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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로얄 테넌바움 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로얄 테넌바움 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로얄 테넌바움 문라이즈 킹덤

 

CGV아트하우스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대표작을 모은 웨스 앤더슨 특별전을 지난잘 20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전국 CGV아트하우스 19개관에서 순차 상영하고 있다. 특별전 상영작은 [바틀 로켓], [문라이즈 킹덤], [다즐링 주식회사], [판타스틱 Mr. 폭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5편인데 이 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문라이즈 킹덤], 그리고 이 특별전에는 상영되지 않는 [로얄 테넌바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보려고 한다.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로얄 테넌바움 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슨은 섬세하고 정교한 미장센과 환상적인 색채로 잘 알려진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이자 독특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자신이 만든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직접 시나리오를 쓸 만큼 글쓰기 능력이 뛰어난 그의 영화는 주로 무미건조한 유머와 결함을 가진 사람들, 특이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느 영화에서나 보여지는 강박적 대칭구도, 놀링(Knollong) 기법(피사체들을 병렬 혹은 90도로 배치하는 것), 스냅 줌, 슬로 모션, 독특한 색감 등이 그의 영화의 큰 특징이다. 그 중에서도 매혹적인 색감과 강박적 대칭구도를 이루는 거의 모든 장면은 하나하나가 예술작품 그 자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틸다 스윈튼 랄프 파인즈(2014년 개봉 2018년 10월 11일 재개봉)

 

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놓인 1927년 어느 날, 세계 최고의 부호 마담 D.(틸다 스윈튼)가 의문의 살인을 당한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바로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이자 그녀의 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다. 

 

구스타브는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충실한 로비보이 제로(토니 레볼로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 사이에 구스타브에게 남겨진 마담 D.의 유산을 노리던 그녀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는 무바지한 킬러를 고용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찾는다. 

 

 

이렇듯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기상천외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의 발생으로 시작되는 미스터리 코미디이지만, 1930~80년대 유럽으로의 환상적인 시간여행을 떠나는 이 영화는 사실 스토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84세의 미망인 마담 D.역을 소화하기 위해 매일 꼼짝없이 5시간 동안 헤어와 메이크업 분장을 해야만 했다는 틸타 스윈튼이 등장하고, 또 매력적인 배우 랄프 파인즈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실제 주인공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 자체>로 봐야 할 듯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화려하고 독특한 의상과 소품, 분장들이 빚어내는 영화의 모든 장면 하나하나 역시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영화 속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가상의 국가 주브로브카(Zubrowka)의 온천관광 도시에 위치해 있으며, 193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유럽의 모습을 담고 있다. 

 

끔찍한 전쟁이 전 유럽을 덮치자 평온하고 예술을 사랑하던 시대가 끝나고, 나치즘과 파시즘의 등장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물론 또 다른 중요한 주인공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환상적이고 예술적인 외관을 뽐내며 호화스러운 전성기를 누리던 호텔은 어느덧 빛바랜 모습으로 변해 간다.  

 

 

웨스 앤더슨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한 후 아내와 자살로 삶을 마친 독일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기구한 삶과 직관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읽고 이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화무는 십일홍이라고, 그 어느 사람도, 또 그 어떤 사물도 주변의 영향과 세월의 변화 앞에서는 무력하기에, 이러한 삶의 덧없음을 무너져 가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공간을 이용해 표현해 낸 것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독일 동부 도시 괴를리츠의 큰 백화점을 고풍스럽게 세트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한 컷 한 컷이 모두 화폭에 담긴 한폭의 그림 같다. 분명 살인이 저질러지고 19금 대화가 오가는데도 영상의 아름다움에 취해 전혀 살벌하지도, 또 전혀 난잡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토록 오프닝 씬부터 엔딩 신까지 동화 속 판타지 같은 씬들의 연속일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로얄 테넌바움 - 진 핵크만 안젤리카 휴스턴 벤 스틸러 기네스 팰트로 루크 윌슨(2002년 개봉)


웨슨 앤더슨의 세번째 영화인 [로얄 테넌바움]은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반영한 것으로 가족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아버지 로얄 테넌바움(진 핵크만)과 아내 에슬린(안젤리리카 휴스턴) 사이에는 아이가 셋 있는데, 하나같이 타고난 천재들이자만 어렸을 때 부모가 별거하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산다.

