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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비밀은 없다 손예진의 광기의 폭주 차라리 비밀이 있는 게 낫겠다

 

비밀은 없다 손예진의 광기의 폭주 차라리 비밀이 있는 게 낫겠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에서 신경외과 의사 이영오(장혁)는 어린시절 뇌중추 이상으로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음을 알게 된다. 다행히 의사로서 명망이 높고 실력도 뛰어난 아버지(허준호)를 둔 덕분에 그는 문제가 되는 부분을 인위적인 훈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면서 적어도 외면상으로는 정상인과 거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갖춘다.

 

다만, 그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큰 특징인 냉혈한의 면모를 언뜻언뜻 내보여 주변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데, 이는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냉철함으로 치부된다. 아니, 드라마상에서는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장혁은 눈빛 하나 흔들림 없이 완벽하게 수술을 마치곤 해서 무감정, 무감동이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특징은 오히려 의사라는 직업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게다가 그는 오로지 자신이 감정훈련을 해온 이론대로만 상대방을 판단하기 때문에 여느사람들이라면 자칫 감정에 치우쳐 읽어내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들의 갖가지 말이며 행동을 거의 정확하게 짚어내기까지 해서 이 정도면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들이 때로는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감정들로 인해 기쁨과 행복도 느끼지만 반대로 괴로움과 슬픔, 절망과 좌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인간이니 말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이 총출동한 [비밀은 없다]

 

비밀은 없다 손예진의 광기의 폭주 차라리 비밀이 있는 게 낫겠다

 

이경미 감독 손예진 주연의 영화 [비밀은 없다]의 리뷰를 쓰면서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의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장혁에 대한 언급을 먼저 한 것은,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야말로 하나같이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여주인공 연홍 역을 맡은 손예진은 물론 연홍의 남편으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김종찬 역의 김주혁, 그리고 연홍의 딸, 딸의 친구, 딸의 학교 친구들, 심지어 딸의 선생님까지 누구랄 것 없이 정상인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이해 불가능한 캐릭터들이었다.

 

국회 입성을 노리는 신예 정치인 김주혁과 아내 손예진은 국회의원 선거를 보름 앞둔 어느 날, 딸이 실종된 것을 알게 된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진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던 손예진은 딸이 실종됐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만 정신을 쏟고 있는 남편과 사건을 제대로 조사해 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분노가 극에 달한다.

 

결국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혼자 딸의 흔적을 쫓는 외로운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딸이 남긴 단서들을 하나하나 집요하게 추적해 가면서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충격적 진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광기어린 모성애가 폭주를 시작하면 어디까지 치달아나갈 수 있는지를 마치 두개골을 바수어 보여주듯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과유불급의 손예진의 광기어린 폭주

 

 

딸의 실종 후 극한의 감정을 치닫는 손예진의 광기어린 연기는 훌륭했다. 모성애의 힘을 보여주고자 한 영화의 주제에 충실한 정도를 넘어 혐오스러움이 느껴질 정도의 광기를 폭발시킨 어머니 모습을 잘 표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토리상으로는 그녀가 그렇게 미칠 듯한 광란의 폭주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과유불급,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했다. 사랑하는 딸이 실종되고, 남편은 원망스럽게도 딸이 실종된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선거에 피해가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또 경찰과 주변사람들은 무심히 굴면서 뒤에서 악담이나 하고, 종국에는 생각도 못했던 남편의 불륜 사실까지 알게 되어서 그야말로 <꼭지가 돌고 눈앞에 뵈는 게 없어질 만큼> 극한의 분노를 느꼈다는 것과 그 분노를 현실에서 어떤 방법으로 터뜨리느냐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하면 분노가 극에 달하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이 영화 속 손예진처럼 분노를 표출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모성애를 빙자해 드러난 반사회적 인격장애    

    

 

