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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굿바이 싱글 김혜수식 가족 만들기와 변해가는 가족의 개념

 

굿바이 싱글 김혜수식 가족 만들기와 변해가는 가족의 개념

 

 

"무자식이 상팔자"라던데, 내 편이 없다면서 '자식 만들기' 프로젝트에 나선 여배우 고주연(김혜수)의 엉뚱발랄을 넘어 천방지축에 좌충우돌 분투기를 그린 [굿바이 싱글](김태곤 감독)은 그저 스크린이 보여주는 대로  부담없이 즐기기만 하면 되는 영화였다. 물론 마음 가볍게 볼 수 있다고 해서 그저 재미만 줄 뿐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표나게 드러내지 않고 스토리 속에 잔잔히 녹인 탓인지 괜스레 한탄스럽다거나 안타깝다거나 분노가 치민다든가 하는 감정놀음에 휩싸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런 감정적 스트레스라면 이미 스크린 밖 현실세계에서 넘치도록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굿바이 싱글 김혜수식 가족 만들기와 변해가는 가족의 개념

 

줄곧 가벼운 웃음을 유발하는 휴먼코미디이지만,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와 <미혼모 문제>다. 온갖 찌라시와 스캔들의 주인공인데다 연예계에서 점점 퇴물 취급을 받는 것도 모자라 연하의 애인에게 보기 좋게 차이기까지 한 여배우 김혜수는 문득 주변에 자신의 불행을 진심으로 슬퍼해주고 함께 아파해줄 내 편이 하나도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서러워진다. 그래서 자신이 낳은 아기라면 영원한 내 편이 되어줄 거라고 믿고 아기를 입양해 보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될 리가 없다. 그러자 그녀는 아예 아직 학생인 미혼모 단지(김현수)를 집으로 데려와 숨겨놓고는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거짓소문을 퍼뜨린다. 단지가 낳은 아기를 자신이 낳은 아기로 둔갑시키려는 계획이다. 

 

그 후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김혜수는 자기밖에 모르는 유아틱한 성향을 떨쳐내고 점점 어른으로 성숙해 갈 뿐만 아니라 온마음을 다해 단지와 아기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비록 자신이 직접 아이를 가지고 낳은 것은 아니었어도 미혼모 단지를 거두는 과정에서 부모가 되고 가족이 되는 법을 배워간 것이다. 여배우가 목숨처럼 지키는 '예쁨'을 내려놓고 망가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민낯의 김혜수가 온몸을 던지듯 연기해 낸 고주연은 누가 영화 속 주인공이고 누가 실제인물인지 헷갈릴 만큼 리얼함 그 자체였다. 

 

 

다행히 철딱서니는 없어도 마음만은 봄바람처럼 따뜻한 고주연이기에 그녀 곁에는 그녀 때문에 끊임없이 난처한 일을 당하면서도 결코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완전 빈털터리가 된 지경에 이르렀어도 그녀를 지켜주는 진짜 가족이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 영화 [탐정 홍길동]이나 [계춘할망]에서도 홍길동과 말순/말숙 자매, 계춘할망과 혜지 등 피붙이는 아니어도 따뜻한 가족의 정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대가족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제도도 해체돼 가고 있는 요즘, 혈연을 내세운 가족간의 끈은 점차 엷어져 가는 대신 서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곧 가족으로 여기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혈연지상주의를 부르짖는 1차원적이었던 가족의 개념 자체가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즉 가족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끈끈한 가족이기 위해서는 '동고동락'에 있는 것이지 그저 피붙이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힘들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필요해지면 나타나 가족 운운 하며 가족의 도리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굿바이 싱글]에 나오는 미혼모 단비 언니만 해도 동생이 아이를 가진 것도 모를 만큼 내내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동생을 이용해 돈을 뜯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자신이 언니임을 내세우며 이것저것 챙기는 척하지 않던가.

 

 

5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단지 역을 따낸 김현수다. 아직 어린 학생임에도 미혼모가 되어 겪게 되는 일들에 당돌하리만큼 당당하게 맞서나가는 당찬 소녀다. 김현수는 "시나리오는 정말 재미있고 신선했지만, 미혼모 역할을 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고, 아기아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그 뒷감당을 다 해나가는 난감한 처지를 오버스럽지 않고 담담하게 잘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시종일관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준 김혜수의 불알친구 평구 역을 맡은 마동석이다. 어떤 가족이 이 마동석처럼 김혜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아마 마동석이 없었더라면 영화도 김혜수도 앙꼬 없는 찐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큰 덩치에 어울리게 된장 냄새 나는 구수한 매력으로 똘똘 뭉친 그가 해외파 스타일리스트라니 왠지 의구심이 앞서지만, 뭔가 묘하게 어울리는 듯싶기도 하다. 하긴 실제로 마동석은 과거 13년간의 유학생활 중 미국에서 현지인들을 상대로 퍼스널 트레이너 생활을 한 해외파 이력이 있다는 후문이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에는 감칠맛 나는 감초 역할을 하는 조연들이 많이 등장한다. 먼저 김혜수 곁을 굳건히 지키는 또 다른 가족들 김용건과 황미영이다. 고주연만을 바라보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건은 마치 우리네 아버지처럼 김혜수의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쓱쓱 잘도 처리해 준다. 준다. 그리고 김혜수의 전담 매니저 황미영 또한 몸집은 무거울지 몰라도 영화는 너무 무겁게 흘러가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코믹연기를 펼쳐보인다.  

 

 

김혜수의 불알친구 마동석의 아내 상미 역을 맡은 서현진이다. 아이를 셋이나 낳아 기르는 억척엄마이자 아내인데, 그저 김혜수 일이라면 낮밤을 가리지 않는 남편 때문에 알게 모르게 애를 태우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이제 막 드라마 [또 오해영]을 인기리에 끝낸 참이어서 그런지 오해영의 향기가 너무 짙어서 마동석의 아내 상미가 아닌 오해영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만 보였다는 것이다. 겹치기 출연을 해도 크게 의식되지 않는 경우도 있던데, 서현진은 오해영의 짙은 향기와 색깔을 지우는 것이 큰 과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민이 호남형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어른들이 흔히 말하듯 '깎아놓은 알밤'처럼 미남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국민앵커 민호 역을 맡은 그는 김혜수와 알콩달콩 사랑을 주고받는 멋진 남자로 등장하는데, 현실의 '모 아나운서'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는 말도 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 안재홍도 분량이 많지는 않았어도 요소요소에서 제 역할을 재미나게 잘 해주었다. 덕분에 뻔한 스토리의 영화가 잘 반죽이 된 빵처럼 맛나게 변신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혜수와 김태곤 감독은 미혼모를 초청한 영화관을 찾아 관객들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는데, 사각지대에서 소외되기 쉬운 미혼모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고자 김혜수가 직접 사비를 털어 마련한 자리였다고 한다. 내 편이니 네 편이니 하며 가르지 말고, 혈연이니 아니니 따지지 말고, 또 제 이기심의 희생양으로 삼는 고약한 짓도 절대로 하지 말고 서로에게 배려하는 마음과 의리를 지킬 수 있다면 굳이 가족이냐 아니냐를 분별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는 고전적인 가족의 개념이 변해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이상, 굿바이 싱글 김혜수식 가족 만들기와 변해가는 가족의 개념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