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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런던 해즈 폴른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

 

런던 해즈 폴른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 

 

 

제라드 버틀러의 화려한 액션 원맨쇼 [런던 해즈 폴른]은 [백악관 최후의 날], 원제 올림푸스 해즈 폴른의 속편답게 기본구조와 등장인물들이 거의 같았다. 다만,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는 세계 제1강대국 미국의 백악관이 그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처참히 테러를 당한 것이었다면 [런던 해즈 폴른]에서는 영국 런던이 무자비한 테러로 파괴되었고, 전편에서는 백악관을 초토화시키고 미 대통령을 인질로 붙잡은 것이 한국측 경호요원으로 신분을 위장한 북한 출신 ‘강’을 중심으로 한 테러리스트들이었다면, 속편에서는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던 무기상 알론 어부트불이 테러를 감행한다는 스토리만 다를 뿐이다.


런던 해즈 폴른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정도로만 [런던 해즈 폴른]의 스토리를 소개해 보면, 2016년 3월, 영국 수상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전 세계 28개국 정상들이 모인 런던에서 사상 최악의 테러가 발생한다. 역사상 가장 철저한 보안태세가 유지되던 런던 도심 전체에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나는 가운데 5개국 정상이 무자비한 테러에 희생되고 미 대통령 벤자민 애셔(아론 에크하트)가 납치당한다.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아비규환 속에서 비밀경호원 마이크 배닝(제라드 버틀러)은 MI6과 함께 전 세계를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세력을 처단하기 위해 전격등장한다.


영국 경찰들은 시민들이 동요할까봐 절대 뛰는 법이 없다고 들었는데, 평화롭게 발맞춰 행진하던 그 경찰들이 느닷없이 테러리스트로 돌변해 총을 쏘아대는 장면에서는 사실 좀 놀랐었다. 하지만 결국 제라드 버틀러가 대통령을 거뜬히 구해낼 것이기에 크게 긴장할 것도 없었고, 첼시교와 세인트폴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사원, 템즈 강, 국회의사당 등 영국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랜드마크가 블록버스터다운 스케일을 자랑하며 쾅쾅 폭파되는 장면들을 바박 나자피 감독이 얼마나 잘 연출해 냈는지 몰입해서 보면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최근에는 이런 테러들이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하고 있고, 또 실제로 어제도 벨기에의 브뤼셀 국제공항에서 자폭 테러가 발생해 아수라장이 되고 30여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듣게 되니 누구도 테러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구나 하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벨기에 당국은 공항 폭발의 원인이 자살폭탄으로 드러남에 따라 파리 테러의 주범인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조직원 살라 압데슬람을 체포한 데 대한 '보복 테러'로 보고 있다고 한다. 


이 보복 테러에 맞서 또 보복성 체포를 감행하고, 그러면 또다시 보복 테러가 이어지고, 다시 보복성의 체포가 감행되면 또 보복 테러가 발생하고...하는 과정에서 죽어나는 것은 애꿎은 국민들이라는 것이 참으로 가슴아프다. 애먼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생각을 해서라도 민간인들의 목숨을 가지고 노는 테러리스트들을 어떻게든 잘 설득하고 타협을 지어서 더 이상 아까운 죽음이 없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되도 않을 꿈도 꿔본다.



[런던 해즈 폴른]에 등장하는 테러도 보복 테러다. 무기를 팔아넘긴 바람에 무고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복수를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무기상 어부트불 가족이 있는 곳으로 미사일을 날리는데, 이 폭격으로 죽은 사람들 중에는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어부트불의 딸도 있다. 배닝에게 자기 아이가 소중한 것처럼 어부트불에게 있어서도 소중했을 딸이 아버지가 저지른 죄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2년 후, 두 다리를 잃은 채 살아남은 어부트불과 아들들은 그 동안 차근차근히 준비한 보복 테러에 나선다. 런던을 초토화시키는 작전인데, 장례식으로 세계 각국의 대통령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영국 수상을 죽인 것부터가 이미 계획된 일이었다. 물론 마지막 목표는 미국 대통령이다. 결국 테러범에게 체포된 미 대통령은 생중계로 전 세계에 참수를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죽어가야 할 위기에 놓이지만, 제라드 버틀러가 누구인가?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멋지게 구출해 낸다.   


