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에 경쟁관계인 상인 두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어떻게 하면 상대를 망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 했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하느님이 어느 날 천사를 내려보내셨습니다.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내려온 천사는 먼저 한 상인을 찾아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큰 선물을 내릴 것이오. 그대가 재물을 원하면 재물을,
장수를 원하면 장수를, 자녀를 원하면 자녀를 줄 것이오. 단, 조건이 하나 있소.
그대가 무엇을 원하든 그대의 경쟁자는 두 배를 얻게 될 것이오.
즉 그대가 금화 10개를 원한다면 그는 금화 20개를 얻게 될 것이오.”
천사의 말을 들은 상인은 한참 궁리를 하더니
“제가 무엇을 바라든지 다 이뤄진다는 말씀이지요?”하고 되물었습니다.
천사가 그렇다고 하자 상인은 크게 숨을 내쉰 다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 한쪽 눈을 멀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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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송봉모 신부님의 <상처와 용서> 중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앙심을 품고 증오에 휩싸인 사람이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화입니다.
예전에 포스팅한 <사랑을 키우는 햇살, 용서>(http://bonlivre.tistory.com/12)의
저자 에버렛 워딩턴은 용서는 "마음속에 있는 보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용서'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자였던 그는 어느 날 밤 강도에게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습니다. 아무리 용서를 연구하는 학자라 한들 어머니를 죽이고
50달러도 채 안 되는 돈을 챙겨 달아난 두 괴한을 용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들을 용서했고, 이 사건은 그의 ‘용서’ 연구에 더 큰 진정성과 열정을
불러일으켜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용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건강한 몸과 정신, 인간관계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용서를 못하고 앙심을 품는 데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우리의 면역체계를 망가뜨리고,
분노,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 정신적/정서적 건강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화 <밀양>에서의 신애(전도연)와 같이 정작 용서를 받아야 할 당사자,
즉 신애의 아들을 납치해서 살해한 학원 원장은 한껏 평온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데,
상처를 입은 쪽은 그 모습을 보고 절규하는 이중의 고통에 빠진다는 것 역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도 용서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
그것도 한시바삐 용서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게 해줍니니다.
“용서의 엄청난 혜택은 용서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므로 용서는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다“
라는 라와나 블랙웰의 말도 그런 뜻을 담고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오늘의 포스팅은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방송작가이자 아루이 명상지도자인 문화영님은 <무심>이라는 책에서
용서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루이'란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샘솟는다'는 뜻으로, 명상을 통해 좋은 기가
샘물처럼 솟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용서하면 안 되는 것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인생을 낭비하는 것 입니다.
쓸데없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든지, 자기 힘으로 안 되고
인륜도 천륜도 아닌 것에 매어서 인생을 낭비한 것을 용서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세상을 재미없어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세상을 통해 공부하라는 것이고, 우리는 다 공부하러 나온 학생입니다.
그런데 학생이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고 공부를 재미없어하면 안 되겠지요.
입버릇처럼 죽어야지, 사는 맛이 없다느니 하면서 의욕이 없고 우울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인데 사랑하지 않고
팽개쳐두는 것 역시 용서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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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저자는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분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즉 "어떤 상황인가? 용서할 일인가, 용서 못할 일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인륜이나 천륜, 즉 윤리를 벗어난 패륜행위, 즉 인간의 수준에 못 미치는 행위,
곧 짐승만도 못한 행위를 한 사람에게까지 용서의 미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