구현하기보다는
최악의 생태계로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쉽진 않겠지만 대책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방도로에서 일어나는 로드킬 같은 경우에는 정부에서 로드킬 경고 표지판이나 내비게이션 안내를 해주고,
고속도로 같은 대형도로는 도로관리기관이 철저하게 예방하고, 그렇지 못했을 경우
운전자에게 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나가는 게 올바르다는 것이다.
차량 속도에 따라 로드킬 사고는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교통안전공단의 협조를 받아 제작진은 로드킬에 관한 국내 최초로 모의실험을했다.
갑자기 야생동물이 튀어나왔을 때 사고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속도를 얼마나 줄여야 할지 실험한 결과,
50킬로미터 속도에는 15미터 정도만 확보된다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반면에 80킬로미터 속도로 달리다 보면 3-40미터 정도를 확보해도 로드킬 사고가 발생했다.
로드킬의 완벽한 해답은 없지만, 단 10킬로미터만 속도를 줄여도
지방도로와 국도에서는 로드킬을 줄여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이렇다할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로드킬은 운전자의 몫임을 알고 과속을 피하고,
평소 로드킬 사고가 나면 어디로, 어떻게 신고해서 뒤처리를 할지,
대형사고를 막기 위한 운전자의 행동요령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알아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