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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전통주..우리 술이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

 

사라진 전통주..우리 술이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그 집안의 술, 즉 가양주를 대접하는 것을 최고의 대접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술맛을 보면 그 집안의 성품을 알 수 있을 만큼 술은 한 집안의 족보였으며, 술에 들어가는 재료를 통해 그 집안의 여러 내력까지도 알 수 있었다고 하니까요. 민족 고유의 명절 한가위를 맞아 우리 술인 전통주와 한때 1,000여 종에 이르렀던 전통주가 자취를 감추게 된 까닭을 EBS 역사채널e [사라진 전통주]와 우리 술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한국가양주협회 회장 류인수의 [우리의 맛을 즐기는 72가지 전통주 수첩]을 바탕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사라진 전통주..우리 술이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입니다. 올 추석에는 모처럼 함께 한 가족이며 친지분들과 우리 술을 즐겨보시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리 고유의 술 전통주 

 

사라진 전통주..우리 술이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

 

가족의 화목과 행복을 기원하는 삼해주는 멥쌀과 흰 누륵(백곡)을 원료로 써서 빚는다. 음력 정월 첫날에 빚기 시작하여 저온에서 석 달 걸려 세 번을 거듭 발효시켜 얻는 맑은 술로 그 맛과 향이 뛰어나다. 조선 23대 왕인 순조의 둘째딸인 복온공주가 안동김씨 집안으로 시집오면서 궁중음식과 함께 이 삼해주의 제조법이 사대부가로 전해지게 되었다. 12간지 중 돼지날을 정해 술을 빚는데, 이는 돼지가 의미하는 '복'(福)을 기원하기 위함이어서 더없이 가치있는 술로 평가받는다.

 

 

경기도 남양주의 윤석분씨가 빚고 있는 잎새곡주는 멥쌀, 찹쌀, 옥수수, 수수, 좁쌀, 엿기름, 칡, 앵두잎, 배잎, 인진쑥이 원료다. 머리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어서 조선시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선비들이 챙겨 마셨다고 한다. 

 

 

영양가가 높고 단맛이 나서 아기들에게 젖 대신 먹였다는 이화주는 반드시 다른 누룩과 달리 쌀을 이용해 오리알 크기로 만든 '이화곡'이라는 누룩을 사용한다. 매화주나 진달래꽃으로 빚는 술처럼 배꽃을 술에 넣어 빚는 술이 아니라 배꽃이 필 때 누룩을 만들어 여름에 빚는 술이라 하여 이화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화주에 물을 혼합하면 더욱 맛있는 이화 막걸리를 얻을 수 있다. 

 

 

누룩과 지에밥(시루에 찐 밥)을 버무려 독에 넣고 물을 부어 발효시킨 밑술을 체로 걸러낸 막걸리가 탁주다. 빛깔이 희다고 해서 백주(白酒), 집마다 담그는 술이라 하여 가주(家酒), 특히 농가에서는 필수적인 술이라 하여 농주(農酒)로도 불린다. 탁주는 체에 거르지 않고 그대로 빚는 것과 체에 밭쳐놓고 주물러 걸러내는 것, 술지게미를 재탕하여 만드는 것 세 종류로 나눈다. 체에 걸러내는 것에는 합주(合酒)가 있고 술지게미를 재탕하여 만드는 것에는 모주(毋酒)가 있다. 

 

 

청주는 발효가 끝난 뒤 술 거르는 기구 용수를 술독에 넣어 용수 속에 고인 맑은 술을 떠낸 술이다.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은 우리의 탁주나 약주(맑은 술)를 조선주로 분류하고 자신들의 맑은 술은 청주라고 했는데, 우리의 약주와 일본의 청주는 맑다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만드는 방법과 재료에서는 크게 다르다. 우리 술은 낟알을 잘게 부수어 반죽해서 떡처럼 만들고 여기에 곰팡이를 번식시킨 누룩을 사용하는데 일본의 청주는 쌀을 쪄서 씨누룩을 섞어 만든 누룩을 쓴다.

 

 

소주는 소주고리라는 증류기를 얹고 밀봉한 뒤 밑술을 끓여 생기는 이슬을 차가운 물에 식혀서 내린 증류주다. 원래는 증류식 소주만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20세기 중반 희석식 소주가 증류식 소주를 대체하면서 두 종류의 술을 모두 이르는 말이 되었다. 현재 소주는 값이 싸고 대중화한 희석식 소주를 말한다.