 

이렇듯 산산조각난 가족들은 20여 년이 지난 어느 겨울, 돈이 바닥이 나자 불치병에 걸렸다는 거짓말로 무작정 집으로 쳐들어온 아버지 로얄 때문에 다시 한 집에 모이게 된다. 하지만 거짓말이 밝혀지자 뻔뻔스럽기 그지 없는 로얄은 뒤늦게나마 아버지 노릇을 하겠다며 나서지만, 이미 저마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린 자식들을 되돌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채스(벤 스틸러)는 10대 초에 부동산 투자 전문가가 되고 국제금융에 관해서도 믿기 어려울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입양된 딸 마고(기네스 팰트로)는 극작가로 15세에 브레이버만 그란트 상과 부상으로 5만 달러를 받았으며 훗날 퓰리처상도 수상한다. 리치(루크 윌슨)는 주니어 챔피언 테니스 선수로 3년 연속 US 오픈 타이틀을 획득한 경력이 있다. 이런 자식들을 버리고 아버지는 제멋대로의 삶을 만끽하다가 곤궁해지자 뒤늦게 돌아와 '반성하는 척하며' 주절주절 이런저런 사과의 말과 용서해 달라는 말을 늘어놓지만, 그 말이 곧이들릴 리 없다.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은 뒤 사고 공포증에 시달리는 차스는 두 아들에게 끊임없이 안전, 안전을 주입시키는 독불장군 아빠가 되어 있고, 리치는 남몰래 사랑했던 입양된 누나 마고가 결혼을 발표하자 실의에 빠져 여기저기 떠돌며 살고 있다. 마고 역시 무기력할 대로 무기력한 모습으로 화장실이든 어디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줄담배를 피워대며 소중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참이다.

 

 

하지만 자식들의 망가진 모습을 보게 된 아버지는 이제 '반성하는 척'이 아니라 진심으로 '반성을 하기' 시작하고, 늙은 나이에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까지 하면서 건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진정어린 모습을 보고 자식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지니고 있던 마음의 상처를 하나둘씩 꺼내보이면서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이 가족에 관한 한 꼭 맞는 것 같다.  

 

어린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어른들. 사랑받고 싶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그 말을 내뱉어봐야 공허한 울림이 되어비릴 게 뻔해서 입을 다물어버린 테넌바움 가족들이다.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침묵의 테넌바움 전함을 침몰 직전에 구하고자 애쓴 아버지 로얄에게 따뜻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 역시 스토리보다 한 장면 한 장면 놓치고 싶지 않은 뛰어난 영상미가 한순간도 눈길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문라이즈 킹덤 - 자레드 길만 카라 헤이워드 브루스 윌리스 틸다 스윈튼(2013년 개봉)

 

카키 스카우트 샘 (자레드 길만)과 외톨이 소녀 수지(카라 헤이워드)의 엉뚱발랄한 사랑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는 [문라이즈 킹덤]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일곱번째 작품인데, 독보적인 감독의 섬세한 디테일과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제65회 칸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됐으며, 2012년 뉴욕영화비평가협회에서 최우수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사고로 가족을 잃고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카키 스카우트의 문제아 샘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친구라고는 라디오와 책, 고양이밖에 없는 외톨이 수지는 1년 전 교회에서 단체로 연극을 보다가 만나게 된다. 까마귀 분장을 하고 있는 수지에게 한눈에 반한 샘은 그 후 수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 동안 감춰왔던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나누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서로를 보듬어주는 유일한 소울메이트이자 연인이 된 샘과 수지는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아지트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챙겨들고 저마다 약속장소로 향한다. 몇 시간 후 샘과 수지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펜잔스 섬은 발칵 뒤집히고, 수지의 부모님과 카키 스카우트 대원들은 둘의 행방을 찾아 수색작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여행을 시작한 두 사람의 준비물이 재미있고 아이답다. 수지는 소녀 취향이 가득한 책과 음악을 주로 가져오고, 샘은 스카우트 소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소품들이 바닷가로의 도피여행에서 수지를 지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서로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들의 발칙하기 그지 없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벌이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이 영화의 '문라이즈 킹덤'(달이 뜨는 왕국)이라는 제목은 수지와 샘이 함께 지낸 바닷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미 동심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의 눈에는 그저 당돌하게만 보일 12살의 샘과 수지의 사랑이다. 그래도 이해해 주고 도와주는 동무들과 어른들이 있어서 그 둘의 사랑이 단순한 치기로 끝나지 않아서 좋았다. 어린시절로 다시 돌아가 마음이 가는 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웨스 앤더슨표 어른동화다. 

 

강박적인 대칭구도와 색감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뜻밖에도 조그만 섬의 경찰 역을 블루스 윌리스의 등장이 반가웠다. 사회복지사 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의 카리스마도 역시나 돋보였다. 


이상,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로얄 테넌바움 문라이즈 킹덤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