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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베를린의 영웅 캔디 폭탄을 떨어뜨린 조종사 게일 헬버슨

 

베를린의 영웅 캔디 폭탄을 떨어뜨린 조종사 게일 헬버슨

 

 

12월 19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정한  '세계 가난한 이의 날'(World day of the Poor)입니다.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강론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은 큰 죄악인 반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천국으로 가는 여권’"이라며 이웃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습니다. 

 

이어서 교황은 “우리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착하고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으로 만족한다”면서 “하지만 잘못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미사를 마친 후에는 바티칸 알현실에서 자신이 초대한 가난한 사람들 1,200여 명과 점심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웃음과 활력을 주고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희망을 주었던 스토리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방영한 [베를린의 영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의 한 마을에 캔디 폭탄을 떨어뜨려 미 공군 조종사 게일 헬버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베를린의 영웅 캔디 폭탄을 떨어뜨린 조종사 게일 헬버슨

 

 

1948년 독일 베를린 상공에 나타난 연합국 비행기는 곧바로 마을을 향해 폭탄을 투여한다. 그런데 이 마을 아이들은 뜻밖에도 폭탄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폭탄이 떨어지는 곳으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1998년 독일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에서 열리는 행사장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에서 온 79세의 게일 헬버슨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50년 전 베를린에 폭탄을 떨어뜨렸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게일의 등장에 독일인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내며 열광했고, 모든 것이 그가 떨어뜨린 폭탄 덕분이라며 고마워했다. 당시 게일이 떨어뜨린 폭탄은 바로 캔디 폭탄이었다.

 

 

그가 캔디 폭탄을 떨어뜨리게 된 것은 1948년 베를린 공수작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당시 독일 영토는 네 곳으로 나뉘어져 각각 연합국측인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소련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 중 수도 베를린은 통합통치구역이었지만 베를린의 통치권을 독점하고자 했던 소련은 서베를린 주변의 육로와 수로를 모두 봉쇄하면서 약 250만 명의 시민들이 고립된 상황이었다.  

 

 

이에 연합국측은 수송기로 매일 2천 톤가량의 식량과 생필품을 서베를린의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대대적인 작전을 펼치게 된다. 게일 헬버슨 역시 이 작전에 참가한 미 공군 조종사 중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연합군의 물자운송 기지이자 유일하게 수송기 이착륙이 가능했던 템펠호프 공항 인근을 둘러보게 된 그는 행색이 초라한 한무리의 아이들을 보게 된다. 다행히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아이의 통역으로 아이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누게 되는데, 마침 가지고 있던 껌 두 개를 한 아이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 껌을 받은 아이는 그것을 무려 30여 조각으로 잘라 그곳에 있던 30여 명의 이이들과 나눠먹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조금 전까지 지친 기색이 역력하던 아이들이 그 작은 껌조각 하나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 모습에 크게 감동한 게일은 아이들 모두에게 선물을 주기로 약속하면서 내일 비행기 날개를 위아래로 흔들면 내가 보내는 선물을 받으라고 했다.

 

숙소로 돌아간 그는 곧바로 사비를 털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과 초콜릿 등을 산 후 직접 손수건으로 소형 낙하산을 만들어 그 안에 담았고, 다음날 약속대로 날개를 흔들어 자신임을 알린 후 하늘에서 손수건에 싼 사탕과 초콜릿 등을 떨어뜨렸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 사탕과 초콜릿을 떨어뜨렸는데, 아이들은 그 선물을 캔디 폭탄이라고 불렀으며 게일은 흔들리는 날개라는 의미의 '이글리 윙스'로 불리게 된다.

 

 

무엇보다 그의 선물은 단순한 간식거리만이 아닌 오랜 전쟁과 생활고로 지친 아이들에게 웃음과 활력을 되찾게 해주었고,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

 

더 놀라운 일은 게일의 행동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연합국 조종사들이 캔디 폭탄 투하작전에 동참하게 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 본토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직접 캔디 폭탄을 만들어 전달했는데, 이렇게 7개월간 아이들에게 전달된 캔디 폭탄은 무려 2만 3천여 톤에 달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캔디 폭탄이 서베를린 시민들의 지지와 환호를 받으면서 상황이 연합국측에 점차 유리해졌고 결국 1949년 5월 소련이 베를린 봉쇄를 해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 작전이 종료하게 됨에 따라 미국으로 돌아 게일은 베를린의 아이들로부터 당시 캔디 폭탄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수많은 감사편지를 받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1998년, 79세의 노인이 된 그는 독일정부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 공수 5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행사장에는 당시 게일의 선물을 받았던 어린이 수천 명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 그를 찾아와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당시 누구라도 그 아이들을 만났다면 자신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며 겸손한 소감을 전한 게일은 이날 행사에서 과거 자신이 조종했던 수송기를 몰고 초콜릿 만 개를 소형 낙하산에 매달아 떨어뜨림으로써 50년 전 그 날을 재현했다고 한다.  

 

베를린 공수작전 당시 오랜 전쟁으로 지친 아이들에게 캔디 폭탄을 선물한 조종사 게일 헬버슨, 베를린에 작지만 큰 기적을 불러온 그는 지금도 '캔디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독일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이상, 베를린의 영웅 캔디 폭탄을 떨어뜨린 조종사 게일 헬버슨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