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4월의 시 모음

 

 

스페인 출신으로 미국의 철학자이며 교수인 조지 산타야나가 하버드대학의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 강의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많은 동료들과 학생들이 모였는데, 강의를 하던 교수는 창밖으로 초봄의 초목들이 싹을 틔우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이제 그만 제 강의를 마쳐야겠습니다. 지금 막 제가 4월과 했던 약속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4월은 하나님이 창세기를 다시 쓰는  때라고 합니다. 산타야나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듣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은 당황했겠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그에게는 창밖에서  4월이 펼쳐 보여주고 있는 봄의 풍경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던 것이겠지요.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4월의 시모음]입니다. 지난 시간은 미련없이 떠나보내고, 이제 새봄이 펼쳐 보여주는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잔인한 잔치
시작되었네.
처소 곳곳에

퉁퉁 불어 있던
몸 동아리
터져 나오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오듯
하늘 향해 천지를 개벽시키네.

날카로운 칼바람
견디어 온
환희의 기쁨 숨어 있었네.


 -윤용기 <4월>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오세영 <4월>

 

  

 

 

바람의 힘으로
눈 뜬 새싹이 나풀거리고
동안거 끝낸 새잎이 파르르
목단꽃 같은 웃음 사분사분 보낸다

 

미호천 미루나무는
양손 흔들며 환호하고
조치원 농원에 옹기종기 박힌
복숭아나무는 복사꽃 활짝 피우며
파안대소로 벌들을 유혹하고

산수유 개나리 목련화는
사천왕처럼 눈망울 치켜뜨고
약동의 소리에 귓바퀴 굴린다

 

동구 밖 들판에는
달래 냉이 쑥 씀바귀가
아장아장 걸어나와
미각 돋우라 추파 던지고

둑방길에는 밥알 같은
조팝나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다

 

-반기룡 <4월>

 

 

 

 

꽃들아, 4월의 아름다운 꽃들아.
지거라, 한 잎 남김없이 다 지거라,
가슴에 만발했던 시름들
너와 함께 다 떠나버리게

 

지다 보면
다시 피어날 날이 가까이 오고
피다보면 질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

새순 돋아 무성해질 푸르름
네가 간다 한들 설움뿐이겠느냐 

 

4월이 그렇게 떠나고 나면
눈부신 5월이 아카시아 향기로
다가오고

바람에 스러진 네 모습
이른 아침, 맑은 이슬로 피어날 것을

 
-목필균 <4월이 떠나고 나면>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 넣고 있을
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것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4월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조국에도
어느 머언 심저,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 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한강연안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

 

-신동엽 <4월은 갈아엎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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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oud5381 2014.04.04 16:58 신고

    다섯편의 고운시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4월,저에겐 참 많이 힘든 시간들이지만
    마음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안아 봅니다.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4.04.05 14:26 신고

      넵! 4월은 그렇게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희망참 시간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수정

  • D00kie™ 2014.04.04 17:09 신고

    4월1일 학생중에는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등교한 아이도 있답니다. 그리고 칠판에 누군가 종강이라고 써 놓는답니다.
    교수님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깜놀표정을 짓는다네요 안그러면 재미없을까봐요..
    만우절날 만난 교수님이었는데...
    교육학을 가르치지만 대한민국애서는
    기득권 때문에 교수님도 어찌할 교육을 개혁할 방법이 없다네요..
    씁쓸하게도...
    중학교를 나와도 대우받는 세상이 되려면 기존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하며 지금의 청년실업도 이와같은 이유라네요...
    아무튼 다시오지 않을 봄을 만긱하시길...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4.04.05 14:29 신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대학을 나와서 직장을 다니느냐,
      아니면 그냥 직장을 다니느냐는 단순히 각자의 선택의
      문제일 뿐인 그런 세상이 되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참 어려운가 봅니다.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니까요..

      이모티콘이 재미나고 귀엽네요.
      왠지 악동 포도군을 연상케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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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매니저 2014.04.04 17:19 신고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답글 수정

  • Simon'hell 2014.04.04 19:09 신고

    마음이 녹녹해지네요^^

    답글 수정

  • 보시니 2014.04.05 10:04 신고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하지만, 찬양할만한 아름다움이 있는 달이기도 한 것 같아요.
    시에 익숙하지 않아 바로 와닿는건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선 이런 여유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십시오!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4.04.05 14:32 신고

      평소엔 무심코 지나가다가도 어느 날 문득
      가슴에 그 시귀가 와닿는 날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땐 그 짧은 글 속에 너무나도 큰 힘이 담겨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되 되는 것 같구요..^^

