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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왜 내겐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걸까? 비관주의

왜 내겐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걸까? 비관주의

 

비관주의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왜 내겐 안 좋은 일만 일어날까?" 하고 가슴을 부여잡고 호소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파울 바츨라비크(Paul Watzlawick)의 주장처럼 세상은 우리의 적이 아니며, 그저 그렇게 보이고 느껴질 뿐입니다.

 

심리상담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세라 톰리가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과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이론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왜 내겐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걸까? 비관주의]입니다. 비관주의란 무엇이고 비관주의의 가치는 무엇인지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왜 내겐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걸까? 비관주의

 

 비관주의란 무엇인가?

 

비관주의는 세상이 생동감, 색, 희망의 대부분을 잃게 하는 태도나 시각이다.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언제나 나쁜 일만 일어나"라는 우울한 믿음에서 시작되어 "게다가 그 누구보다도 내게 훨씬 자주 일어나"라는 생각으로 발전하고, "아마도 다 내 탓일 거야"로 귀결되는 부정적 사고방식이다.

 

이처럼 비관주의자는 일회성 사건을 언제나 영원히 일어나는 것으로 바꾸고, 그런 생각을 토대로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며, 그러니 무슨 일이든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짓는다.

 

왜 내겐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걸까? 비관주의

 

 자기외면  

 

희망을 잃은 비관주의자는 세상이 자신에게 나쁜 일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일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그것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그리고 믿어서는 안 될 일회성 사건으로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비관주의자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인식하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니 자신을 외면하고 세상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 역시 유쾌하지는 않지만, 수용하기가 좀더 쉽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자의 경우는 어떨까?

 

한편 낙관주의자는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이는 안경을 쓰고 산다. 이들의 긍정적 사고방식은 자신과 타인들, 그리고 세상이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만일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저 운이 없었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비관주의자와 비교했을 때 낙관주의자는 자존심이 건강한 수준이고 자신감도 더 많다. 이들은 더 행복하고 학교나 직장에서도 더 잘 지내며 끈기있는 모습도 더 자주 보여준다. 또한 건강상태도 더 양호하며, 어쩌면 비관주의자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누가 비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원할까? 긍정심리학의 대가 마틴 셀리그만은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수년에 걸쳐 비관적인 시각을 점진적으로 학습해 왔을 뿐이다. 타인들이 우리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것을 그대로 흡수한 것이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없을까?

 

우리는 자신이 '사실'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는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안토니오 다마지오와 같은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감정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 연구를 통해 뇌에서 감정을 일으키는 부분을 다친 사람들이 전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와 같은 간단한 결정을 내리는 것조차 어려워한 것이다.

 

감정예상에 의지해 개인적인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예상은 지난날의 경험에 좌우된다. '저번에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됐더라? 아, 내가 일을 망쳐놨었지'라는 생각이 들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고 그 일에서 멀어지게 된다.

 

 

 비관적인 시각에도 장점이 있을까?

 

비관적인 시각은 모험심이 가득한 낙관주의자가 롤러고코스트를 탄 것처럼 감정이 널뛰는 것을 방지할 때 유용하다. 유일한 문제는 비관주의자가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것이다.

 

비관주의자는 낙관주의자의 꿈이 일시적으로 무너질 때 의기양양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문제가 적대적인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쓸모없는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습된 낙관주의

 

다행히도 비관주의자의 생각은 잘못됐다. 비관주의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관주의자가 습관적인 사고 패턴을 몇 개만 바꾸면,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는 않더라도 좀더 낙관적으로 살 수 있다.

 

마틴 셀리그만은 만일 비관주의가 학습된 것이라면 낙관주의도 학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나쁜 일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반박하는 습관을 바탕으로 하는 학습체계를 제안한다.

 

- 내가 관찰한 것이 명백한 사실일까?

- 근거도 없이 추정한 내용이 개입된 것은 아닐까?

- 만일 길에서 마주친 친구가 아는 척하지 않는다면 나를 피하려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조금씩 무너뜨리면 낙관주의가 색, 에너지, 희망을 안고 조금씩 스며들지도 모른다.

 

 

 비관주의의 가치

 

그러나 완고한 비관주의자는 마틴 셀리그만의 학습된 낙관주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럴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괴로움과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인식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에미 판되르전(Emmy van Deurzen)과 같은 실존주의 심리치료사의 이론을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에미 판되르전은 "삶을 포용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고통, 불안, 죄책감을 존재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반갑게 맞아들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신적인 고통은 인간이 성취한 것이며, 고통을 동반하는 불안과 죄책감은 우리가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니 고통을 낱낱이 파헤쳐라. 자신의 존재 이유와 진짜라고 느껴지는 모든 것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마라. 그런 다음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이게 이야기해 주어라. 미술과 문학의 대부분은 비관주의자의 손에 달려 있다.

 

이상, 왜 내겐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걸까? 비관주의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