그 후 정신을 수습한 미국은 또다시 어부트불의 테러 전초기지를 찾아 폭파시킨다. 보복 테러에 또 다른 보복 테러로 응징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복에 보복이 이어지는 꼬리물기가 끊이지 않는다면 다음엔 어디서 또 테러가 발생할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늦든 빠르든 누구나 어차피 맞을 죽음이지만,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전혀 예기치 못한 테러로 황망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디 저런 식의 죽음은 절대 피하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이 제정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의 제1원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즉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자신이 당한 만큼 응징할 것을 허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죄에 대한 처벌에 있어서 원시적 성격을 띤 이 법의 적용도 신분의 차이에 따라 정도가 달랐다고 한다. 예를 어떤 귀족이 다른 귀족의 눈을 멀게 했다면 그 가해자의 눈도 멀게 했지만, 귀족이 다른 계층에게 해를 입힌 경우에는 그 처벌이 다소 가벼웠다는 것이다. 신분을 바탕으로 한 갑질의 역사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 듯싶다.


아무튼 요즘에야 눈을 멀게 했다고 해서 똑같이 눈을 멀게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이따금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한 인간을 보면 사람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부르짖으며 가해자가 딱 피해자가 당한 만큼의 몹쓸짓을 당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조항을 다르게 풀이하는 분들도 있다. 교수님 중에도 그런 분이 있었고 신부님 중에도 이 주제를 가지고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은 이것이 가해를 입은 만큼 앙갚음을 하라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강력한 보복은 삼가달라는 의미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눈을 멀게 한 것에 분노해 그 보복으로 눈을 멀게 하려다가 자칫 두 눈을 멀게 할 수도 있고, 또 폭행당한 것에 화가 치밀어 당한 만큼 폭력을 휘두르려 하다가 자칫 상대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당한 것보다 더 큰 보복은 삼가고 <눈에는 눈>만큼만, <이에는 이>만큼만 대가를 치르게 하자는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것이다.  


즉 보복이 점점 커져 가는 것을 경계하자는 의미인데, 여기에 덧붙여 비폭력평화주의자인 인도의 간디가 남긴 "우리 모두가 <눈에는 눈>을 고집한다면 결국 우리는 모두 장님이 될 것이다"라는 명언은 보복이 부르는 끔찍한 결말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눈이라고는 딱 두 개밖에 없는데, 너나할 것 없이 <눈에는 눈>을 고집한다면 이 세상은 곧 눈먼 자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 되고 말 터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복수의 희생양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그 악순환을 멈출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제라드 버틀러와 함께 [런던 해즈 폴른]을 이끌어나가는 대통령 벤자민 애셔 역을 맡은 아론 에크하트다.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도 그랫지만 이번 작푸에서도 여전하게 진중하면서도 위트있는 미 대통령으로서 강인하고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그에게 바박 나자피 감독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표현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잘 표현해 주었다"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 참 대단한 나라다. 스스로 백악관을 테러로 무참하게 무너뜨리고,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대통령을 도망치게 만들고, 그 목에 테러범들이 총구를 들이대어 일촉즉발의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어가면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로나마 테러범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한 그 모습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쌓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로지 미국 대통령만 구출해 내면 된다는 식의 전개가 좀 비위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나라에 충성하고 대통령을 존중하는 애국심을 가지라고 억지로 몰아대는 것보다 백 배는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3인방 중 또 한 사람인 연기파 배우 모건 프리먼은 부통령 앨런 트럼불 역을 맡아 아주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미 대통령이 테러범에게 납치당해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비상상황에서도 정확하고 현명한 판단에 따라 흔들림없이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과연 누가 모건 프리먼만큼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상, 런던 해즈 폴른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였습니다. 재미있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