그런데 감독은 이 아름답고 청초하고 우아한 손예진에게 여느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감히 하기 어려운 광란의 복수에 나서도록 만든다. 그 후 그녀가 저지르는 일들은 그 동안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요소가 교묘하게 잘도 숨겨져 있었구나 하고 여겨질 정도의 광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 동안 수동적으로만 살아오던 손예진이 딸이 실종된 후 살해되고, 이어서 그 일에 남편의 끔찍한 불륜까지 연관된 것을 알고는 모성애의 발로를 통해 능동적인 캐릭터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엄마가 직접 나서서 벌이는 그토록 처절한 응징을 모성애로 포장하는 것은 모성애를 욕보이는 일이 아닐까.

 

자식이 잘못되는 모습을 보면 불속이라도 뛰어드는 것이 모성애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이런 모성애의 힘을 모르지 않거니와, 그 누구도 모성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도 또 무시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모성애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또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여전히 세상과 사람들을 따뜻하게 지켜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성애를 그저 정신줄을 놓아버린 사람의 광란의 폭주로 만들어버린 데에는 씁쓸함이 앞설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토록 뒷맛이 씁쓸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추악하거든 멍청하지나 말든가...   

 

 

"떫거든 시지나 말지"라는 속담이 있다. 떫은 과일도 진상인데 거기다 시기까지 하니 아무짝에도 쓸모 없음을 의미하는 속담인데, 이 속담을 빗대 연홍의 남편 김종찬에게는 "추악하거든 멍청하지나 말지"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다. 국회의원들 등 정치인들이 저지르는 추악한 비리야 잊을 만하면 터지는 뉴스이니 뭐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런 사건들 대부분은 그들이 지나칠 만큼 영악하게 제 것을 챙기는 데서 빚어지는 일들이고 이것이 꼬리가 길어져 결국엔 밟히고 마는 과정에서 폭로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김종찬은 거의 무뇌아에 가까운 짓들을 벌인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흔히 지능이 높은 사람과 머리가 나쁜 사람에 따라 행동에 큰 차이를 보이는데, [뷰티풀 마인드]의 장혁처럼 감쪽같이 자신을 숨긴 채 제 몫을 챙기는 사람은 머리가 좋은 쪽이고, 이 김종찬처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은 머리가 나쁜 쪽이다. 몸통은 드러낸 채 얼굴만 풀숲에 파묻고는 숨는 꿩과도 닮은 족속들이다. 그러니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고, 그 불륜이 발각될까봐 살인을 저지르고, 결국 그 범죄가 드러나 처절한 복수의 응징을 받으면서도 "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겼다"며 실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리라.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될 뿐이다.

 

 차라리 비밀이 있는 게 낫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엔 손예진과 김주혁 말고도 두 사람의 딸, 그 딸의 친구, 딸이 다니는 학교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까지 도무지 정상인이라 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총출동하고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까지 말하기엔 좀 그렇더라도 적어도 분노조절장애자들에다 죄의식도 죄책감도 없는 사람들 일색인 것이다. 왜 감독은 이런 사람들로만 가득 채운 영화를 만든 것일까? 겉으로는 아무리 아닌 척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들 이들과 진배없는 사람들이 현실의 세계에 우글거리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책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어떤 주제의식과 메시지가 있게 마련이며,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 법이다.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도 스토리상 지금은 악마적 요소가 다분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장혁이 점차 인간적 면모를 갖춘 사람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드라마나 영화가 반드시 올바른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거나 뭔가 그럴듯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토록 비열하고 추악한 등장인물들과 장면을 내세울 때는 적어도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납득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비밀을 알면 누구든 이런 광란의 폭주를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속성임을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 만일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였다면, 모르는 게 약이라고 <차라리 비밀이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또 어떤 비밀이든 늦고 빠르고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엔 밝혀지게 마련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상, 비밀은 없다 손예진의 광기의 폭주 차라리 비밀이 있는 게 낫겠다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