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시작한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이제 1, 2회분을 마쳤을 뿐인데
관심있게 지켜보고 싶은 소재들이 나와서 더욱 흥미와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했듯이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광수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트랜스젠더 이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어떤 곤경에서도 누구보다 이해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할 가족이
무시와 소외, 심지어는 폭행으로 지울 길 없는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며
<가족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제작진은 노희경 작가의 기획 의도를 설명하면서
"취재하면서 우리나라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조차 경시한다는 걸 확인했다.
투렛증후군협회에서는 아이들이 놀림받을까봐 걱정하시더라"며
"사람들의 편견과 무지를 깼으면 한다. 아픈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가장 따뜻한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는 분이어도 함께 생각해 볼 문제로 여기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투렛증후군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 [괜찮아 사랑이야] 투렛증후군으로 욕설을 내뱉고 왕따를 당하는 이광수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노희경 작가 군단. 제작발표회에서 노희경 작가를 가운데에 두고
공효진, 조인성, 성동일, 이광수 등이 모여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엑스포츠뉴스>
며칠 전 가수 김경호가 '대퇴부 무혈성 괴사'라는 희귀병을 앓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퇴부 무혈성 괴사란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뼈가 썩는 병이라는데,
이런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불러주지도 않고 가수를 그만둬야 할지도 몰라서
그 동안 밝히지 않고 숨겨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병세가 너무 많이 진행돼 잠시 활동을 못하게 됐고,
그 후 인대 21줄을 연결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병을 앞두고 그 고통을 감춘 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숨겨야 했던 그 심정이 어땠을까. 이렇게 타인의 차가운 시선도 두려운데, 하물며 그 냉랭한 시선이
부모나 가족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그 아픔과 고통은 무어라 형용할 길이 없을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 트랜스젠더 이엘(세라). 성전환수술 후 가족에게 폭행을 당한 채 병실에 누워 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세라(이엘)는 겉모습은 남자이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진짜 여자가 된 트랜스젠더를 연기하고 있다. 병원으로 달려온 오빠라는 사람은 가족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동생이 저 지경이 되어 누워 있는데도 동생이 집안망신을 시켰다는 사실에만
분노해 펄펄 뛰면서 정신병자 취급을 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장면이다.
정신과의사로 분한 공효진(지해수)에게 상담을 받고 있는 이엘(세라)
실제로 세라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정신과의사 지해수(공효진)와 상담을 하게 된 세라는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퇴원시켜 달라고 말한다. 아들이 갑자기 여자가 되겠다고 수술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남자를 사랑한다고 하니 부모님도 그렇고, 형제들도 얼마나 당황했을지 이해가 간다는 거였다.
하지만 해수는 고개를 저으며 "의사 입장에서 볼 때 세라 씨는 강제입원이 필요할 만큼 위험한 지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절대로 퇴원할 수 없다"고 잘라말한다.
그리고 해수는 세라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 자신의 모습을 마주보게 한 다음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한 여자가 맞았어요. 부모형제에게 집단으로. 이유는 단 한 가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해받기 위해 얼굴에 피멍이 들고 다리가 부러졌는데,
그 여자는 때리는 그들을 이해한다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해요.
이번에 집에 들어가면 맞다가 머리가 깨질지도 모르는데, 다리가 아니라 허리가 꺾일지도 모르는데,
부모형제니까 맞는 게 당연하다고, 그러니 더 맞겠다고 하네요.”
먹먹해진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세라에게 해수는 도망가라고 말한다.
이게 의사로서의 자신의 처방이며, 안 그러면 맞아 죽겠다는 세라를 강제입원시킬 수밖에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환자를 살리는 게 자신의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조언한다.
이어서 “세라 씨가 반드시 이해할 사람은 부모님보다 먼저 자기 자신이에요”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며
따스한 손길로 어깨를 어루만져주자 세라는 기어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 장면을 보면서 새삼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들은 비난을 해도 가족은 감싸주고, 남들은 이해를 못해도 가족은 이해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믿음은 이제 버려야 하는 것일까? 가족은 고통에 빠져 있는데도 그 가족으로 인해 자신이 겪을지도 모르는
수치심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가족이라면, 가족이란 어떤 곤경에 처하든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보루이자 안전한 울타리라고 여겼던 믿음은 이제 허공으로 날려보내야 하는 것일까?
하긴 이따금 예멘이며 파키스탄, 요르단 등에서 약혼자와 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딸을 화형에 처하고,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신혼부부를 공개처형하고, 친오빠에게 성폭행당한
여동생을 오빠를 유혹했다는 이유로 살해했다는 기사를 이따금 읽은 기억이 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명예살인(honor killing)이다.
중동과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을 살해하는 관습이다.
이러한 명예살인이 자행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나 부족과 같은 집단의 명예를 개인의 생명보다
우선시하는 가부장적인 문화 때문인데, 이 역시 타인이 아닌 가족이 오직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또 다른 가족을 더욱 큰 고통에 빠뜨리는 짓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투렛증후군 환자로 나오는 이광수(수광) 또한 남다른 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에게 소외받고 자란 젊은이다.
수광은 홈메이트가 된 조인성(장재열)을 처음 만나 악수를 청한다.
이어서 수광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자신이 투렛증후군 환자라고 소개한 뒤
“아빠한테 또라이라고 개무시당하고 살다가 조박사(성동일)님 만나 행동치료와
이완요법을 받고 있다”며 장애 때문에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음을 밝힌다.
아들이 불행에 빠졌을 때 누구보다도 진정한 마음으로 그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치유해 주어야 할
아버지가 도리어 아들을 또라이 취급하고 개무시했다는 것이다.
남도 아닌 가족이, 그것도 자신이 낳은 아들이 남다른 장애를 가진 것을 창피스러워하며 무시했다니,
이 또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괜찮아 사랑이야]로 컴백한 노희경 작가는 그런 남모를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 중 하나다. 이번 드라마도 로맨틱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정신과 설정을 통해 투렛증후군 환자며 트랜스젠더 등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여느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없애고자 하는 소망이 느껴진다.
가족들에게서조차 버림받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드라마를 통해 챙기고 있는 것이다.
노희경 작가는 어느 책에서인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 사람들 어느 누구도 나와 다르다고 해서, 소수라고 해서,
소외됐다고 해서 손가락질받을 이유는 없다.
나는 내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에게 이렇게 가르칠 것이다.
언제나 소수의 편에 서라.
너와 다른 사람을 인정해라.
그리고 혹 네가 소수에 끼는 사람이 되더라도,
소외받는 사람이 되더라도 좌절하지 마라."
노희경 작가에 관한 한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만은 아닌 것 같다.
또 가족, 즉 혈연만이 나눌 수 있는, 피는 물보다 진한 그런 사랑도 아닌 듯하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눌 수 있고 또 반드시 나눠야만 하는 그런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아까운 인생, 사랑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라고 일러주는 그런 사랑이다.
그래서 그가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라고 감히 주장을 하고,
또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단죄를 해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다음은 노희경 작가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좀 긴 시를 옮긴 것이다.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 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같은 글이나 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