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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오빠생각 오빠 임시완은 말한다 "너희 잘못이 아니야"

 

오빠생각 오빠 임시완은 말한다 "너희 잘못이 아니야"

 

 

아마 전쟁의 참상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하모니의 합창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였겠지만, 일단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보여준 전쟁 장면은 좀 버거워서 어서 끝나기만을 바랐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전쟁 자체는 아니었으니 차라리 [오빠생각]의 주연인 한상렬(임시완)이 아이들의 합창을 맡게 된 장면부터 시작하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회상하는 씬으로 보여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있었던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하니 전쟁 장면을 피해갈 수는 없었겠지만, 솔직히 영화에서나마 전쟁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앞부분이 좀 어수선한데다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서두르는 감이 있어서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면 어쩌나 잠시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전개가 너무 뻔한 스토리인데도 흥미있게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자칫 신파가 되기 충분한 내용을 적당히 눈물샘을 자극하면서도 밝고 희망찬 느낌으로 펼쳐 보여주어서 좋았다.     

 

오빠생각 오빠 임시완은 말한다 "너희 잘못이 아니야"

 

이 여릿여릿한 꽃미남 임시완이 참혹한 전장의 한복판에서 아이들을 지켜주는 <오빠>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싶던 걱정도 기우였다. 약자들, 특히 아이들에겐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하고 부드러워서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모습을 훈훈한 미소와 더불어 보여주면서도 강자 혹은 불의에 맞서서는 칼같이 단호하고 강인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오빠의 모습을 무리없이 보여주어서 실제로 주변에 이런 오빠가 있으면 다들 얼마나 믿음직스러워할까 싶었으니 말이다.

 

 

전쟁으로 소중한 가족도, 지켜야 할 동료도 모두 잃은 군인 한상렬은 전쟁 중 목숨을 구해준 부하가 보은 차원에서 불러준 한 부대 내에  머물게 된다. 뜻하지 않게 낯선 곳으로 오게 된 그는 멋쩍은 기분으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피아노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앉아 연주를 시작한다. 쇼팽의 녹턴 4번이다. 대포가 터지고 총성이 울리는 전쟁터에서 그가 몰입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얼핏 영화 [피아니스트]도 떠올랐다. 폐허가 된 전장, 그것도 적군 장교가 바라보고 있는 앞에서도 피아노 앞에 앉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은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피아노 연주만 할 수 있다면 그곳이 더 끔찍한 지옥이어도 상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고통스러운 슬픔으로 가슴에 상처를 입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음악은 은빛 화음으로 빠르게 치유의 손길을 내민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꼭 맞았다. 피아노 연주를 하는 사이에 임시완의 표정 또한 점점 누그러지고 평화로워져서, 그가 앉은 곳이 곧 더 머물러도 좋은 장소로 변한 듯했으니까. 임시완은 자신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기 위해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피아노 연주와 지휘 연습을 하느라고 무척 애썼다고 하는데, 제법 솜씨가 그럴싸해서 연주가 너무 짧았던 것이 아쉬웠고, 나중에라도 한두 번 더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어서 좀 섭섭했다. 

 

 

[오빠생각]에서 이 오누이 순이(이레)와 동구(정준원)를 빼놓을 수는 없다. 전쟁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부모님을 잃고 형제들과도 뿔뿔이 흩어져 그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거지 짓도 하고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았던 모든 전쟁고아들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순이는 국군이 나타나면 국군 편에 서고 북한군이 나타나면 북한군 편에 서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해 나가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북한군가를 불렀다가 빨갱이로 몰려 아버지가 죽게 되자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으로 두 번 다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   

 

한편 동네 친구였지만 어른들이 갈라놓은 38선으로 적개심을 품게 된 오빠 동구와 춘식이 보기만 하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거리자 이 둘을 같이 세워놓고 임시완은 말한다. "너희들이 서로 미워하게 된 것은 너희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 어른들이 벌여놓은 일로 서로 미워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물론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 것도 결코 순이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순이가 노래를 못 부를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어른들이 저지른 무모한 전쟁으로 아이들은 지은 죄도 없이 죄책감을 갖게 되고, 어른들처럼 서로 손가락질하며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서글픈 상황을 매듭짓기 위해 오빠 임시완은 아이들에게 "너희 잘못이 아니야"라고 단호하게  말해 준다. 그리고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아이들 마음을 다독거리며 적극적으로 <합창>을 준비한다. 처음엔 아귀 맞지 않는 문처럼 삐걱거리던 아이들의 노래는 점점 더 마음을 울리는 곱고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낸다.

