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 그러니까 2월 14일이 밸런타인데이다.
1월에도 14일이 다이어리데이였다고 하는데, 이 데이는 대충 패스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도
밸런타인데이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이 날을 전후로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것이며
들리는 말이 온통 밸런타인데이여서 모른 척하고 넘어가려야 넘어갈 수가 없다.
그렇긴 해도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초콜릿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무슨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닌 듯하다. 그저 남들이 다 장에 간다고 하니
나도 별생각없이 장바구니 들고 어정쩡하게 따라나서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밸런타인데이는 유통업계의 상술일 뿐, 없어져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나 보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직장인 503명(남성 262명, 여성 241명)을 대상으로
‘밸런타인데이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52.9퍼센트가 '상술일 뿐'이라고 응답했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없어져야 한다'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응답도 각각 10.3퍼센트, 6.4퍼센트였다고 하니
전체 응답자의 69.6퍼센트가 밸런타인데이에 대해 그리 달갑지 않은 평가를 내린 셈이다.
게다가 밸런타인데이 때 하는 데이트도 '평소와 다르지 않다'는 답변이 전체 74.8퍼센트,
'밸런타인데이를 안 챙긴다'는 직장인도 10.7퍼센트였으며,
응답자의 8.3퍼센트만이 '특별한 이벤트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왜 다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이 오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 걸까?
물론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차원에서 행해지는 경우는 삶에 자그만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니 굳이 거부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때로는 몹시 고민스러워하면서도
지나칠 만큼 고가의 선물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크고 비싼 선물이 곧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사랑의 크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선물을 주고받는 일에서도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게 정답일 것 같다.
그건 그렇고, 그 <무슨무슨 데이>라는 건 왜 그리 많은 걸까?
내친김에 1년내내 <무슨 데이>가 있는지 월별로 정리를 해보야겠다.
블로그 친구님 중에 무슨 일이든 매 포스팅마다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만큼은 아니어도 흉내를 좀 내보려는 것이다. (웃음)
그러면 먼저 <14일 데이>부터 정리해 보자.
1월 14일 다이어리데이 새해를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연인에게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날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본디는 발렌티노 성인을 기리는 날이었지만 요즘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날
3월 14일 화이트데이 밸런타인 데이와 반대로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
4월 14일 블랙데이 밸런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를 힘들게 거쳐온 솔로들이 짜장면을 먹는다든지,
검은 옷을 입는다든지 해서 솔로임을 만끽하는 날
5월 14일 로즈데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날
6월 14일 키스데이 선물이 아니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키스를 하는 날
7월 14일 실버데이 서로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기념하며 은제품을 선물하는 날
8월 14일 그린데이 연인끼리 산림욕을 하며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날
9월 14일 포토데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날
10월 14일 와인데이 레스토랑 등에서 같이 와인을 마시는 날
11월 14일 무비데이 연인끼리 같이 영화를 보는 날
12월 14일 허그데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서로를 포옹하는 날
<그 외 여러 가지 데이>
1월 19일 찜질방데이 119라는 숫자가 뜨거운 것을 의미해 함께 찜질방에 가는 날
2월 22일 2%데이 2%음료수를 선물하는 날
2월 23일 인삼데이 숫자 23과 인삼의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날
3월 7일 참치(삼치)데이 숫자 37과 참치의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날
3월 17일 세인트패트릭스데이 평소에 고마웠던 분에게 네잎클로버나 책을 선물하는 날
