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오브 이집트 태양의 신 호루스와 어둠의 신 세트의 대결
태양의 신 호루스
이집트 신들의 부름이라도 받았던 것일까? 영화관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분명 5관 3,4번 좌석으로 예약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보러 갔는데, 표를 점검하는 직원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오른편 4관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라고 하기에 손에 쥔 표를 살펴볼 생각도 않고 '5관이 아니라 4관이었나?' 하며 기계적으로 4관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상영관에 들어가서도 예매할 때 가운데 통로 왼쪽 끝좌석을 선택했는데 이상하게 왼쪽 통로 오른쪽 끝인데도 '내가 착각했나?' 하며 그대로 앉아 영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영화가 시작되는 시각마저 같아서 "예고편이 왜 이리 길지?"라는 생각에 이어 "아차! 5관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을 때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는데, 스크린 가득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타클하게 펼쳐지는 [갓 오브 이집트]의 어마무시한 스케일에 매료되어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이 영화가 상영중인 것을 알면서도 예매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속 빈 강정처럼 별내용도 없는 호화찬란한 영상만으로 관객들 눈을 사로잡을 게 뻔하다는 생각에서였다는 것도 그 순간만은 까맣게 잊고 말았다.
아무튼 상영관을 잘못 찾아들어간 실수는 난생 처음인지라, 아마도 이집트 신들이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들어간 게 분명하다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나름 즐겁게 관람했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이집트 신화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게 없다는 이유도 그럴싸하게 갖다붙인 후여서(ㅎㅎ) 어릴때 흥미진진하게 만화영화를 보던 그 기분으로 재미나게 볼 수 있었다.
갓 오브 이집트 태양의 신 호루스와 어둠의 신 세트의 대결
까마득히 먼 옛날, 인간과 신이 공존하는 시대, 인간들보다 뛰어난 신들의 세계에서도 권력 다툼은 어김없이 벌어지는 레퍼토리였던 모양이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을 찍어누르고, 그런 아버지에게 대항하기 위해 아버지 측근과 형제들을 죽이는 피비린내 가득한 학살극을 보여주고 있는데, 온 세상 모든 영화를 다 누리고 사는 이집트의 신들도 무슨 탐욕에서인지 더 크고 더 많은 힘과 권력을 갖기 위해 형을 죽이고 조카의 두 눈을 뽑은 후 영원히 벗어날 길 없는 지하감옥에 가두니 말이다. 그리하여 그리스 로마 신화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이집트 신화 중 태양의 신 호루스와 어둠의 신 세트의 대결이 시작된다.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홈피에 올라 있는 정도로만 [갓 오브 이집트]의 배경이 된 신화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빛과 우주의 지배자 ‘라’는 큰아들 오시리스에게 생명의 근원인 나일강을 수호하게 하고 작은아들 아들 세트에게는 뜨겁고 삭막한 사막과 어둠을 지배하게 한다. 태양신 라의 축복을 받은 오시리스가 수호하는 나일강 유역의 땅은 풍요와 건강, 평화로 가득했고 사람들을 모두 오시리스를 찬양했다. 아들 호루스가 장성하자 오시리스는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는데, 바로 그날 세트는 엄청난 수의 군대를 몰고 와 반란을 일으키고 형을 죽이고 조카 호루스의 왕관과 두 눈을 빼앗는다. 삼손의 힘이 머리카락에 있었던 것처럼 호루스의 힘은 눈에 있었기에 호루스는 이제 목숨은 붙어 있으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신이 되고 만다.
그 후 세트는 인간들을 핍박하는 독재를 펼치고 그 독재통치에 반기를 든 인간 ‘벡’은 모든 것을 훔치는 전설의 도둑답게 세트가 뺏은 호루스의 눈을 찾아 호루스에게 돌려준 다음 호루스와 함께 세트에게 대항할 군대를 조직해 반란을 꾀하기로 계획한다. 그리고 지옥과 천국의 세계를 넘나드는 험난한 여정과 신들의 관문을 지나 호루스와 백은 마침내 세트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다,
태양의 신 호루스와 어둠의 신 세트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들로 초호화 신화 군단을 결성했는데, 태양의 신 호루스 역을 맡은 니콜라이 코스터 왈도가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잔인한 세트와 대결하는 캐릭터로 열연을 펼친다. 코스터 왈도는 이번 작품의 액션 신을 위해 체지방을 감량하여 태양의 신에 걸맞는 근육질 몸매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고자 애썼다고 한다. 또 [300]의 용맹한 스파르타 왕으로 ‘원조 짐승남’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제라드 버틀러가 어둠의 신 세트를 맡아 최강 악역을 선보인다. 이집트 왕좌를 차지하고 모든 신들 위에 군림하고자 극악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는 잔인한 캐릭터다.
