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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싸우지 않고 이기는 대화법]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입만 열었다 하면 비판과 질책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짓밟거나, 심한 모욕을 주거나,

공연히 주눅들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독설가’들이다. 

거칠고 강압적인 그들로 인해 스트레스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성향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그들보다 강해야 하며,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연구가이자 [싸우지 않고 이기는 대화법] 의 저자 스기모토 요시아키는

아무리 고약한 독설가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의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구?"

 

이 말은 어린시절부터 어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였다.

부모님도 그렇고, 선생님들도 그렇고, 누군가와 다투는 것을 보면 누가 잘못한 건지 따져볼 생각도 않고,

심지어는 잘못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명백할 때조차도 꼭 이런 말로 중재를 하고 나서곤 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면 화가 가라앉기는커녕 더 화가 났다.

 

"어떻게 지는 게 이기는 거야? 지는 건 그냥 지는 거지."

 

그래서 지는 게 속상하고 분해도 맞서싸울 힘이 없거나 피치 못할 상황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을 때,

그냥 물러나기는 좀 멋쩍으니까 스스로를 합리화하려고 내세우는 비겁한 방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확실히 지는 게 이기는 것인 경우가 많았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질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실질적으로 상대를 이기는 방법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도 있듯이, 부부간이든, 부모자식간이든, 상사나 부하직원 간이든,

혹은 친구 사이에서든, 나이나 관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단 싸움이 시작된 것은 서로 똑같은 면이

있기 때문에 부딪친 것이고, 이때 물러서거나 양보를 함으로써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은 

그 두 사람 중에서 인간됨이 좀더 낫거나, 그릇이 좀더 크거나, 마음이 좀더 너그럽거나,

좀더 현명한 사람 쪽인 게 분명했던 것이다.

 

 

 

 

'손바닥씨름'이라는 놀이가 있다. 두 사람이 서로 한 발자국 정도 사이를 두고 마주서서

발은 움직이지 않은 채 서로 손바닥을 부딪치며 밀어내는 놀이다.
손바닥만 써야 하며, 먼저 중심을 잃고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거나 상대의 몸을 건드리면 진다.
이 놀이는 강한 힘으로 손바닥을 부딪쳐 상대를 넘어뜨릴 수도 있지만, 강하게 부딪쳐오는 상대의

손바닥을 슬쩍 피함으로써 상대가 중심을 잃게 해서, 즉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서 이기는 방법도 있다.
또 유도라는 경기도 실전은 잘 모르지만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한

운동이라고 한다. 즉 상대의 강한 힘에 맞서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순응하면서

그 힘을 역이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힘의 역학을 이용해 민첩하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허점을 찔러 상대를 이기는 것이 유도기술의 원리인 셈이다.

 

그러고 보다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진짜 승자는 꼭 강한 힘으로 맞서기보다는 너그러움이나 부드러움으로

상대를 수용함으로써 외면적으로는 진 것 같아보여도 실질적으로는 이기는 사람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추운 겨울날임에도 불구하고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한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사로운 햇님이었다는 전래동화도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지혜를 말해 주는 것이고,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요, 부전이승(不戰而勝), 즉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손자병법도 대인배만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전략인 것이다. 

 

단, 문제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다 보면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마련인 

사소한 불화가 아니라, 매사에 사사건건 비판과 폭언을 입에 담으며 시시비비를 따지고 

덤비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연구가이자 [싸우지 않고 이기는 대화법] 의 저자인 스미모토 요시아키는

바로 그런 고약한 독설가와도 싸우지 않고 내 편으로 만드는 특별한 노하우를 알려주고 있다.

 

 

 

 

“자네, 정말 이 따위로 일할 거야? 다시 해!”
“당신, 대체 알고 있는 게 뭐야?”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냐? 모자란 놈 같으니!”

 

외부 사람들에겐 선량한 사람의 표본인 척하면서 직원들에겐 이런 식으로 호통을 쳐대는 사장,
상사 앞에서는 깍듯이 예의를 갖추면서 부하직원들에겐 폭언을 서슴지 않는 부장, 
집에만 오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아내나 자녀를 무시하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남편,

또 퇴근해 온 남편이나 학교나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나 자녀를 따뜻하게 맞이하기는커녕

사기와 기운을 꺾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내들이 바로 그 고약한 독설가의 전형이다.

