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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부끄러움 코드]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타아(他我)를 초대하는 몸짓

 

부끄러움, 그것은 현사회의 문제점을 꿰뚫는 정서다.

성장의 때가 있었다면 치유의 시간도 필요하다.

내 마음은 괜찮은지, 가족의 마음은 괜찮은지, 이웃의 마음은 찮은지 돌아볼 시간이다.

 

부끄러움이 안전하게 경영되기를 지지하는 사회의 인간관계 원칙은 지극히 단순하다.

"나는 소중하다. 그만큼 너도 소중하다."

 

보낸사람: wansuh 10.02.16 09:19

 

미안한 말씀 드립니다. 저는 요즈음 건강이 고르지 못합니다.
밀린 원고도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의 책에 붙이는 글은 대강이라도 그 사람의 책을 읽어보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메일을 이제야 열어보아 회신이 늦은 걸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구정을 낀 어수선한 시기를 감안하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완서 

 

위 글은 [부끄러움 코드]라는 책을 출간하기에 앞서 박완서 작가님에게 추천사를 받고 싶어서

정중히 요청 메일을 드린 후 받은 답신이다. 워낙에 바쁘신 분이어서 진작부터 부탁을 드린 거였는데,

꽤 오래도록 답이 없으셔서 결국 단념을 해야 하나 생각할 무렵 보내오신 답메일이었다

건강이 고르지 못하다고 하셨지만, 신문지상으로 간간이 소식을 듣고 있었던지라

그냥 딱잘라 거절하기가 그래서 에둘러 하신 말씀이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해 버렸다.

 

많이 아쉬웠고, 많이 서운했다.

유난히 부끄러움을 타던 소녀였지만, 가난한 기지촌 생활과 세 번의 결혼을 통해 현실에

눈을 뜨고 부끄러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한 중년여성이 사소한 어떤 일을 계기로

부끄러움을 되찾게 되는 모습을 그린 박완서님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단편과

맥락을 같이하는 책이어서 어쩌면 흔쾌히 써주실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기대가 컸었기 때문이다.

또 박완서님의 추천사를 꼭 받았으면 하는 저자의 간절한 바램을 저버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도 컸다.

 

그런데 그 후 1년이 채 안 됐을 때 <한국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활동한 소설가 박완서님이

2011년 1월 22일 지병인 담낭암 투병 중 향년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기사가 전 신문에 실렸다.
나라가 술렁였고, 많은 사람들이 문단의 거목을 떠나보낸 아쉬움에 한탄의 마음을 내보였다.

 

정말 많이 죄송했다. 마음속으로 서운함을 넘어 약간의 원망도 가졌었던 듯,

그렇게 편찮으셨던 걸 모르고 추천사 못 받은 서운함만 품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말 그대로 부끄러워서 혼자 남몰래 얼굴을 붉히곤 했다.  

 


부끄러움 코드

저자
신화연 지음
출판사
좋은책만들기 | 2010-06-0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부끄러움 코드』는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본 시사적 한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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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소통의 공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고 바라고 있는 것처럼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부끄러워할 줄 알자>고 호소하는 책이다. <부끄러워하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고,

부끄러움을 경영하는 방법을 배우자>는 책이다. 잘 경영하기만 하면 부끄러움은

“인간의 존재의 한계를 깊게,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강자의 감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호주국립대학에서 사회심리학 박사를 마치고 현재 호주연방정부 복지부에서 시니어 정책연구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저자 신화연은 이제 부끄러움을 가르쳐야 할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 대뜸 가르치고 말고 할 것이 뭐가 있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배우지 않아도 창피하면 얼굴을 붉히게 마련인데 말이다.
하지만 요즘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자기도취적 뻔뻔모드가 성공을 향해 열린

탄탄대로인 것 같고, 인간관계를 주도하는 결정적 능력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대세가 이러하니 뭔가 잘못했다 하면 금세 고개부터 떨구고 사과모드로 들어가는 이들이나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한다거나, 나선다 해도 얼굴 귀 할 것 없이 정수리 꼭지까지

달아오르는 사람들의 사회적 경쟁력이 실로 걱정될 따름이다.

 

 

그러나 고통스럽지만 인간다워서 아름다운 이 감정을 어떻게 경영하고 극복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일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이전에 더 중요한 일은 오늘날 부끄러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통념을 깨는 일이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는 현시대에서 부끄러움은 패자의 감정이며

희생자에게 강요된 사회적 족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피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하거나 부끄러울 게 없다고

능글거리면 쿨한 사람이고, 뭐 하나 잘한 게 없어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시치미를 뚝 뗄 수 있으면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요즘 세태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이 말했듯이

“사람은 얼굴을 붉힐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동물이다”.