 

 

전주 이강고는 배와 생강이 들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그 외에 울금, 계피, 뒷맛을 좋게 하기 위한 꿀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생강은 술을 빚을 때 소량을 넣게 되면 꿀보다 맛있는 맛과 꽃보다 좋은 향기를 내므로 발효시켜서 내린 증류주에 배와 생강 등을 넣어서 장기간 숙성시킨다. 대나무가 많은 전라도 지방의 전통주 정읍 죽력고는 푸른 대나무를 쪼개 항아리에 넣고 열을 가해서 얻어진 대나무 기름인 죽력과 꿀, 생강 들을 넣어 증류한 술이다. 오미가 조화를 잘 이루고 꿀과 생강에서 나는 부드러운 향과 맛이 좋다.

 

 

관서감홍이라 하여 명주로 알려진 평양 감홍로는 소주에 사용되는 부재료에 따라 술 이름이 달라지는 혼성주(混成酒)의 한 가지다. 곡주를 빚어 소주고리로 증류한 뒤 온갖 약재를 넣어 우려낸다. 여러 번 소주 내리기를 거친 술일수록 고급 술로 통한다. 전주 이강고, 정읍 죽력고와 더불어 조선의 3대 명주로 알려져 있다.

 

 

술의 빛깔이 붉어서 홍주라고 불리는 진도 홍주는 붉은색을 내는 지초를 사용한다. 지초는 한방에서 독을 풀어 염증을 없애고 새살을 돋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과 보리를 이용해 빚은 발효주를 증류할 때 증류주가 지초를 통과하게 하거나 지초를 증류주에 침출시켜 그 색과 기능성 물질이 술에 녹아들게 하는 방법으로 빚는다. 경주 법주는 경주 최부잣집의 가양주로 수백 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서 역사만큼이나 맛 또한 깊은 술이다. 찹쌀로 빚어져 찹쌀의 단맛이 입에 착 달라붙고, 살균을 하지 않고 1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맛볼 수 있어서 '살아 있는 술'로 통한다. 

 

 전통주가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

 

 

조선시대 문헌에 등장한 전통주는 4백여 종, 그 외 기록되지 않은 것까지 더하면 전통주는 약 1천여 종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 강제체결 후 우리 민족문화의 모든 것을 말살하려던 일제는 직접 술을 제조해서 막대한 이익을 남기기 위해 우리 전통주에 손을 대고 모든 술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한다.   

 

1909년 최초의 주세법(酒稅法) 이후 1916년 더욱 강화된 주세령(酒稅令)을 반포했으며 이때부터 가양주 제조는 '제한면허제'로 변경되지만 사실상 금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주세령에 따르면, 자가용(自家用) 술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판매할 수 없으며, 자가용 술의 제조자가 사망했을 경우 그 상속인은 절대로 술을 제조해서는 안 되었다. 만일 이를 위반했을 때에는 2천원 이하의 벌금에 처했는데, 당시 쌀 한 가마니 값이 10원가량이었다고 하니 엄청난 액수였다.  또한 일제는 각 고을마다 주류공장을 지정해서 생산화하고, 일본에서 들여온 주정(酒精)이라 불린 에탄올을 술에 섞어 일본식 청주로 둔갑시킨다.

 

 

1921년 주류 통계치에 따르면 조선에서 생산된 일본 청주는 5만 7천 6백 석에 달했다. 당시 1석은 약 180리터였으니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값싼 주정의 공급으로 일본식 청주는 대량생산됨과 동시에 판매가 활성화되고 총독부의 수입은 크게 증가했으며 그에 따른 주세 수입도 증가해 1918년 총독부의 주세 징수액은 1901년에 비해 12배나 상승했다. 1933년에는 조선 전체 세액의 33퍼센트가 주세로 채워진다.

 

이렇듯 주류는 일제의 통제하에 제조되어 그 품질은 규격. 단일화되고 총 5차례에 걸쳐 강화, 개정된 주세령으로 우리의 전통주는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전통 가양주 면허제조장 또한 1916년에는 30만개소였던 것이 1929년 265개소로 줄어들고 1932년에는 1개소만 남는다. 그 후 1934년에 이르러서는 가양주 면허제조가 아예 폐지되고 전통주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후 광복이 되어도 전통주에 대한 관심은 생겨나지 않다가 1980년대 양곡 사정이 호전된데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문화를 부활시키자는 명목 아래  전통주 제조면허 허가, 전통주 발굴 및 무형문화재 지정 등 일제에 의해 끊어진 전통주의 맥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현재까지도 잃어버린 전통주를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상, 사라진 전통주..우리 술이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오랜만에 함께 자리하게 된 친지분들과 즐겁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