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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귀향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진혼굿

 

귀향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진혼굿 

 

 

모두 75,270명이 후원한 12억여 원으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조정래 감독의 영화 [귀향]을 보고는 선뜻 일어날 수가 없어 잠시 그대로 앉아 있노라니 온 화면을 가득 채우며 그 후원자들의 명단이 좌악~~ 올라가는 장관이 펼쳐졌다. 저 75,270명 중 한 사람이 못 됐구나 싶으니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마음이 불편하고 가슴이 아플까봐 어차피 볼 거면서도 무척이나 망설이며 예매를 했었는데, 가슴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아무리 전쟁중이었다 한들 치떨리는 일본군들의 만행에 분노가 치솟아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어야 했다. 

 

영화는 먼저 평온하기 그지 없는 일상을 보여준다. 경남 거창 한디기골, 어느 지게꾼의 외동딸 정민(강하나)은 동무들과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고 잘 웃는 꽃다운 소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 순사들에 의해 어디론가 강제로 끌려간다. 정민이 말고도 많은 그 또래의 많은 소녀들이 함께 기차칸에 실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데, 그들이 도착한 곳은 머나먼 중국땅, 그들을 맞이한 것은 총칼을 찬 일본군들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의해 끌려온 소녀들은 그곳에서 매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혹한 성적 학대를 당한다.

 

전쟁은 이처럼 그 날이 그 날인 것 같은 일상을 처절하게 무너뜨린다. 그리하여 무료하게까지 느껴졌던 그 일상이 사실은 인생의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뼈아프게 깨닫게 해준다.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그 누구도 끔찍한 참화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 중에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을 각오로 전쟁터를 향해 달려가는 젊은이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신세다. 한편 젊은 처자들의 운명 또한 예측할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 있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 어떤 간접적인 피해를 입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귀향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진혼굿

 

영화는 그나마 수위가 낮다. <마루타>라는 책을 읽을 때는 숨이 컥컥 막혔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일본사람들에게 몹쓸짓을 당한 적이 없는데도 너나할 것 없이 생래적으로 일본인들을 미워하는 것은 아마 일제강점기 때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처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넋이 뇌리에 박혀 유전돼 내려오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전쟁통에 너를 안 죽이면 내가 죽는 위기의 순간이 아닌 경우에도 일본놈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행한 상습적인 학대는 말로 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들의 만행은 거의 집단 싸이코패스 수준이다. 이 정도면 전쟁상황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그런 짐승 같은 소행을 저지를 만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게다가 보통은 전쟁터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행위를 저지른 사람도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전쟁 후 오래도록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 뻔뻔하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용서를 빌라고 하기도 전에 스스로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그야말로 파렴치의 극치다. 세월이 지났다고, 자기들 나름으로는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렀다고 해서 씻어질 종류의 죄가 결코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랬지만, 영화를 보면서도,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

은 것이 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남녀차별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도 있는데, 즉 남자의 경우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면 가족에게나 국가 차원에서 혜택을 받는다. 물론 몸바쳐 싸운 사람들이기에 그런 우대를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문제는 여자의 경우에는 끔찍한 전쟁에서 살아 돌아와도 환영을 받기는커녕 손가락질받을까봐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귀향]의 주인공들, 강제로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갔던 어린 소녀들도 그랬다. 혹자는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그에 응분하는 대가를 받았다고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기도 하지만, 당시 일본군이 위안부들을 필요로 한 것이 사실이었기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었다면 결코 위안부가 되었을 리 없는 소녀들이었다. 게다가 살아 돌아온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 강제로 끌려간 게 분명하다. 더욱이 <위안부>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또한 섬뜩하기가 그지 없다. 

  

위안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징용 또는 인신매매범, 매춘업자 등에게 납치, 매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군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여성을 말한다. 조선인을 포함한 중국인 외에 필리핀과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일본 제국이 점령한 나라의 여성도 일본군에게 징발되었다. 생존한 사람들은 하루에 30번 이상 성행위를 강요당했다고 증언했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국 가운데 유일한 유럽 국가인 네덜란드의 얀 할머니는 1990년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혔다. 얀 할머니의 고백 이후 엘른 판 더 플루흐 할머니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증언했고, 1991년 8월 14일에는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였음을 고백하는 기자회견을 했으며, 2004년 11월 29일에는 심미자 등이 일본 대법원에서 일본군위안부로 인정되었다.

 

일본놈들의 성적 욕구를 해결해 주는 것이 위안이라니, 위안이라는 단어가 어디 그런 데 쓰일 단어던가. 심지어 영화에서는 더 기막힌 말이 나온다. 한 싸이코 일본놈이 "너희는 인간이 아니다. 황군의 암캐일 뿐이다"라고 소리치던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가 치밀었다. 우리의 소중하디 소중한 딸들을 마구잡이로 끌고 가 목숨을 담보로 위안부 노릇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암캐라는 말까지 갖다 붙이다니, 

 

 

더욱이 이런 놈들을 상대로 사죄를 받아내야 하는 우리 정부의 뜨뜻미지근한 반응도 분노를 돋구기는 마찬가지다. 자식이 죽을 만큼 맞고 돌아왔는데도 상대나 상대의 부모에게 제대로 항의다운 항의 한 번 못하고, 사죄다운 사죄도 받지 못했는데도 이쪽에서 알아서 사건을 덮고 쉬쉬하는 꼴과 뭐가 다를까. 아마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대응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분들이 여자라는 이유도 크지 않을까.

