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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지양(止揚)이 아닌 지향(志向)을 위한 발돋움!

 

어제 또 한 번 기함을 할 만한 기사를 접했다.

아내와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생후 45일 된 아들을 던져 숨지게 한 아빠가

구속됐다는 기사였다. 요즘은 픽션의 세계인 소설보다 현실세계에서 더더욱 상상을 불허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지라 어지간한 일에는 끄떡도 않는 뚝심도 생겼는데,

아빠가 엄마 품에서 모유를 먹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벽에 던져 숨지게 했다는

기사를 보고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싶은 심정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그 이유가 가계수입과 지출을 비교하던 중 돈 만원이 맞지 않아 "씀씀이가 헤프다"며

아내와 다투다가 생긴 일이라고 하니 더 놀라웠다.

 

하긴 기사에 따르면 그 부부가 뚜렷한 수입이 없어서 다자녀 양육지원금 등에 의존해

살아왔다고 하니, 누군가에겐 껌값도 안 되는 그 만원이 그들에겐 아들의 목숨값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 이유가 다는 아닐 테고,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 이면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이

얽히고 설켜 있을 게 분명할 테지만, 아무튼 세상에 태어나 그 싹조차 제대로 틔워보지 못하고
비정한 아버지 손에 무참하게 스러져 간 소중한 어린 생명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꼴을 당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돈 없는 부모를 만난 탓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하지만 부모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는 게 아닌 걸 어쩌란 말이냐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우리는 대체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 걸까?

 

인권운동가 오창익의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이라는 책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거나

보기 힘들지만 이런 생각지도 못할 일들이 뻥뻥 터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게 되는

사회의 풍경 65가지를  날카로운 비판의 시각과 진심어린 애정을 바탕으로 그려낸 보고서다.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저자
오창익 지음
출판사
삼인 | 2008-05-0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까? 신문과 텔레비전이 매일 우...
가격비교

 

 

여느사람들은 물론 교사, 경찰, 군인, 재소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권강의를 하며

인권현장을 지켜온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내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거침없는 한국사회 리포트>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을 통해 본 이 땅의 모습이

온통 부끄러운 것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저자의 그런 고민에 걸맞게 이 책에 담긴

한국사회의 모습들은 거의 다 우리가 지양해 나가야 할 모습들뿐이다.

2008년에 출간됐으니 5년 전 우리나라를 그린 책인데, 그 사이에 몇 가지는 약간의 변화의 조짐도

보인 듯하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그 두터운 허물을 벗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우이웃이 된 전직 대통령, 독재의 망령, 국기에 대한 맹세, 전 국민을 관리하는 ‘친절한’ 번호‘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주민등록번호), 세계 최고의 순도로 일하는 검찰, 범죄의 위험,

그만큼 위험한 과장, 누구나 정신병원에 갇힐 수 있다, 한국의 3대 패밀리, 무노조 왕국 그 주인은 황제,

네온사인 십자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베트남 처녀는 절대 도망가지 않는다는 현수막,
명절증후군, 무노조왕국, 영어라는 종교, 계급사회가 낳은 폭탄주,  지식을 파는 보따리 장사,

교수들의 ‘시다바리’, 요람에서 무덤까지 돈봉투를, 서서 찍는 바코드, 영어라는 종교,

조폭 같은 회장님, 실례한다면서 묻는 나이 등 그 꼭지 제목만 보아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비인간적인 제도들과 노동착취, 나이로 서열매기기 등

누가 알세라 수치스러운 치부를 하나하나 짚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저자의 목표는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 우리가 외국에 내세울 만한 것들은 차고 넘치게 많지만,

지금 잘하고 있는 것들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도 이와 같이 지양할 문제들을 직시해 보자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앞에서 말한 기사에서와 같이  가난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리해서 짚어보면 이러하다.  

 

 

 

 

양극화, 그리고 희망마저 빼앗긴 사람들 
예전엔 가난한 집 아이들도 이른바 ‘명문대학’에 합격하는 경우가 많아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을 더러 헸지만 지금은 “개천에서 용쓴다”라는 말이 맞다.
구체적인 통계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부(富)는 정확하게 세습되고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변호사의 아들은 변호사가 되고, 의사의 딸은 의사가 되거나
최소한 의사와 결혼하지만,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은 육체노동자가 되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자영업자의 딸 역시 부모의 뒤를 따라야 한다.