벡과 자야
그리고 신들의 세계에서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기를 선보인 브렌튼 스웨이츠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훔칠 수 있는 전설의 도둑 벡 역을 맡았는데, 강력한 힘의 원천인 눈을 훔쳐 호루스에게 돌려주고 함께 평화로운 이집트를 되찾기 위해 신들보다 오히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보이면서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그리고 벡의 아내이자 이집트 최고의 미녀 자야 역은 코트니 이튼이 맡아 벡이 호루스를 도와 독재자 세트를 물리치도록 하는 강력한 동력의 요인이 되는 연기를 펼쳐 보여준다.
사랑의 여신 하토르와 지혜의 신 토트
영화에는 세트와 호루스뿐만 아니라 사랑의 여신 하토르, 지혜의 신 토트, 그리고 빛과 우주의 지배자인 라, 전쟁의 여신 아스타르테 등 다양한 신이집트 들이 등장하는데, 이 중 사랑의 여신 하토르 역은 에로디 영이 맡아 관능적인 매력을 선보인다. 그리고 채드윅 보스만이 지혜의 신 토트로 합세해 능글맞고 익살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신이었다.
이 밖에 관록의 배우 제프리 러쉬가 ‘라’ 역을 맡았는데, 매의 머리에 인간의 모습을 한 라는 하늘과 땅의 절대적 지배자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뾰족한 바위, 즉 오벨리스크 모습으로 표시되는데, 오늘날 세계 각국의 주요 광장이나 빌딩 앞에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가 바로 라의 상징이며 승리와 영광, 최고의 권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을 받으러 가기 위해 저승길을 걷고 있는 자야
스토리도 너무 뻔하고, 무려 1500억을 들여 만든 영화라니 그 엄청난 제작비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초호화판 오락영화 사이사이에 건네지는 메시지는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신이라 할지라도 인간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너무나도 숱한 거짓들이 판치는 현실에서 신뢰라는 단어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보는 시간을 주었다.
두번째는 <어떤 지도자가 윗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리드해 나가느냐에 따라 세상의 풍경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오시리스가 왕좌에 있을 때와 잔혹한 세트가 왕으로 군림할 때의 사람들 표정이 그에 대한 답을 준다. 심지어 세트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길에서도 최후의 심판을 받을 때 뭔가를 지불해야만 좋은 데로 보내주는 악법을 만드는데, 그렇게 해서 그러모은 것을 점점 더 높아져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오벨리스크를 만드는 데 쏟아붓는다. 물론 그 오벨리스크는 자신의 권력을 더욱 더 드높이기 위한 표징이다. 이로 인해 살아서도 지지리 고생했던 사람들은 죽어서도 몹쓸 곳으로 가게 되는데, 아마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저 까마득한 이집트 신화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온 법칙이었던가 보다. .
세번째는 너무나도 상투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이다. 잔혹한 통치를 펼쳤던 어둠의 세트는 결국 그 응보를 받아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태양의 신 호루스가 이집트의 왕좌에 오르자 세상은 밝음과 평화가 넘쳐흐른다. 그리고 호루스는 인간들을 위해 온화하고 따뜻한 통치를 펼치는 지도자답게 저승길에 가면서 뭔가를 바쳐야 하는 법은 앞으로 없애겠다고 공표한다. 그 대신 살면서 얼마나 사랑을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돌보았는지로 어떤 사후세계를 맞게 될는지를 측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권선징악의 말로 엔딩을 장식하는 호루스의 뻔한 말에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이 터져나왔다. 또 그 말을 하면서 세상을 호령하는 최고의 신답지 않게 지어보인 부끄러운 듯한 표정도 귀여웠다. 만일 영화관에서 길을 잃고 들어간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본 것이었다면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별기대 없이 본 영화치고는 킬리타임용으로 제격이었다.
이상, 갓 오브 이집트 태양의 신 호루스와 어둠의 신 세트의 대결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