 

입만 열면 비난과 질책을 퍼붓는 그들 앞에서는 왠지 위축되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 안 보고 살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간단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대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기 십상이다.
게다가 더 힘겨운 점은, 그들이 결코 가볍게 맞서싸울 수 있는 녹록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차피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을 꺼려하고 멀리하려 하면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들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연구하고 신중히 대처해서 극복해 나가자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단, 비판과 질책을 일삼는 그들과 똑같은 행태로 대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그렇게 해본들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없을 뿐더러, 자칫하면 자신마저 고약한 독설가로

전랙해 버리는 위험을 감수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독설가와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강해져야 하며, 인격적으로도 훌륭해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독설가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인품과 지혜를 갖게 된다면, 더 이상 그들로 인해

고통받는 일은 없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은 바로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전략을 통해

독설가의 가혹한 공격에도 상처받지 않고 물러나거나 양보하는 힘을 갖게 해주고 ,  

나아가 애초에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이기는> 인품과 지혜를 갖는 법을 들려주고 있다.

 

 


 

먼저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듯이, 독설가들의 특징을 알아보자.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폭언으로 인해 상대가 고통받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고약한 언행은 ‘강압적 통제’에 근거한 것이다.

강압적 통제란 심리학자 윌리엄 글래서의 ‘선택이론’(Choice Theory)에 나오는 ‘외적 통제’(external control)를

가리키는 말로, 힘이나 폭력, 강요, 처벌 등으로 타인을 통제하고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런 외적 통제에 의한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보고 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갈등과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상사가 “업무 처리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군. 어떻게 좀 단축시켜 볼 수 없겠나?”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단순히 업무지시이므로 부하직원은 최대한 빨리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 “이건 자네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며 인격을 모독하는 말을 덧붙인다면,

이것은 강압적 통제가 된다.

 

사회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강압적 통제는 각각의 가정에서 길러지고 발전해 온 것이다.
신문 사회면 기사에 입시학원에 다니는 아들이 의사 아버지가 행하는 체벌을 원망한 나머지 집에 불을 질러

전 가족이 다 불에 타 숨지게 만든 것과 같은 패륜적인 사건들이 끊임없이 실리는 것도 모두 강압적 통제에서

빚어진 것이다. 이 의사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집중치료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면서

폭력을 휘둘러왔다고 한다.

 

“어리석은 아버지로군”라고 말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사회문화적 배경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아버지와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표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듯 강압적 통제를 휘두르는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가정 내에서나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니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또 부모가 내뱉는 거친 말들을 형제들끼리 주고받거나, 부모에게서 들은 폭언을

성장해서 그대로 부모에게 되돌려주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골치를 썩여?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면 되지, 뭘 참고 말 게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간의 행복이란 주위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주위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없다면 인생은 사실 아무런 의미 없는 여정일 뿐이다.

게다가 너그럽지 못한 사람과는 아무도 인간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다.
비판이나 질책을 들은 사람이 그 상황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인다 해도,

속으로는 신랄한 비판을 퍼부은 상대와는 더 이상 가까이 지내지 않겠다고 생각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독설가가 끊임없이 비판하고 질책하는 것은 타고난 '습성' 때문이다.

따라서 독설가의 비판에 비판으로 맞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폭언에 분노하고 괴로워하지만, 그들을 이기는 방법은 딱 하나,

그들이 내뱉는 험한 말에 험한 말로 대응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면 상대는 더 의기양양해져서 더욱 거칠고 험한 말을 쏟아낼 것이다.

그럴 때는 상대가 실컷 험한 말을 쏟아내도록 내버려두자.

상대는 그런 습성을 가진 사람일 뿐이고, 당신은 그 습성을 알고 있으니

강한 힘으로 맞서지 말고 슬쩍 피함으로써 상대를 이기면 되는 것이다.

이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에게는 독설가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결국 독설가를 이기는 힘을 갖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격을 완성시키는 길이기도 한 셈이다.

 

비판과 질책을 일삼는 사람들로 인해 위축되거나 스트레스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알아보자.

 

첫째, 자신을 쉽게 피해자로 만들어버려서는 안 된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게 되면 상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으며, 결국 어긋난

인간관계를 개선시킬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반론하지 말고 “알았어” 혹은 “그 말이 맞아”라고

상대를 인정하는 말로 부드럽게 대응하는 것이 좋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것이다.

 

둘째, 문제점을 지적당해도 필요 이상 반응하지 마라 

이 경우 성실한 사람일수록 비관적으로 반응해서 우울증에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적당한 문제점보다 지적당하지 않은 자신의 장점을 생각하면서 

냉정하게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셋째, 비판에는 인정으로 응대하자

인간은 기본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법이다. 더욱이 비판을 받은 경우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분좋게 지낼 궁리를 하는 편이 낫다.

상대에게 비판과 질책을 일삼으면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설가는 이렇듯 간단하고도 명백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며,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의 참의미를 결코 알 리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