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강제연행 연구자 하야시 에이다이 나는 비국민의 아들입니다
지난주 EBS [지식채널e]에서는 조선인 강제연행 연구자 하야시 에이다이(林えいだ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50여 년간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기록을 해온 하야시 작가는 1933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84세다. 그가 지금까지 조선인 광부와 노동자, 특공대의 한 많은 삶을 기록한 책은 무려 57권이다.
조선인 강제연행 연구자 하야시 에이다이 나는 비국민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가 책을 출간하면 일본 우익으로부터 "당신은 국가의 적이다!", "비(非)국민이다!", “당신 일본인 맞아? 왜 한국인 편을 드는 거야?"라고 협박하는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신사(神社)의 관리와 의식을 관장하는 간누시(神主)였던 그의 아버지 역시 신사로 도망온 조선인 광부를 보살폈기 때문이다.
"그는 왜 낯선 땅에서 죽어야만 했을까?, "그들은 왜 탄광에서 가혹한 시간을 보냈을까?",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그의 집필실에는 그가 필사적으로 모은 문서와 사진, 취재 기록들이 가득하다.
어떤 곳에서 일하다가 왜 사망했는지 기록된 공문서를 입수해 유족들을 찾아가 알리는 하야시는 제대로 된 기록을 위해 "탈출하려던 조선인 광부를 일본인 직원 다섯이 7시간 동안 때려죽었다"고 고백하는 가해자도 함께 취재한다.
그렇게 그는 조선인 광부, 노동자, 특공대, 군위안부, 시베리아 억류자, 사할린 학살 피해자들의 삶의 흔적들을 펜을 쥘 힘을 앗아가는 암과 싸우며 50여 년에 걸쳐 기록해 57권의 책을 펴낸 것이다.
그는 왜 기록하는가? 어린시절 아버지가 관리하던 신사에 조선인 광부들이 숨어들었을 때 어머니는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먹을것을 주었으며, 아버지는 탈출을 도와주곤 했다. 그 일로 아버지는 고등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1주일 만에 돌아왔는데, 그 후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 일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저는 국가의 적인 하야시 토라시의 자식입니다. '국민이 아닌 자'의 아들이지요"라고 말하는 그가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자 남의 나라 사람들을 위한 일에 이토록 헌신적인 것은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않는 민족은 결국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버려진 잊혀진 이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확실한 기록을 남길 것입니다. 그것이 일본인으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뒤에는 또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하겠지만, 나는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록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잊지 못하는 또 하나의 기억은 1945년 8월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다시 찾아온 조선인 광부들이 건넨 10엔이다. 그는 "이 돈은 저의 유일한 유산입니다"라고 말한다.
자기 나라가 어떻게 되든 자신만 잘 살면 되었던 뻔뻔스러운 친일파들도 있는데,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이 자국민으로부터 협박을 받으면서까지 우리의 불행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복 72주년을 맞아 하야시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고맙고, 그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일본 서남(西南)한국기독교회관으로부터 기증받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 사본 6,000여 점을 13일 공개했다고 한다. 일본 내 강제동원 연구자로 잘 알려진 하야시가 수집하거나 직접 생산한 기록물이다. 하야시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군함도 관련 사진도 여러 점 공개됐으며, 하야시가 강제동원 피해 유족 등을 직접 만나 촬영한 사진과 면담 내용도 공개된다.
이상, 조선인 강제연행 연구자 하야시 에이다이 나는 비국민의 아들입니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