 

역사적으로도 그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가장 단적인 예는 환향녀, 화냥녀, 화냥년이라는 단어가 증명해 준다. 고려시대 우리가 원나라의 속국이던 시절, 패전국에서 태어난 죄로 먼 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던 여자들 중 몇은 이후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 그녀들은 적에게 능욕을 당했다는 이유로 이웃들은 물론 부모에게도 외면당했다. 귀향한 전쟁포로는 환대받았지만 환향녀(還鄕女)는 화냥년으로 조롱당하며 냉혹한 시선과 멸시의 대상이 돼야 했다.

 

또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인들 또한 정조를 잃었다 하여 바로 귀향하지 못하고 청의 사신들이 묵어가던 홍제원이 있던 서대문 밖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환향녀들로 하여금 냇물에서 몸을 씻게 하고 그들의 정절을 회복시켜 주었는데, 그곳을 널리 구제했다는 뜻으로 홍제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친지들이 환향녀들을 받아들이기를 기피해서 결국 의지할 곳이 없어진 환향녀들은 스스로 청나라로 다시 가거나 서대문 밖에 살면서 어렵게 목숨을 부지해 나간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다. 남녀에 대한 참으로 가혹한 이중잣대다. 

 

 

위 그림은 열여섯 살에 위안부로 일본군에 끌려갔던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그림으로 제목은 <태워지는 처녀들>이다. 조정래 감독이 [귀향]이라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그림이다. 강일출 할머니는 크게 부유하진 않아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엄마는 밭에 나가 안 계시고 집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일본군이 찾아와 자신을 끌고 간다고 한다. 강일출 할머니가 끌려간 곳은 중국 목당강 위안소였고, 그곳에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일들을 겪다가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일본군이 치료를 해주겠다며 트럭에 태워 데리고 나가더니 이렇게 외딴장소로 몰아넣고 불에 태워 죽였다고 한다.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을 표현한 영화 장면이다.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성적 노리개로 삼는 인면수심의 짓을 하다가 병이 들자 마치 쓰던 물건 내다버리듯 한곳에 몰아넣고 불태워 죽인 것이다. 눈앞도 죽음이고 머리를 돌려도 죽음인 끔찍한 공포 앞에서 어린 소녀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으리라. 강일출 할머니는 이 소각 명령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귀향]에 출연한 배우 중 어린 소녀들 못지않게 눈길을 사로잡는 배우가 있다.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죽음의 직전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소녀 영희(서미지) 역의 손숙이다. 영화에서는 영옥 역으로 나오는데, 2014년 시나리오를 읽고는 조정래 감독에게 개런티 없이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위안부로서 겪어야 했던, 죽어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고통도 고통이거니와 죽음의 기로에서 자기 대신 죽어간 동무 정민 때문에 몸은 돌아왔어도 마음은 머나먼 중국땅을 떠돌고 있던 그분의 넋은 진혼굿을 올리면서 비로소 진한 눈물과 더불어 위로를 받는다. 배우 손숙도 그렇고 타향에서 죽어간 소녀들의 넋을 모시는 귀향굿을 펼쳐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 신녀 은경 역을 맡은 최리도 실재인물인 듯 현실성이 돋보이는 감동의 연기를 보여주어서 더 오롯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그 동안 굿은 죽은 자들의 넋을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행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굿이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위무(慰撫)의 한바탕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진혼굿도 본뜻은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어 위로하기 위해 하는 굿'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느 날 느닷없이 끌려가 혹독한 성적 학대를 받은 것만도 억울하고 분한 일인데, 처참하게 죽어간 동무들을 두고 자신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이 미안하고 죄송스러워 안으로 깊은 병이 들어가는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진혼굿>인 것이다. <피해를 입힌 자>들이나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자>들은 미안한 마음도 없고 죄송스러운 마음은 더더군다나 없는데, 정작 <피해를 입은 자>들이 더 괴롭고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이렇게 굿으로나마 넋을 위로받아야 하다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작에 들어간 지 14년 만에야 완성된 [귀향]을 통해 조정래 감독은 "정치적으로 사회를 바꿔보려는 것도, 자극적인 소재로 돈을 벌어보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삶과 그들이 겪은 고통을 영상으로 기록해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홀로코스트’ 영화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등과 같이 ‘문화적 증거물’로서의 역할에 기여하고자 하는 진심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시사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90세)도 "우리는 이만큼 살았기 때문에 이런 영화도 보고 이런 말도 할 수 있지만, 먼저 간 할머니들은 한을 얼마나 품고 갔나 모른다. 우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고, 이렇게 모두 옆에서 지켜봐주셔서 정말 고맙다"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나마 표현해준 것에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귀가 솔깃해지는 소식이 있다. 한 교사가 이 영화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사비를 들여 서울 강남의 복합상영관 5개관(434석)을 통째로 빌려 일반인 무료관람을 진행했다고 해서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로 나와 화면상으로나마 자주 뵙던 서울 대광고 최태성 선생님이셨다. 마음먹기는 쉬워도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여러 모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참 대단한 분이다. 평소에도 늘 웃는 얼굴이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분이었지만 앞으로는 더욱 더 따뜻하고 두름성있는 큰형님처럼 친근감 있게 여겨질 것 같다.

 

이상, 귀향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진혼굿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