 

 

아이들을 위하는 한상렬의 순수한 마음과 노래를 통해 비로소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아이들의 변화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이한 감독의 [오빠생각]은 한국전쟁 당시 실존했던 어린이 합창단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여간 가족과 형제, 친구를 잃고 누구도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시기, 가장 비극적이고 참혹한 그곳에서 여리고 작은 아이들의 해맑은 노랫소리가 감동과 위로가 되어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선린어린이 합창공연단은 실제로 격전의 전장과 군 병원 등지에서 위문공연을 했고, 휴전 직후 미국 전역, 1960년대에는 일본, 동남아, 유럽까지 순회공연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때도 이번 영화에서와 같이 멋진 편곡의 노래를 부른 것은 아니었겠지만, 영화에 나오는 노래들이 하나같이 훌륭해서 나중에 따로 모아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야말로 천사가 따로 없는 박주미 선생님 역을 맡은 고아성이다. 오직 가엾은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한 일념으로 전쟁터로 달려왔으니 말이다. 그녀 역시 아직 어리고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야 할 처지이기에 힘들어하고 때로는 보고 싶은 부모님 생각에 남몰래 눈물짓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밝고 환한 모습으로 다가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니, 사실은 주변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언제 어디서든 늘 방실방실 웃고 있는 모습이 왠지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고, 아이들을 돕는 데 대한 분명한 의지나 신념이 엿보이질 않는 점도 좀 아쉬웠다. 하지만 끝까지 자기 역할에 충실할 뿐, 임시완과 썸타는 관계로 가지 않게 만든 것은 너무 고마웠다. 청춘남녀가 만나기만 했다 하면 연애 비슷한 것을 시작하게 하고야 마는 뻔하디뻔한 전개를 아이들에게 "너희 잘못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주는 이 영화에서만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시완과 아이들을 위협하는 인물로 나오는 ‘갈고리’ 역의 이희준을 필요 이상 나쁜 놈으로 만들지 않은 것도 정말 고마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악귀가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정도의 악독한 짓을 보여줄까봐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가 1953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악마 같아도 요즘 같은 싸이코패스류의 악행은 저지르지 않았을 듯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약 60여 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세상이, 사람들이 너무 악독하게 변해온 게 분명하다. 요즘 같으면 저 이희준이라는 역할이 그저 아이들을 내보내 물건을 훔쳐오게 하고 뒷구멍으로 석유를 빼돌려 검은 돈을 챙기는 정도의 악역으로 끝날 캐릭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에게 의지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들이다. 이 영화에서는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 처한 아이들의 힘겨움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요즘 아이들 중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전쟁 중이 아닌데도 마치 전쟁터에서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잘 보살피고 돌봐주어도 한몫의 어른으로 어엿하게 성장하기까지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이들의 삶인데, 심지어는 2년이 넘도록 철저한 무관심과 방치로 인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한겨울에 한여름 옷을 입고 베란다 가스관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버지의 무차별폭력으로 죽음에 이르다 못해 신체훼손까지 당하는 아이도 있는 실정이다.

 

혹 그 아이들도 그런 몹쓸 짓을 당하는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왜 자기 때문이고,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러니 살아 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이들 문제에 관한 한, 그 어떤 일도 온전히 어른들 때문이고, 어른들 잘못인데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임시완이 영화 속에서 아이들을 향해 던진 "너희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 천둥 소리처럼 들렸다. 어른들 욕심 혹은 무지로 아이들이 더 이상 고통에 빠지는 일은 없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상, 오빠생각 오빠 임시완은 말한다 "너희 잘못이 아니야"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