 

사람의 가치를 단지 돈으로만 판단하고,

돈이 없으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희망이 없는 세상이다.

아무리 경제성장을 거듭해도 단지 돈에 따라 사람의 값이 달라진다면

그 성장의 열매는 결국 부자들만 살찌게 할 뿐이다.
그런데 꿈을 빼앗긴, 기회의 균등마저 차단당한 80 또는 90의 사람들은

20 또는 10에 해당되는 사람들만큼 계급의식이 철저하지도 않다.
가난하고 차별을 당하고 꿈마저 빼앗겼는데도 ‘의식’이 없으니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강북사람들이 자기 동네를 살 만한 곳으로 꾸미기보다는

언젠가는 강남사람이 되겠다고 저 혼자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24시간 기업하기 좋은 나라 
우리나라에는 유독 24시간 영업을 하는 음식점 등 가게가 많다.
편의점은 아예 ‘24시간 내내 영업하는 소규모 잡화상’을 이르는 고유명사가 되었을 정도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단 1분도 쉬지 않고 24시간을 꼬박 영업하는

비결의 핵심은 햄버거가게와 비슷하게 초저임금의 ‘알바’를 고용하는 데 있다.

편의점이나 주유소, 또는 비록 단순한 노동의 반복이라 해도 사람의 손이

들어가야 하는 많은 영업장이 알바 노동자들의 희생을 팔아 영업을 하고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새벽 3시에 가게에 가야 할 일도 있고,

새벽녘에 햄버거를 먹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있는 그런 필요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즉 남들 다 쉬는 밤이 되면 가난한 집 아이들도 쉴 수 있는 권리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가급적 노동하지 않고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부득이하게 일을 해야만 하더라도 그들의 노동은 각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노동은 천대를 받는다.

 

유명 브랜드의 햄버거 체인점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24시간 영업까지 하지 않더라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을 밤새도록 일하게 하고, 그 졸리고 고된 노동에 대해

기껏해야 ‘애들 과자 값’이나 될까 하는 임금만 지급한다는 것은 비도덕적인 일이다.

 

사람에게 분명한 수익이 있는데도 정의롭고 도덕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 허망한 일이다. 세상엔 도덕적으로 탁월한 사람들도 많지만,

수익 앞에서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는 것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정답은 규제다.
아예 법률을 정해 매장의 영업시간을 규제해서 밤샘영업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무슨 국시(國是)인 것처럼 여겨지는 나라에서

이게 시대역행적인 소리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는 이런 식으로 노동을 보호하고

청소년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법률체계를 갖추고 있다.  

 

 

 

 

 

‘기러기 아빠’의 눈물도 있다.

막대한 유학비를 감당해야 하고, 부모자식간의 관계의 재미도 몽땅 포기해야 하는,

그래서 사실상의 가족해체를 경험해야 하는 아빠의 김정은 서글프기만 하다.

소주병을 끼고 사는 기러기 아빠도 많고, 아내의 불륜을 걱정하거나

아예 이런저런 것 다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아빠도 많다.
자신을 제외한 가족이 자신을 손님처럼 여기고, 모처럼 만나도 겉도는 만남은 어쩔 수 없다.

미래를 위한 슬픈 투자, 그리고 감당하기 힘든 고독이 기러기 아빠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자녀를 조기유학의 대열에 동참시키지 못한

수많은 아빠들은 그런 고독이라도 느껴보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기러기 아빠인 사람들도, 기러기 아빠가 되지 못한 사람들도 서글프기는 마찬가지인 현실이다.

 

언제나 친절한 톨게이트 계산원
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종사원들은 새벽 늦게도 친절할까?
그 답은 고속도로관리공단에서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아웃소싱으로 구한 후 불시에 암행감찰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친절한 직원이 있으면 하청업체에 당장 해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니 톨게이트 계산원 노동자들(주로 여성주부들)은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친절해야 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졸려도,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곧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친절 또 친절해야 한다.

어쩌다 한 번의 불친절이 해고사유가 된다는 위협 앞에서 친절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해고협박으로 강요된 친절, 살아남기 위해 친절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힘겨운 웃음을 지켜보면,

도대체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