4월 4일 클로버데이 숫자 4가 네잎클로버를 의미하는 행운의 날
5월 2일 오이데이 숫자 52와 오이의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날
5월 3일 오삼데이 오징어와 삼겹살을 함께 먹는 날
5월 9일 아구(59)데이 4월14일 블랙데이가 지나도 짝이 없는 연인들이 외로움을 달래는 날
5월 31일 부채데이 더위를 막기 위해 부채를 선물하는 날
6월 2일 유기농데이 숫자 62가 유기농의 발음과 비슷해서 생긴 날
6월 4일 육포데이 숫자 64가 육포와 발음이 비슷해서 육포를 먹는 날
6월 6일 고기데이 숫자 6이 한자 육(肉)을 의미해서 고기를 먹는 날
7월 2일 체리데이 숫자 72가 체리와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날
7월 5일 추어탕데이 숫자 75가 추어와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날
7월 7일 엿데이 항상 같이 붙어서 행복하게 지내자는 의미로 엿을 먹는 날
7월 9일 친구데이 숫자 79가 친구와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날
7월 11일 세븐일레븐데이 세븐일레븐에 가서 간단히 먹는 날
8월 18일 쌀데이 한자로 8(八) 10(十) 8(八)을 합하면 쌀 미(米)가 된다고 해서 생긴 날
9월 2일 구이데이 숫자 92와 발음이 비슷해서 구운 음식을 먹는 날
9월 9일 닭고기데이 숫자 99와 닭을 부르는 소리가 발음이 비슷해서 닭고기를 먹는 날
10월 4일 천사데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장미 1004송이로 고백하는 날
10월 10일 초코파이데이 친구들과 초코파이를 먹으며 우정을 나누는 날
10월 31일 할로윈데이 유령 복장을 하고 유령 파티를 하는 날
11월 1일 한우데이 최고를 의미하는 1이 세 개 겹쳐져 한우 소비를 위해 만들어진 날
11월 11일 빼빼로데이 숫자 11가 빼빼로 모양을 닮은 데서 생긴 날
12월 8일 머플러데이 머플러 선물하는 날
12월 12일 고래밥데이 고래밥 선물하는 날
이렇게 적어내려가다 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 하고 많은 데이를 맞아
초콜릿에 사탕에 장미에, 하다못해 닭고기에 추어탕에 엿까지 주고받으면서
이른바 '마음의 양식'이라고 일컬어지는 책을 선물로 주고받는 데이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아, 다시 보니 딱 하루, 3월 17일 세인트패트릭스데이에 평소 고마웠던 분에게 네잎클로버나
책을 선물하는 날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약소하다.
마음과 정신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을 반드시 선물해야만 하는 날이 따로 있어야 할 것 같고,
그것도 많은 책을 선물하면 할수록 큰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런 책 관련 데이가 있으면 좋겠다.
하긴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그렇지 <책의 날>이 따로 있긴 하다.
4월 23일이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세계 책의 날)'이다.
아직 두 달이나 남아 있긴 하지만, 좀더 설명을 해보자면,
1995년 '세계 책의 날'을 제정한 것을 계기로 유네스코는 독서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제도를 통해 지적 소유권을 보호하는 국제적인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오고 있다.
4월 23일로 날짜를 정한 것은, 책을 사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는
스페인의 카탈루니아 지방 축제일인 ‘세인트 조지의 날(St. George's Day)'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날을 기리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현재 책의 날의 기원국인 스페인을 비롯해 프랑스, 노르웨이, 영국, 일본, 우리나아 등
전 세계 80여 개 국가에서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이날 책과 장미의 축제가 동시에 펼쳐지며, 영국에서는 이 날을 전후해
부모들이 취침 전 자녀들에게 20분씩 책을 읽어주는 잠자리 독서 캠페인을 벌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화부, 국립중앙도서관, 인터넷 서점 등에서 다양한 행사를 펼치며,
교보문고는 광화문 본점에서 세계 책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독자들에게 장미꽃을 증정해 왔다.
그리고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제정한 <책의 날>도 있다.
우리나라의 <책의 날>은 10월 11일이다.
유네스코가 제정한 <책의 날>보다 8년이나 앞선 1987년 처음으로 제정되어 책의 의미를 기념하고 있다.
“책의 소중함과 책 읽는 즐거움을 널리 일깨우고자 팔만대장경이 완성된 10월 11일”로
<책의 날>을 제정해서 선포했고, 현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는 출판문화 발전과
출판업계 발전을 위해 공로가 많은 출판인을 엄선하여 대통령ㆍ국무총리ㆍ문화관광부장관 표창,
한국출판공로상, 출판유공자상, 감사패 등으로 격려하고 있다.
아쉽게도 일반사람들에게는 거의 홍보가 안 돼 이것으로 끝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희망사항이라면 내년부터는, 아니, 올해부터는 이 <무슨무슨 데이> 때마다
초콜릿이니 사탕이니 은반지나 은팔찌 같은 것만 주고받지 말고 책도 꼭 한 권씩 곁들여야만
더 사랑도 깊어지고 더 오래도록 인연의 끈을 이어갈 수 있다는 거짓말 같은 사실이 널리 퍼져나가
서점들이 어깨를 활짝 펴고 지나다니기가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