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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스포트라이트 "이런 걸 보도 안 하면 그게 언론입니까?"

 

스포트라이트 "이런 걸 보도 안 하면 그게 언론입니까?"

 

 

보통 전화벨이 끊이지 않고 계속 울리면 짜증이 나게 마련인데, 귀찮다거나 시끄럽다고 여겨지기는커녕 그 소리에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울컥해질 줄이야.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엔딩을 장식하며 쉼없이 울려퍼지는 전화벨 소리는 그렇게 뜻하지 않은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벨소리 하나하나에 마침내 검은 베일에 싸인 채 꾹꾹 억눌려져 있던 진실을 호소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의 간절함이 깃들어 있음을 알기에 더 그렇게 들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스포트라이트 "이런 걸 보도 안 하면 그게 언론입니까?"

 

범죄가 저질러지면 언론은 그것을 밝혀내고 법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일을 한 것인데도 뭔가 굉장한 일을 해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처리되고 있지 않음을 반증한다. 이 영화에서 열정적인 취재에 앞장서는 기자 마이크 레젠데스 역을 맡은 마크 러팔로는 "이런 걸 보도 안 하면 그게 언론입니까?"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언론은 그 동안  쉬쉬하면서 아무것도 보도하지 않았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언론의 제1수칙인데도 그 당연한 일을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스포트라이트팀은 사건의 진실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최고의 언론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언론인으로서 마땅히 보도해야 할 것을 보도한 것인데도 최강 플레이어라는 극찬을 받는 씁쓸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홈피에 올라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교회에서 30여 년에 걸쳐 벌어진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한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의 실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2001년 여름, 미국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에 새로 온 편집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이은 <스포트라이트>팀에 그 동안 침묵에 갇혀 있던 스캔들의 진실을 심층취재하라고 지시한다. 

 

유난히 신도들이 많은 보스턴에서 가톨릭 교회를 수사할 경우 큰 반발과 반향을 불러올 수 있음을 알았지만 편집장 마티 배런의 지시에 따라 편집자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과 리포터 사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연구조사원 맷 캐롤(브라이언 다아시 제임스)은 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2년, 마침내 그들은 약 600개의 스캔들 기사를 통해 보스턴 지역에서만 약 90명의 사제들이 아이들을 성추행해 왔던 사실을 폭로한다. 신성한 종교라는 미명하에 철저하게 숨겨져 온 진실이었다.  

 

 

2001년 마티 배런의 지시로 시작된 스포트라이트팀의 사건취재일지다. 일명 '게오건 사건'으로 불리는데, 게오건 신부가 30년간 6개 교구에서 아이들을 성추행했고, 추기경은 이 사실을 15년 전에 알았지만 묵과한 사건이다. 취재 과정에서 추가로 리암 바렛 신부가 발견되고, 사샤가 진행한 피해자 조와의 인터뷰에서도 추가로 쉔리 신부를 발견했으며, 이어서 무려 87명의 가해신부가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한다. 그 후 911테러로 취재를 보류하고 있다가 마이크 배런이 결정적인 증거 문서를 입수함으로써 <스포트라이트팀>은 마침내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취재해 온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만들어진 스토리 가이드다. 스포여서 흥미를 떨어뜨리기보다는 영화를 보면서 기본 줄거리를 알고 있으면 오히려 이해를 돕고 흥미도 더 클 것 같아서 올려본다.   

 

 

취재를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가는 데마다 저마다의 이유로 사건을 은폐하려 하거나 끼리문화를 강조하며 더 이상 사건을 키우지 말자고 은밀한 협박까지 받게 되자 마이크 레젠더스는 "그들은 알면서 이런 일이 생기게 놔뒀어요! 당신의 아이가 당할 수도 있고 내 아이가 당할 수도 있었고 누구든 당할 수 있었어요!"라고 소리친다. 

 

침묵은 금이라고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것이 마땅할 때 침묵하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힘을 합쳐 진실을 말하고 밝힘으로써 뭔가를 은폐하려는 거대한 집단에 맞서야 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나만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몸을 사리며 침묵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항의해야 할 때 침묵하는 죄가 겁쟁이를 만든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처럼, 또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게 될 것이다"라는 마틴 루터 킹의 말처럼 침묵을 선택한 대가를 치르는 문제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없는 법이다. 그것이 지금 당장은 내가 아니라고 해서 못 본 척하고 넘어갈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고발 기사를 쓴 덕분에 스포트라이트팀이 기자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받았어도 선임 편집자 월터 로비는 “수많은 상과 축하기사, 호평이 쏟아졌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그다지 기쁜 감정이 들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생생한 고통이 아직도 우리의 뇌리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성추행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생각하면 수상의 행복감도 누그러졌다”는 말로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사실 기자로서 마땅히 했어야 하는 일을 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니, 오히려 진작에 진실을 파헤치지 못한 것이 기자로서의 기본업무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렇듯 치하를 받는 것이 좀 낯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흔히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꼭 봐야 할 영화 중 하나가 [쇼섕크 탈출]이라고 한다면, 언론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가 바로 이 [스포트라이트]라고들 말하는 것 같다. 또 몇몇 대학에서는 <스포트라이트 관람>을 과제로 선정해 장차 언론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참된 기자정신과 이 시대에 언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닫는 기회를 갖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제1수칙임을 생각한다면, 여느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기자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들의 의무와 책임을 새삼 곱씹어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참된 언론인이라면 사샤처럼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사건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또 "돈과 양심, 어느 쪽이 옳은지 신중히 선택하는 것이 좋을 거야"라는 로비의 경고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돈과 양심 중 어느 쪽이 옳은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게 될 때는 "이런 걸 보도 안 하면 그게 언론입니까?"라는 마이크의 말을 떠올린다면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 부디 큰 도움이 되리라고 바래본다.   

 

이상, 스포트라이트 "이런 걸 보도 안 하면 그게 언론입니까?"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