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일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 혹은 미움받을 용기를 가진 사람
송곳 일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 혹은 미움받을 용기를 가진 사람
요즘 서점가에서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계속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나칠 만큼 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출판시장에서 한 종의 책이 너무 오래도록 1위에 올라 있는 것은 다양성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 심리학 이론인 아들러 개인심리학이 최근 들어 새삼 우리나라에서 큰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 납득이 안 돼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의로 선택을 했든 타의로 선택을 했든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그 책만이 가진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게 분명합니다.
책의 기본주제는 우리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며, 그저 <용기>, 즉 <행복해질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해질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덕분에 이 책이 나온 이후 <용기>라는 제목을 단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고 대부분 좋은 반응을 얻은 듯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왜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인지 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곧 미움받을 용기 없이는 행복한 삶을 꿈꾸지도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비롯하여 상사, 동료 등 타인의 통제와 간섭이 얼마나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구요.
송곳 일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 혹은 미움받을 용기를 가진 사람
직장생활의 현실적인 애환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내 수많은 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드라마 [미생]을 연상케 하는 [송곳]이라는 드라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정리해고 문제를 중심으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던 평범한 직장인들이 난관에 맞서 싸우며 세상의 부조리를 다룬 최규석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데, 1, 2회를 보면서 드라마 제목이 시사하는 <송곳 같은 사람>이란 바로 <미움받을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내용상으로는 송곳, 즉 <일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올바른 일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일을 올바름으로 대항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지극히 원칙적인 인간> 혹은 <정의로운 인간>이라는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런 사람이 송곳 취급 당하면서 기피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원칙과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을 <일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으로 보는 부류들, 그리고 그들에게 맞서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 있는데 말입니다.
[송곳]의 홈피에 소개된 것에 따르면, 드라마의 배경은 푸르미마트입니다. 활기로 가득하던 마트에 정리해고가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급변을 합니다.
이수인 과장 지현우
제발로 그만두고 나가게 만들려고 인간적인 모욕도 서슴지 않는 회사의 압력에 맞서싸우는 '송곳' 이수인 과장 역은 지현우가 맡았습니다. 사내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한다며 내세울 것은 없어도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와 사람이 없이는 살아도 죄 짓고는 못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어머니를 둔 덕에 불의에 불복하지 않는 송곳 같은 성정을 갖게 된 사람입니다. 험난할지언정 정의를 지키겠다는 신조 때문에 <어쨌든 나는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는 자괴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냉정해 보이는 그의 내면에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깔려 있습니다.
부진 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 안내상
지현우를 도와 노조를 만들고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게 해주는 부진 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 역은 안내상이 맡았습니다. 느물느물하니 노련미로 넘치는 만물박사입니다. 학생운동과 대공장 조직활동으로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았던 그는 당시의 고문후유증으로 지금도 하루에 5번씩 복막투석을 하며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체불, 산재, 부당해고를 당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방패가 되어주며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무지한 푸르미 판매직 노조원들에게 자존감을 일깨운다. 불의하거나 비열한 인간들과는 무섭게 싸우다가도 난데없이 나타난 쥐 한 마리에 화들짝 놀라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그는 강한 자들에겐 무섭도록 강하지만 약한 자들에겐 한없이 약하고 너그럽습니다. 강하지만 유연하고, 유연하지만 절대로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리더의 덕목을 갖춘 사람입니다.
정민철 부장 김희원
그리고 종업원들을 무조건 해고하라는 윗선의 지시에 따르면서 지현우와 심한 갈등을 겪게 되는 정민철 부장 역은 김희원이 맡았습니다. 현장 출신으로 정육사원에서 마트 부장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로 본사 공채출신 엘리트인 지현우 과장에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을 상해가며 일하면서도 회사에 일체 책임을 묻지 않는 충성심이 인사상무에 눈에 띄어 부장으로 발탁되지만, 그로 인해 인사상무의 수족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직원들을 해고하는 업무를 맡게 되고, 해고가 자신의 뜻은 아니지만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직원들과 많은 마찰을 빚게 될 뿐 아니라 인사상무의 이해관계에 따라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인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희원이 맡은 역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온몸을 불사르며 회사에 충성을 다하지만 결국 갑질의 희생양이 될 게 뻔한 가엾은 을입니다.갑과 을들 사이에 끼어 갑도 아닌 것이 을도 아닌 척하면서 갑에겐 한없이 굴종하고 을에겐 턱없이 완장을 휘둘러대는 이 박쥐 같은 기회주의자들 때문에 미움받을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예전에 부장 자리에 앉아서 책상 앞에 선 부하직원에게 "네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내가 앉아 있는 이 겨우 50~60센티미터의 거리를 넘어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아무나 하는 일인 줄 아느냐구! 억울하면 니가 부장 해!"라고 큰소리 빵빵 치던 어떤 사람도 생각납니다. 아무튼 한동안 이 드라마 <송곳>을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습니다.
이상, 송곳 일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 혹은 미움받을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흥미롭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