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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인생은 아름다워 왕수다쟁이 아빠 로베르토 베니니의 아름다운 인생

인생은 아름다워 왕수다쟁이 아빠 로베르토 베니니의 아름다운 인생

 

유머러스한 사람은 언제나, 누구에게서나 환영을 받는다. 가볍게 툭툭 던지는 위트있는 말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니, 대화상대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유머러스한 남자를 1등 신랑감으로 꼽는 여성들도 있는 듯하다. 

 

실제로 늘 재미난 말로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을 끌어내는 개그맨들이 미인 아내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유머감각에 끌렸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하긴 그런 줄 알고 배우자로 선택했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집에서는 늘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실망했다는 말도 어느 프로에선가 들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왕수다쟁이 아빠 로베르토 베니니의 아름다운 인생

 

그런데 그 점에 관한 한 절대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는 최강자가 나타났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의 아름다워](Life the Beautiful. La vita è bella)의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로베르토 베니니(귀도)다. 문제는 귀도가 유머러스함을 넘어 거의 왕수다쟁이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종달새처럼 지저귄다고 하면 너무 좋게 표현해 준 것이고, 쉴새없이 나무를 딱딱 쪼아대는 통에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거릴 것 같은 딱따구리 수준이다. 

 

아마 초긍정마인드의 소유자이자 욍수다쟁이인 노홍철급쯤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그런대로 익숙해졌지만, 처음 노홍철이 TV에 등장해 단 1초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 모습을 보고 몹시 놀랐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인생은 아름다워 왕수다쟁이 아빠 로베르토 베니니의 아름다운 인생

 

하지만 로마 상류층 가문의 딸인 도라(니콜레타 브라스키)가 유쾌발랄하다 못해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드는 왕수다에 반해서 자신의 약혼자를 차버리고 시골 총각 귀도와 결혼한 거라면, 그 선택은 100퍼센트 옳았다. 귀도의 그칠 줄 모르는 수다는 사랑스러운 도라와 결혼을 하고 나서도,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아들 조수아(조르지오 칸타리니)를 낳고 나서도 전혀 변함이 없었으니 말이다.

 

 

유머러스한 것은 좋아해도 말이 많은 것은 누구나 질색하는 법이다. 재미나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방적으로 혼자 주절주절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귀도는 그 왕수다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그것도 그 날이 그 날인 평온한 상황이 아닌, 너무나도 참혹한 상황에서 말이다.

 

귀도가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낳고 행복에 젖어 살기까지의 삶을 보여주는 동안 내내 밝은 분위기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던 영화는 아들 조수아가 다섯 살 생일을 맞는 날, 느닷없이 음울하다 못해 참혹한 분위기로 돌변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들이닥친 독일군들이 귀도와 어린 조수아를 끌고 가 유태인 수용소행 기차에 태웠기 때문이다.

 

한편 도라는 남편과 아들이 유태인 수용소로 끌려간 것을 알고는 자신은 유태인이 아닌데도 죽어도, 살아도, 가족과 함께하겠다며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그 순간부터 귀도와 조수아, 도라 이 세 가족 앞에는 난생 처음 겪는 끔찍한 고난이 펼쳐진다. 하지만 귀도의 왕수다는 이런 비참한 상황 앞에서도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빛을 발한다.

 

영문도 모른 채 아빠에게 안겨 수용소로 끌려온 어린 아들에게 귀도는 참혹한 수용소 생활을 감추기 위해 가족 모두가 게임에 선발돼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는 쉴새없는 수다로 게임의 규칙을 들려주면서 아들이 잠시도 다른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게임의 규칙에 따라 1000점을 먼저 얻는 1등에게는 장난감 탱크가 아닌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준다는 말에 마냥 기뻐하는 조수아다. 아빠 덕분에 조수아는 자신이 수용소에 끌려와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또 언제 죽을 목숨인지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나름대로 재미나게 보낸다.

 

때로는 뭔가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서 아빠에게 여기저기서 들은 말을 들려주며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기도 하지만, 귀도가 누군가? 마치 사생결단이라도 하듯 그는 끝없는 수다로 아들의 의구심을 깨끗이 날려버린다. 하긴 말로만이 아닌 진짜 '사생결단'이다. 아빠의 말을 조수아가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않으면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참혹함 속에서도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고, 어느덧 전쟁이 끝나간다는 말을 들은 귀도는 수용소를 빠져나가기 위해 조수아를 창고에 숨겨두고 아내를 찾아나선다. 바지를 무릎 위까지 돌돌 말아올리고 그 위에 긴 스웨터를 걸치니 치마를 입은 모습이다. 그리고 머리에 두건을 두르니 영락없는 여자 모습이다.

 

이렇게 여자로 변신한 모습으로 귀도는 남자 수용소와 격리된 여자 수용소로 아내를 찾으러 들어간다. 간절한 마음으로 애타게 도라를 부르며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애닯기 짝이 없다.   

 

 

결국 아내를 찾지도 못한 채 터덜터덜 돌아나오던 그는 독일군에게 발각돼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콘크리트 기둥 뒤로 끌려가고, 곧이어 총소리가 들리더니 독일군이 허겁지겁 달려나온다.

 

처음엔 혹여 귀도가 독일군을 쏜 것이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건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스토리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관객들의 소망대로 흘러갈 리 없다.

 

 

다음날 아침, 독일군들이 물러가고 숨어 있던 유태인들이 여기저기서 한 사람씩 나타나 수용소 밖으로 빠져나간다. 창고 틈새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던 조수아는 주변이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조용해지자 그제야 아빠가 꼼짝 말고 숨어 있으라던 창고에서 나온다.

 

바로 그 순간 탱크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고, 드디어 어마어마한 위용을 갖춘 진짜 탱크가 조수아 앞에 나타난다. 1000점을 채웠으니 상품으로 진짜 탱크를 받은 줄 알고 조수아는 좋아라 하며  탱크 앞에 멈춰서고, 탱크에 타고 있던 미군은 탱크를 보고 천진난만하게 기뻐하는 그를 안아올려 탱크에 태운다.

 

 

탱크를 타고 가던 조수아는 미군을 따라가고 있는 유태인들의 행렬 속에서 엄마를 발견하고 달려간다. 그는 엄마에게 덥석 안기면서 아빠와 자기가 게임에서 이겨 탱크를 선물로 받았다고 기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맑고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그 놀이에서 아빠가 얼마나 웃기는지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고 덧붙인다. 

 

그 자리에 아빠 귀도가 함께하지 못한 것이 더없이 가슴아픈 일이지만, 귀도는 끔찍이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드디어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온 것을 하늘나라에서 기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역시나 재잘재잘 조잘조잘 잠시도 입을 쉬지 않으면서 말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이 얼마나 진부한 제목인가 싶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제목이 아니면 대체 어떤 단어로 이 영화를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적어도 가족에게 아름다운 인생을 계속 살아가게 만들어주고자 온마음을 다 바친 귀도를 남편, 아빠로 둔 도라와 조수아라면,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와 자격이 충분하리라.  

 

참으로 위대한 아빠 귀도 역을 맡아 감동을 선사하는 로베르토 베니니는 자신의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직접 [인생은 아름다워]를 제작하여 1997년에 첫 개봉했으며, 2016년에 재개봉되었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아내 도라 역을 맡은 니콜레타 브라스키는 실제로 그의 아내라고 한다.

 

이상, 인생은 아름다워 왕수다쟁이 아빠 로베르토 베니니의 아름다운 인생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