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로 보는 세상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여자의 우정은 얄팍하다는 편견을 버려라!

 

흔히 ‘우정’이라고 하면 남자의 전유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뜨겁고 눈물겨운 우정과 의리가 가능하지만, 여자들의 우정은

얄팍하기 짝이 없어서 친구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금세 꽁무니를 빼고,

심지어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는 편견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온라인상에는 남자들간의 믿음직스런 우정과 여자들간의 얄팍한 우정을

비교하는 이런 꽁트도 떠돌아다닌다.

 


 위의 글이야 그리 바람직한 일에 발휘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우정이지만,
아무튼 남자들간의 우정은 죽을 때 죽더라도 끝까지 친구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깨는 연구결과도 있다.
여자들의 우정이 남자들간의 우정보다 더 오래 지속되며 깊이도 더 깊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와 <텔레그라프>에는 맨체스터대학교의 사회학자들이 1992년에서 2002년까지의

영국 가구패널조사를 근거로 한 주장이 실렸는데, 만 명의 친구관계를 분석한 결과 여성은 친구 자체에

관심을 갖고,  친구가 무엇을 하는지, 가족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하며, 지역적으로 멀어지거나

사회계층이 달라져도 오랫동안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남자들의 친구관계는 변덕스러워서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남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나에게 득이 되는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즉 남자들은 친구를 사귀면서도 친구가 자신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 연구에 따르면 여자들은 옛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남자들은 새로운 사람을 쉽게 사귀고 친해진다고 한다.
가장 친한 친구과 매일 연락을 한다는 여자는 전체의 47퍼센트, 남자는 36퍼센트였다.

 

이 연구결과 외에도 여자의 우정이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가 또 있다.

바로 요즘 방영하고 있는 TV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박주하(서정희)와 오현수(엄지원)가 보여준 끈끈한 우정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두 사람의 은은하면서 깊고 따뜻한 우정은 여자의 우정이 얄팍하다는 편견을 한방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주하와 안광모(조한선)의 결혼이 깨진 후 뒤늦게 그 동안 숨겨온 사랑을 드러낸 현수는 광모와 키스를 하다가

집에 돌아온 주하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화들짝 놀란다.

 

 

상상도 못했던 광경에 놀란 주하는 “이것들! 순 상것들 아니냐”고 소리치며 현수에게

“너는 아무리 남자가 궁해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저 자식은 내놓은 놈이라 그렇다 치고

넌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분개한다. 

 

 

화가 잔뜩 난 주하는 현수와 광모에게 별의별 악다구니를 다 퍼붓고, 광모가 쫓겨나가다시피 돌아간 후

현수는 눈물을 흘리며 스무 살 때부터 광모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주하에게 고백한다.

 

 

현수의 뜻밖의 고백에 망연자실해진 주하는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이 집에서 나가겠다"며 

2층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잠시 후 2층으로 따라올라온 현수에게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것 같으니

병원에 가보라"고 하며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한다.

 

이윽고 두 사람은 잠자리에 들고, 여전히 이 상황이 화도 나고 한심스럽게 여겨지기도 하는 듯

한숨을 쉬며 침대에 누운 주하는 바닥에 누운 현수를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더니 현수 곁으로 다가가
“바보 콘테스트 없나. 몰랐어. 미안해. 그런데 나는 죽는 날까지 너 이해는 못할 거야.

그래도 죽는 날까지 우리 친구는 하자, 현수야. 너 정말 힘들었겠다..하고 눈물을 흘리며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현수도 눈물만 뚝뚝 흘리며 소리죽여 운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을 맞자 주하는 현수 집에서 나가려고 짐을 챙기고,

그러던 중 현수는 엄마가 다쳤다는 전화를 받는다. 크게 놀란 현수가 펄펄 뛰다가 허둥지둥

방에서 달려나가며 주하에게 "엄마가 다쳤대! 너  운전해!"라고 소리치자,

주하 또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 알았어. 알았어" 하며 한달음에 계단을 내려간다. 

친구가 난처한 처지에 처하자 어젯밤 그 친구로 인해 분개하고 속상했던 심정은 새까맣게 잊고 

오직 친구를 위해 죽어라 달려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행은 친구가 아닌 자를 가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 화가 보나르는 “참다운 벗은 좋을 때는 초대해야만 나타나고,

어려울 때는 부르지 않아도 나타난다”고 했다,

 

하긴 좋을 때 친구 노릇 하는 건 쉬워도 너무 쉽고 또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우정은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더 그 빛을 발휘하는 법이다.

진정한 우정은 진정한 사랑처럼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햇볕과 그늘을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정도 그렇게 빛과 그림자를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소중한 덕목인 것이다.

그러니 그 귀한 우정을 굳이 남자의 우정이니 여자의 우정이니 하고 구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함석헌님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새삼 가슴을 파고든다.
태어나서 이런 친구 한 번 못 가져본 사람은 우정을 논할 자격도 없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