부끄러움의 기능이 멈춘 사람은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남의 돈을 꿀꺽하고 오리발을 내미는 ‘불한당들’이나 ‘ 아랫것’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마음만은

왕족인 ‘왕자, 공주, 왕비’병에 걸린 사람들,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바바리맨들은

다 어느 정도, 아니면 심각할 정도로 부끄러움의 기능이 훼손된 사람들이다.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

잘못한 일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인간의 미덕이며 소중한 능력이다.

단, 과유불급,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모자라니만 못하고, 지나친 부끄러움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이 힘들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부끄러움을 안으로만 쌓으면 사회적 관계로부터 움츠러들 수 있고, 부끄러움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무엇이든 ‘남 탓’부터 하고 보는

미성숙한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부끄러움을 복원할 수 있는 길을 추적해 나가고 있으며

나아가 부끄러움을 잘 경영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부끄러움을 경영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부끄러움의 ‘적응적 경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고 용서를

구하는 한편 잘못한 행동을 청산함으로써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진정한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또 하나는 부끄러움의  ‘비적응적 경영’으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적반하장격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시침 뚝 떼거나, 줄행랑을 놓는 등 성숙하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개인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지만, 유별나게 권위주의적이거나 가혹한 환경 탓인 경우도 있다.

 

부끄러움을 오랫동안 연구한 도널드 네이산슨은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부끄러움의 나침반>이라는

전략을 그림으로 만들었다. 은둔형 또는 위축형, 자아공격형, 회피형, 타인공격형 등 네 가지로

구분되는 이 나침반은 부끄러움으로부터 도망칠 때 작동하는 일종의 심리적 길라잡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은둔형 또는 위축형은 부끄러운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물러남으로써

무너져내리는 자아를 추스르려는 의도를 가진 방어기제다. 인간관계가 순조롭지 않아 회사를 그만둔

젊은이가 몇 년을 집에 틀어박혀 온라인게임과 인터넷으로 세월을 보내는 보내는 것이 그 예이며,

일본에서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히키모코리증후군도 은둔형에 속한다. 

 

둘째, 자아공격형은 ‘모든 일을 내 탓’으로 돌리는 유형이다. 우리나라의 은장도 문화는

자아공격적으로 부끄러움이 경영되도록 제도화된 사례다. 은장도는 정당방위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여자가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그 칼끝은 공격자가 아니라 자신을 향하도록 교육된 것이다.

수치심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연예인들도 자아공격적인 방법으로 부끄러움을 경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회피형은 명품족, 몸짱문화 같은 한국적 허장성세가 이에 속한다.

멋있어 보이고, 섹시해 보이고 싶은 그들의 욕망 뒤엔 숨기고 싶은 부끄러움의 그늘이 있다.

음성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음주/마약문화도 회피형에 속한다.

그들은 부끄러움에 잡히지 않으려고 술과 마약 뒤에숨어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중독도 부끄러움에 잡히지 않기 위한 끝없는 질주다.

다른 사람들에게 추월당할 것 같은 불안, 열등감, 자신보다 잘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질시,

그들 앞에 섰을 때의 초라함,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망 등.. 이 불안감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얼마간의 부끄러움이 있고 자신이 완벽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때 부끄러움의

쳇바퀴를 돌리는 노력을 그만둘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타인공격형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를 하는 사람들이나 적반하장으로

덤벼드는 유형이 이에 속한다. 자기 일이 잘 안 풀리면 부모 탓을 하는 사람, 자신이 실업자가 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된 걸 아내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 자신이 요 모양 요 꼴로 사는 건 순전히 무능한 

남편 때문이라고 한탄하는 아내들이 그 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투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분노를 증폭시킴으로써 자신의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가장 극단적인 타인공격형은 살인이다. 요즘 한창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있는 '묻지 마' 살인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한국사회의 주먹구구식의 부끄러움과 맞닿아 있다.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 사회의 벼랑끝으로 몰린 사람들임을 생각해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직장에서 내쫓기고, 가족에게 외면받고,친구들에게 무시당한 수치심에 압도당한 사람들이다.

 

 

부끄러움은 결국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와 그 내용의 소중함을 아는 감정이다.
반(反)나치 운동가로도 알려진 독일의 심리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부끄러움에 관한 가장 애틋한 정의를 남겼다.

 

“부끄러움은 이제는 멀어진, 우리의 근원을 향한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이다.
부끄러움은 우리로 하여금 그 어그러진 관계를 비통해하면서

근원으로의 회귀를 무기력하게 소망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