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쿠아론 감독 로마 / 디시에르토 / 그래비티 / 칠드런 오브 맨
멕시코 출신의 영화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2018년 제75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했다. 멕시코와 미국을 오가며 감독과 제작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14년 제8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그래비티]로 감독상, 촬영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래비티]는 타임지가 뽑은 2013년 최고의 영화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래비티]가 우주 생존기라면 사막 생존기 [디시에르토]에서는 아들 조나스 쿠아론 감독과 함께 제작 및 작업에 참여했다. 멕시코 중산층 가정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시선을 따라가며 1970년대 멕시코의 정치적 혼란과 가정 내 불화, 사회적 억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로마]의 후기를 쓰면서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인 [디시에르토], [그래비티], [칠드런 오브 맨]도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로마 / 디시에르토 / 그래비티 / 칠드런 오브 맨
멕시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성체 축일 대학살’을 그린 장면도 나온다. 성체 축일 대학살이란 1971년 정부 지원을 받은 우익무장단체 세력 로스 알코네스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며 100여 명을 살해한 사건을 말한다.
클레오를 연기한 얄리차 아파리시오는 교사 지망생으로, 한 번도 연기를 해본 적 없음에도 조용히 자신의 위치에서 집안뿐 아니라 가족들의 상처까지도 보듬어내는 여성의 삶을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로마 / 디시에르토 / 그래비티 / 칠드런 오브 맨
로마라고 해서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인 줄 알았다. 그런데 멕시코 멕시코시티에 있는 중산층 동네라고 한다. 멕시코에서 태어나고 자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신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며 그려낸 자전적 작품이다. 영화는 어릴때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도우미 클레오의 시선에 따라 펼쳐진다. 감독은 영화 속 막내아들 페페다. 영화 속 집에는 감독의 어릴적 물건들이 많이 놓이고, 등장하는 개도 어릴때 키웠던 개와 아주 흡사한 모습이라고 한다.
미혼모가 된 것만으로도 잔뜩 겁에 질려 있던 클레오는 사산된 아기를 낳는다. 죽은 아기를 아주 잠깐 안아보고는 떠나보낸 후 충격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실어증에라도 걸린 듯 입을 다물어버린다. 하지만 다행히 깊은 바다로 나갔다가 익사할 뻔한 주인집 아들 둘을 수영도 못하면서 물에 뛰어들어 가까스로 구해내고는 비로소 복받치는 울음을 토해낸다.
그녀의 입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는 걸 원치 않았어요"란 말이 통곡처럼 터져나온다. 아기가 사산된 것은 자신이 태어나길 원치 않아서였다는 고백을 참회하듯 털어놓고서야 그녀는 죄책감, 죄의식에서 벗어난 듯 평온한 얼굴이 된다.
임신한 것 같다고 말하자 클레오를 영화관에 내버려둔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던 남자친구 페르민은 나중에 클레오가 찾아갔을 때도 자기 아이가 아니라며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두드려패기라도 할 듯이 위협을 가한다.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겁한 놈이다. 클레오의 주인집 남자, 즉 소피아의 남편도 바람이 나서 아내와 네 아이를 버리고 즐거운 인생을 살겠다며 떠난다. 자기 집 주차장에 들어가기도 힘들 만큼 큰 차를 몰고 다니는 허세에 쩐 남자다.
하지만 소피아는 그런 남편을 의연히 떠나보내고 아이들에게도 솔직하게 전후사정을 밝힌다. 그리고는 두 여자, 클레오와 소피아는 남자들의 도움 없이도 진심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기로 한다. 남남끼리, 그것도 고용주와 고용인으로 만났어도 인간적 우애가 가능했던 것이다.
1970년대에 멕시코에서 일어났던 학살은 우리의 5.18민주화운동을 연상케 한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보러 간 영화 [우주 탈출]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가 우주를 유영하다가 만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는 장면이 나와 재미를 더해 주었다.
흑백 영화는 처음엔 좀 갑갑하게 느껴졌지만, 차츰 익숙해지자 상상력의 극치를 선사해 주었다. 배경음악 없이 주변 상황을 사운드로만 처리해서 느끼게 한 점도 이 영화만의 특색이다. 무채색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영화, 우리의 어린시절을 비롯한 모든 과거는 이렇듯 머릿속에서 무채색으로 자리잡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갖가지 빛깔로 꽃을 피워내는 것이리라.
