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캐리 트루먼 쇼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사상 최대 사기기만극
짐 캐리 트루먼 쇼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사상 최대 사기기만극
TV 프로그램 중에서 거의 보지 않는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 류의 프로다. 얼마 전부터 트렌드인 듯 이 방송 저 방송에서 다양한 포맷으로 시도하고 있고 또 시청자들로부터 크게 호응받고 있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끌리지 않아서 프로그램 제목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다.
탤런트나 배우, 예능인들, 혹은 그 가족들을 출연시켜 타인의 사생활을, 그것도 백 프로 리얼도 아닌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나로서는 전혀 호기심도 느껴지지 않고 흥미도 없다. 그럼, 백 프로 리얼이라면, 그러면 믿고 볼 수 있겠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남이 사는 모습을 몰래 엿보는 느낌으로 들여다보는 게 뭐 그리 재미있을까 싶어서다. 그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의 삶대로 소중히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혹 제발 들여다봐달라고 요청을 한다 해도(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싫다!
그런 의미에서, 핀트가 약간 빗나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탤런트들이나 배우들이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이 닦고, 용변보고 하는 지극히 사적인 일들을 보여주는 것도 왠지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런 지극히 사적인 장면들을 스토리상 꼭 필요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도 굳이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져서다.
짐 캐리 트루먼 쇼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사상 최대 사기기만극
그런데 그런 소소한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쇼가 벌어진 적이 있다. 현실에서는 아니고,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아니고, 1998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트루먼 쇼]에서다. 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는 30세의 보험회사 직원으로 매일 그 날이 그 날인 듯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이 세상에 탄생한 순간부터 그의 모든 생활이 24시간 생방송으로 방영되고 있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영화가 시작된 시점은 세계 220개국의 17억 인구가 5천 대의 카메라로 그를 지켜본 지 10,909일째 되는 날이다. 그 많은 시청자들이 그 프로를 즐겨보고 있지만, 정작 그는 이 쇼가 진행중인 것을 모르고 있다.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싶지만, 실은 그가 몸담아 살고 있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세트장으로 구성돼 있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진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트장을 부수고 탈출을 감행한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최대 사기기만극인 이 [트루먼 쇼]가 10년 만에 재개봉돼 지금 영화관에서 상영중이다.
오직 시청률 하나에만 목을 매고 무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말 그대로 백 퍼센트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펼쳐온 사기기만극의 주인공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다. 타인의 사생활을 까발려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악마 같은 PD다. 하지만 그 자신은 세상은 언제나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기에,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는 가장 안전한 삶의 터전을 트루먼에게 제공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트루먼 쇼'를 즐겨 보는 시청자들이다. 트루먼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를 보아온 시청자들이기에 마치 부모처럼, 형제처럼, 이웃처럼 그에게 뜨거운 애정을 보내고, 그가 뭔가 곤경에 빠져 실망이라도 할라지면 함께 마음아파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 프로가 정작 주인공 본인만 모른 채 펼쳐지는 몰래카메라 같은 쇼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웃고 한숨지으며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를 즐겼던 시청자들도 악마적인 점에서는 크리스토프와 뭐가 다를까 싶다.
게다가 더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은, 트루먼이 자신이 가짜 쇼의 주인공이었던 것을 알고 작별인사를 고한 후 떠나버리는 바람에 방송 중단을 알리자, 금세 뭐 달리 더 재미있는 프로가 없을까 하고 채널을 돌리기 위해 리모콘을 찾더라는 것이다. 이래서야 30년간 애정을 가지고 본 프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다. 어리석게도 크리스토프가 바로 그런 시청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 거대한 사기극을 꾸며왔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한숨이 나온다.
트루먼의 절친이자 대학 동창 말론(노아 에머리히)이다. 그도 물론 '트루먼 쇼'에 출연하는 배우다. 물론 트루먼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리 없다. 그는 트루먼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것 같거나 세트장을 떠나려는 듯한 기미가 보이면 크리스토프의 지시에 따라 제꺼덕 6개들이 맥주캔을 들고 트루먼의 집으로 찾아와 그를 다시 평범한 삶을 살아가도록 눌러앉힌다. 쇼는 계속 진행돼야 하니까.
