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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뜻과 유래를 잘 모르고 쓰는 단어 10선

유래를 잘 모르고 쓰는 단어 10선

 

흔히 사용하면서도 그 뜻과 유래를 모르고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이자 [단어로 읽는 5분 한국사]의 저자인 김영훈 박사는 단어를 통해 새롭게 역사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 중 뜻과 유래를 잘 모르고 쓰는 단어 10선을 발췌해서 요약정리해 보았습니다.  

 

김영훈 박사가 들려주는 [뜻과 유래를 잘 모르고 쓰는 단어 10선]입니다. 생활 속 단어 속에서 역사와 선조들의 생활상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뜻과 유래를 잘 모르고 쓰는 단어 10선

 

 1  개판 5분 전

 

개판 5분 전은 무질서하고 엉망인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언뜻 개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난리를 치는 모양을 나타낸 게 아닌가 추측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개'는 '열 개開'자로, '솥뚜껑을 열기 5분 전'이라는 뜻이다.

 

한국전쟁은 엄청난 사상사를 낳았고, 운이 좋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어쩌다 주한미군이 음식을 보급하는 날이면 사람들은 너도 나도 그릇이나 통을 들고 줄을 섰는데, 보통은 큰 솥이나 드럼통에 넣고 끓인 음식이 배급되었다. 바로 여기서 뚜껑을 열기 5분 전을 뜻하는 '개판 5분 전'이란 말이 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먼저 음식을 받기 위해 서로를 떠미는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뜻과 유래를 잘 모르고 쓰는 단어 10선

 

 2  거덜나다

 

조선에는 국가적으로 말을 키우고 관리하는 사복시(司僕寺)라는 관청이 있었다. 이 사복시에는 거덜이라는 하급 관직이 있었는데,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말똥을 치우는 일을 주로 했다. 이런 거덜들이 특별하게 소리를 낼 때가 있었는데, 바로 왕이나 고관대작들이 행차할 때였다.

 

거덜들은 행차하는 주인공의 권위를 등에 업고 앞서서 소리를 지르거나 허세를 부리며 몸을 과장되게 앞뒤좌우로 흔들며 길은 텄는데, 그 모양새를 두고 '거덜거리다'라고 한 것이 오늘날 '거들먹거리다'라는 말로 이어졌다. 거만한 태도를 가리키는 '거드름'이라는 말도 거덜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거덜나다'는 거덜이 앞뒤좌우로 몸을 흔드느라 온몸에서 힘이 빠져 기반이 흔들리는 모양을 의미한다. 

 

 

 3  건달

 

빈둥빈둥하며 게으름을 피우거나 일은 하지 않고 노는 사람을 가리키는 건달의 어원인 '건달바'는 놀랍게도 인도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병을 치료하는 신령한 물을 담당하며 향기만 먹고 사는 선한 신인 건달바는 또한 음악의 신이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전문 악사들을 건달바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천상의 음악 신이 어떻게 건달로 변했을까?

 

그것은 음악을 진정한 노동이나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과거의 인식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전문 음악인들이 큰 인기를 누리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음악가들은 천대를 받았다. 심지어 '딴따라'라는 속어까지 있었다.

 

음악을 뜬구름 잡는 일로 치부했던 그 시절에는 음악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런 이유로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별다른 직업도 없이 음악만 하며 살아가는 실속 없는 사람들을 '건달'이라고 불렀다.  

 

 

 4  난장판 

 

예전에는 5일장, 7일장처럼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이 아니라 특별히 임시로 열리는 시장을 난장이라고 불렀다. 정기시장과 달리 난장이 서면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잔치에 불청객들도 많아 시끌벅적하고 무질서했다. 그래서 어지러울 난亂자를 붙여 난장이라고 불렀다.

 

그 때문에 난장판 하면 복잡한 시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난장판에서 난장은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장을 일컫는 용어였다. 조용해야 할 시험장을 가리키는 데 왜 난亂자를 사용했을까?

 

조선의 과거시험의  나라로 불릴 만큼 시험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다 보니 신분상승의 유일한 통로인  이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요즘에도 이따금 일어나는 시험문제 사전 유출은 물론 대리시험 같은 부정행위도 저질러졌는데, 특히 조선 후기부터 과거시험의 부정행위가 도를 넘어 시험장이 점점 난장판이 되었다고 한다. 

 

 

 5  단골 

 

단골은 식당이나 가게 주인과 손님 간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단골은 한국의 무교와 관련된 말 중 가장 오래 쓰이고 있는 말이기도 한데,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바로 단골을 한자로 옮긴 말이기 때문이다.