광활한 사막을 지나 국경을 넘기 위한 ‘살아야만 하는 자’와 자신의 영역을 철저히 지키려는 ‘죽이려는 자’ 사이의 숨 막히는 긴장감을 그린 생존 스릴러에서 두 주연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과 제프리 딘 모건은 환상적인 연기 호흡을 선보인다.
디시에르토(desierto)는 '사막'이라는 뜻이다. 그 죽음과도 사막에서의 생존기다. 어디에고 몸 하나 제대로 숨길 데 없는 사막에서 모세는 아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멕시코 국경을 넘고, 그 뒤를 미국인 킬러 샘과 그가 기르는 개 트래커가 위협적으로 쫓는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추격적은 모세가 과연 그 사막을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과 합쳐져 불볕이 내리쬐는 사막만큼이나 숨이 턱턱 막히게 한다.
모세가 함께 도망가다가 다쳐서 두고 온 여자를 다시 찾아가 힘겹게 다시 국경을 넘으려고 하는 모습은 가히 인간성의 승리라 할 만하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임에도 다시 돌아와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토록 숱한 사람들을 총으로 쏴죽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기는커녕 환호의 함성을 지르던 킬러 샘은 자신의 개 트래커가 죽자 통곡을 하듯 울음을 터뜨리고, 나중엔 자신이 총에 맞아 죽기 직전이 되자 미안해, 잘못했어 하며 엄살을 떠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에게 닷ㄱ치기 전에는 어떤 아픔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비열한 속성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제작을 맡고 그 아들 조나스와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하는데, 우주에서의 목숨을 건 생존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이 그래비티라며, 디시에르토는 사막에서의 생존을 거칠고 투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미국으로 넘어가는 국경지대에서는 지금도 불법 이민자들의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지고 있으리라. 그럼에도 국경을 구분한다고 세워놓은 것이 듬성듬성한 철조망이라는 것이 좀 놀랍다.
아이러니하게도 딸을 잃은 후 무의미하게 살아가던 라이언은 오히려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에 가장 처절하게 생을 위한 고군분투를 벌인다. 라이언은 적막을 이겨내기 위해 혼잣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답이 없는 교신을 이어나가며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다.
오로지 혼자힘으로 우주에서 살아 돌아온 멋진 라이온 스톤 박사. 그 라이언 박사 역을 산드라 블록이 너무나도 멋지게 해냈다. 엔딩에서는 바다에서 헤엄쳐 나와 흙을 만지고, 땅을 딛고 우뚝 일어나는 의연한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싶어졌다.
아름다운 우주를 마음껏 볼 수 있었던 근사한 시간이었다. 70억이라는 인구가 지구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복닥거리고 살 때 예측 불허의 위험도 불사하고 저 광활한 우주를 체험하는 원대한 꿈을 꾸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한편 아들이 죽은 후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 따위는 모두 잃어버린 남자 테오(클라이브 오웬) 의 앞에 20년 만에 나타난 전부인 줄리엔(줄리안 무어)은 기적적으로 임신한 흑인 소녀 키(클레어-홉 애쉬티)를 그에게 부탁한다.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눈앞에서 마주한 테오는 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열쇠를 쥔 키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인간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힘겨운 여정을 시작한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은 지가 18년이나 되었다는 세상이라는 소재 자체가 우선 놀랍다. 출산율이 날로 떨어져 가고 있어 다들 우려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아기의 탄생이 없다고 생각하니 끔찍스러울 만큼 암울한 미래가 눈앞에 펼쳐진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농촌지역에서는 아기 울음 소리 들린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한탄의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간의 본능 가운데 종족 번성의 본능만큼 강한 것도 없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무기력해질 대로 무기력해진 사람들 모습도 두렵게 떠오른다.
현실적으로도 장차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진심으로 걱정도 된다. 이 세상에 더 이상 태어나는 아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삶을 마감해야 한다면 얼마나 암울하고 허무할까? 작게 좁혀서, 한 가정에서도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을 슬프고 안타까운 일로 여기는데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영화에서나마 인간 프로젝트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테오 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라기보다는 한 편의 무거운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여서 그런지 엔딩에서 키를 통한 아기의 탄생을 알리는 울음 소리가 들려도 크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서도 어디선가는 소중한 생명이 태어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어찌 됐든 인류의 미래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이상, 알폰소 쿠아론 감독 로마 / 디시에르토 / 그래비티 / 칠드런 오브 맨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