트루먼의 엄마(홀랜드 테일러)와 간호사인 아내 메릴(로라 리니) 역시 연기자다. 트루먼을 가장 가까이에서 조종하는 감시자인 아내 메릴은 자꾸 피지로 떠나고 싶어하는 남편이 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빨리 아이를 낳자고 조른다. 어떤 말을 하든 입을 열 때마다 크게 미소짓는 가식적인 웃음이 나중엔 진저리쳐지는 메릴이다.
절친도, 심지어 엄마도 아내도 다 연기자였다니! 그 사실을 안 순간 트루먼은 얼마나 큰 배신감과 공포에 휩싸이게 될까? 하지만 트루먼이 그 사실을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크리스토프는 신문이며 라디오 같은 미디어도 다 조작하고 심지어 기후 프로그램도 조작한다.
트루먼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피지 섬으로 가려고 배를 탔다가 바다 한복판에서 폭풍을 만나는데, 크리스토프는 폭풍이 몰아치게 하라고 지시하고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는 트루먼에게 물에 대한 공포증까지 심어주면서 세트장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방해한다.
하지만 트루먼은 가까스로 물 공포증을 이겨내고 험한 폭풍우에도 굴하지 않은 채 “날 막을 생각이면 차라리 죽여라!”고 당당히 외친다. 그리고 마침내 세트 벽에 설치된 계단을 발견하고 그 계단을 거침없이 걸어올라간다.
문앞에 다다른 트루먼은 잠시 망설이다가 비상구(exit)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문이 열리지만 선뜻 문턱을 넘지는 못한다. 그때 크리스토프의 목소리가 들리고, 트루먼은 그에게 “난 누구죠?”라고 묻는다. 그 물음에 크리스토프는 “네가 바로 스타”라고 대답하면서 "난 수백만 명에게 희망과 프로를 주는 프로를 만든다. 이 세상엔 거짓과 속임수뿐이지만, 내가 만든 그곳에서는 두려워할 게 없다"며 "자넨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로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식으로 그가 떠나지 못하도록 막는다.
트루먼은 자신 위에 군림하는 듯한 크리스토프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궤변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는 듯하지만, 곧 그의 회유와 협박을 뿌리치고 시청자들을 향해 "못 보게 될지 모르니 미리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굿나잇!" 하고 평소 하던 대로 활짝 웃으며 명랑쾌활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성큼 발을 옮겨 문 밖으로 나간다.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크게 환호한다. 그리고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곧 다른 재미난 프로는 없는지 여기저기 허겁지겁 채널을 돌린다. 30년을 사랑을 쏟으며 봐오던 프로그램이지만, 그리고 예기치 못하게 종료된 프로그램이지만, 단 1초도 망설임도 없이 단칼에 머릿속에서 지우고 떠나보내는 것이다. 각 프로그램의 연출자들이 시청률에 목을 매고 더, 더,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헤매는 이유를 대변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행히 뒤늦게나마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트장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트루먼은 그 벽을 부수고 나가지만, 이것은 엄연한 범죄다. 참으로 끔찍하고도 가공할 사상 최대의 사기기만 쇼다. 짐 캐리는 이 사기기만 쇼의 주인공 역을 때로는 고통스럽게, 때로는 슬프게, 또 때로는 유쾌하게 그 특유의 자유자재로운 연기로 멋지게 펼쳐 보여주었다.
그런데 문득 트루먼이 세트장을 부수고 나가는 저 장면도 혹 쇼는 아닐까 싶어진다. 아니면 이 세상 어디선가는 지금도 여전히 저런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또한 거대한 세트장은 아닐까 싶어 괜스레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들도 새삼 다시 살펴보게 된다. 어머니, 아내, 친구들, 직장 동료들, 그 외 거리에서 만나는 이웃들까지, 심지어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가짜로 만들어냈던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런 생각도 들 법하지 않을까 싶다.
이상, 짐 캐리 트루먼 쇼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사상 최대 사기기만극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