 

단골은 오래 전부터 한반도에서 활동해 온 무당을 가리키는 말로, 정확히 말하면 세습무를 의미한다. 무당이 되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신의 부름을 받아 강신무가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당인 아버지나 어머니로부터 그 신분을 이어받아 세습무가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 세습무를 흔히 단골이라고 불렀다.

 

세습무는 마을사람들과 오랜 기간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그 지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단골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물론 지금은 무교와 전혀 상관 없는 일상어가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6  땡전

 

"땡전 한푼도 없다"고 말할 때 쓰이는 '땡전'은 조선시대에 사용된 당백전(當百錢)이라는 돈 이름에서 유래했다. 당백전은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만들어졌는데, 왕실의 위엄을 회복하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당시 삶이 피폐해진 백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농민봉기를 일으키며 정부의 무능을 비판했는데, 흥선대원군은 이를 경복궁 재건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하지만 궁을 다시 지을 돈이 없자 당백전을 발행한 것인다.

 

이로 인해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는 계속 올랐고, 당시 당백전의 가치는 실제 가치의 20분의 1까지 떨어졌다.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복궁 재건에 동원된 인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백전으로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 사이에서 돈이 하나도 없다는 뜻으로 "땡전 한푼 없다"는 말이 퍼져나갔다고 한다.

 

 

 7  미련 

 

미련이란 떠난 사람을 깨끗이 잊지 못하고 쓸데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계속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하며, 또 둔하고 고집스러운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미련은 본디 상례에서 나온 말이다. 한자로는 未練이라고 쓰는데, 이는 아직 연복((練服. 사람이 죽은 지 12개월부터 27개월까지 입는 상복)을 입지 않는 소상 전까지의 기간을 뜻한다.

 

소상(小祥)이란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1주기인 소상이 되면 상주는 상복을 벗고 연복으로 갈아입은 뒤 아침저녁으로 하던 곡을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에만 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미련은 사람이 죽은 뒤 아직 기억이 생생하고 그리움이 많이 남은 1년 동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8  어영부영  

 

조선은 1876년 일본과 맺은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점차 외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이 과정에서 고종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전통 군대조직을 개편하고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한다. 그런데 기존의 5군영이 2군영으로 통합되면서 많은 군인들이 실직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군대들도 오랫동안 급료를 받지 못한 채 차별대우를 받았다.

 

급료를 주지 않으니 자연스레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은 군기가 빠져서 형편없는 군인들의 모습을 비꼬며 어영비영(御營非營)이라고 했다. 영은 당시 조선의 군영 중 하나인 어영청(御營廳)을 가리키는 말로, 어영비영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영도 아닌, 군대 같지도 않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발음하기 편한 대로 어영부영으로 바뀌면서 '뚜렷하거나 적극적인 의지가 없이 되는 대로 행동하는 모양'을 의미하게 되었다.

 

 

 9  퇴짜  

 

조선시대에 오늘날 경매장에서 고기의 등급을 판정하고 도장을 찍듯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특산품과 공물을 올리면 판적사(版籍司) 라는 호조 관리들이 꼼꼼히 살펴보고 등급을 매겼다. 이때 품질이 낮은 공물에는 退(물러날 퇴)라는 글자를 찍었는데, 이는 상품을 모두 물리고 다시 올리라는 뜻이었다. 여기에서 글자 그대로 '물러가라'는 뜻의 '퇴자를 놓다'라는 말이 생겨났고, 오늘날에는 '퇴짜놓다'는 말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10  패거리 

 

패거리 하면 깡패의 패牌자가 들어 있어서인지 무척 기분나쁘게 들린다. 이 말은 본디 조선시대의 궁궐 경비, 군사조직과 관련된 말이다. 패牌는 다른 말로 번番이라고도 했는데, 우리가 흔히 쓰는 불침번이나 당번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패는 번을 서는 한무리로, 군대 편성으로 보면 가장 작은 단위다.

 

그런데 패는 어쩌다가 오늘날의 패거리가 되었을까? 아마도 당시 순찰을 도는 경비를 맡은 몇몇 패들이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된 게 아닐까 싶다. 급기야 비공식적인 패까지 형성해 '길'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무례하게 행동하자 이를 주고 길을 의미하는 거리와 패를 합쳐서 패거리라고 부른 것이다. 

 

이상, 뜻과 유래를 잘 모르고 쓰는 단어 10선입니다. 도움이 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