      날씨가 점점 이상해지네요.
      오후엔 월드컵 공원 쪽에라도 가보려고 했더니
      바람도 세게 불고 으스스 춥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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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듀이트 2014.04.05 10:16 신고

    잠시 인사드리고 갑니다`
    행복한 일만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답글 수정

  • 2014.04.07 09:10

    시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행과 연사이에서 시인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읽어 내려는 가운데, 나만의 즐거움을 갖습니다. 시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제각각이겠지만, 저는 나름대로 즐겨보렵니다...ㅋㅋ

    윤용기의 <4월>
    엘리엇의 잔인함이 관통의 아픔이라면, 윤용기의 잔인함은 파열의 고통, 씨앗이 터지듯 열리면서 싹이 돋아나는 것은 저 태초의 대폭발을 연상하게 합니다. 싹의 탄생은 그에게는 개벽이나 다름없음이니까요. 겨울의 차가운 칼바람을 인내한 덕에 사월의 생명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처럼 인생에서도 어려움을 이겨낸 자가 결국은 기쁨의 미소를 짓지 않겠습니까? 봄은 모두에게 인내의 열매는 달다는 교훈을 전해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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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리브르 2014.04.07 19:57 신고

      맨 처음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를 들었을 때는
      잔인하다는 그 단어 자체가 정말 잔인한 느낌이 들어서
      진저리가 쳐졌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전 봄을 싫어했는데,
      겨우내 흰눈으로, 혹은 딱딱한 땅으로 뒤덮여 있던
      모든 지저분한 것들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는
      그 모습이 싫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는 제게
      그런 의미로 다가왔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잉태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아름다운 고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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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08 17:04

    오세영의 <4월>
    4월의 봄바람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잠을 자는 아기가 느끼는 포근함을 4월에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생의 격정이나 역경들은 지나가고 말 것들, 그것이 지나가고 난 자리는 평온함이 감돕니다. 집을 나설 때 4월의 햇살과 대기는 모든 것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이제 벗꽃은 지나가고 목련이 피려나? 목련이 벌써 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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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리브르 2014.04.08 20:27 신고

      지난달 말에 천안 쪽에 갔다 왔는데, 그곳 산에는 개나리조차
      피지 않았는데, 서울에 돌아오면서 보니 여의도엔 개나리며
      진달래, 벚꽃, 목련까지 활짝 피었더라구요..
      그런데 같은 지역에서도 햇빛바른 곳이 그늘진 곳에는
      꽃이 전혀 피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올해는 꽃들도 좀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ㅎㅎ

      4월을 노래하는 시들과 함께 올 4월은 아주 진한 느낌으로
      보내게 될 것 같네요..^^

      수정

  • 2014.04.09 10:01

    목필균 <4월이 떠나고 나면>

    5월이 완숙한 여왕의 느낌이라면, 4월은 봄처녀. 문득 4월은 싱그러운 젊음이 피어나는 때라 느껴집니다. 봄 꽃들이 피는 것을 기뻐하며, 바람에 꽃들이 질 때면 아쉬운 마음이 인지상정이건만, 목필균 시인은 뒤집어 봅니다. 4월의 꽃들아 지거라 하면서. 계절은 가고 오는 것, 꽃잎이 지면 푸른 잎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무성한 잎사귀가 푸르름을 자랑하는 계절이 옵니다. 우리네 삶도 기어이 지나갈 것들을 아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다가올 것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곱게 보내주는 것도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일 것을...아직 4월이 많이 남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한껏 느껴보렵니다...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4.04.12 21:07 신고

      네, 그래서 잔인한 달 4월이라는 말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견뎌내는 4월이라는 계절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5월을 맞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5월을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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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10 12:10

    신동엽 <4월은 갈아 엎는 달>

    신동엽 시인은 또 다른 시각으로 4월을 바라보고 있군요. 정말 억눌린 감정이 터져 나오는 시구들입니다. 엘리엇, 윤용기 시인이 노래한 4월의 잔인함과는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한민족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정서가 들어 있네요. 동학혁명도 4월이었던가요? 그러고 보면 4월은 갈아 엎는 달이군요. 자연도 갈아 엎는 달이고요. 마음속에 간직한 새 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채, 4월의 아픈 시인의 마음을 누가 달래 줄건가요? 4월의 또 다른 모습이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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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리브르 2014.04.12 21:09 신고

      갈아 엎어서 새로운 기쁨을 느낄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괴어 있는 것, 딱딱한 것,
      굳은 것..이런 것들은 다 흐르고, 부드러워지고,
      말랑말랑해져서 아름다운 세상을 꽃피울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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