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아버지 영조(송강호)에게 죽어서도 홀대받은 사도세자(유아인)

 

사도 아버지 영조(송강호)에게 죽어서도 홀대받은 사도세자(유아인)  

 

 

아버지와 아들은 흔히 적대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세상 많은 아버지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아들에게 가장 좋은 아버지는 요절한 아버지라는 말이 있듯이 남자들의 세계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혈연관계도 무색케 할 만큼 독립적이고 자립적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아버지는 점점 더 성장해 가면서 자신을 치고 올라오는 아들을 경계하게 되고, 아들은 언제나 자기보다 한 걸음 앞서가는 아버지를 뒤쫓으면서 무시당하는 굴욕을 참다가 어느 순간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추었다 싶으면 드디어 때가 왔다 하는 심정으로 아버지에게 저항을 합니다. 다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그나마 아버지가 잘 다독여주면서 따뜻한 시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었으면 이 알력도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미움과 증오가 쌓일 대로 쌓이게 되면 결국 남보다도 못한 증오의 대상이 되어 둘 중 하나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게임에 돌입하게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얼마 전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왕의 얼굴]에서 선조와 광해군의 관계가 그렇고, [화정]에서 인조와 소현세자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송강호, 유아인 주연의 이준익 감독 영화 [사도]에서 비극적인 운명의 아버지와 아들로 만나 서로를 삼킬 듯한 증오심을 뿜어내는 영조와 사도세자가 또한 그렇습니다.

 

사도 아버지 영조(송강호)에게 죽어서도 홀대받은 사도세자(유아인)   

 

아들이 저지르고 다니는 잘못으로 인해 행여나 자신에게 누가 끼칠까봐 전전긍긍하던 영조는 그 아들이 사라져야만 자신의 어좌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들에게 자결하라고 명령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영조 같은 아버지 밑에서라면 어떤 아들도 미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을 만큼 가혹한 삶을 살아야 했던 사도세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미움이 극에 달했다 할지라도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게 하고, 마침내 숨을 거두자 개선가를 울리며 환궁하는 비정함의 끝판왕인 영조 같은 아버지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영조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터입니다. 하지만 부모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에 들어야만 인정해 주는 조건적인 사랑의 결과는 늘 그렇듯이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파멸을 부릅니다. 영화는 사도세자의 시선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따라가기 때문인 듯 사도세자가 광인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줍니다. 그리고 역사에 미치광이 세자로 기록된 사도세자가 미친 게 아니라, 기어이 아들이 죽는 꼴을 봐야만 두 발 뻗고 살겠다는 듯이 몽니를 부리는 영조야말로 미쳐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폐세자시켰던 아들이 죽은 후 다시 세자로 복위시키고,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思)>, 슬퍼하며 생각한다는 의미의 사도(思悼)라는 시호(諡號)를 주었다 한들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오히려 왕이 될 운명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했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만 했던 왕관의 무게가 그에게 얼마나 큰 짐으로 다가왔을까 안타깝기도 했구요.      

 

 

영화 [사도]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줄거리에 따르면, 재위기간 내내 왕위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라지만, 기대와 달리 자꾸 어긋나는 세자에게 실망을 합니다. 어린시절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기쁨이 된 아들. 그 아들을 위해 책까지 만들어주던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닌 사도는 영조의 바람대로 완벽한 세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됩니다.

 

 

조선 최초의 궁중광대 이야기를 다룬 [왕의 남자]로 천만관객을 동원했던 이준익 감독과 영조 역을 맡은 송강호, 사도세자 유아인, 혜경궁 홍씨 문근영, 사도세자의 어머니 전혜진, 대왕대비 김해숙 등 총동원된 일급배우들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시종일관 무게감 있게 풀어내어 마치 새로운 사건을 보듯 진지함을 잃지 않고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약 250년 전 조선왕조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임오화변’에 대해 그 어떤 비극보다도 더 참혹한 실화”라며 ‘사도’ 이야기를 재조명한 이준익 감독은 ‘영조’와 ‘사도’, 그리고 ‘정조’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인과관계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특히 남다른 총명함으로 영조를 기쁘게 한 사도의 어린시절부터 서로의 진심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대리청정과 두 사람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양위파동’,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가족들의 엇갈린 이해관계를 밀도있게 보여줌으로써 극적인 긴장감과 감성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 의도를 전혀 모자람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이준익 감독과 처음 작품을 함께 하게 된 송강호는 “[사도]의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실재했던 비극이지만, 이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더해져 새롭게 재탄생했다”고 말했으며, 유아인은 “이준익 감독은 배우의 눈높이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배려심과 칼날같이 매서운 통찰력을 지닌 분이어서 신뢰를 바탕으로 온전히 촬영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온몸을 던져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송강호, 유아인 등 배우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다음 글은 작가  임채영의 [조선의 추악한 배신자들]과 서울대 국문과 교수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을 참조해서 좀더 자세히 정리한 사도 아버지 영조의 희생양..살아서도 죽어서도 홀대받은 사도세자입니다. 사도세자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비행을 일삼던 광인으로 기록된 비운의 사도세자

 

 

사도세자는 어려서부터 특별한 관심과 애정 속에서 성장했다. 특히 정성왕후 서씨의 총애가 컸다. 사도세자보다 훨씬 나이가 어렸던 정순왕후 김씨와 훨씬 나이가 많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와는 처음부터 사이가 좋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나이 차가 나는 어른을 모시기란 세자 내외로서도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사도세자는 대리청정을 하면서 소론에 동정적이었다. 하지만 소론은 영조의 즉위를 끝까지 반대한 집단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노론 세상이었다. 사도세자는 무난히 대리청정을 하면서도 정치적인 선택에서 당대의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과 척을 지는 우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도세자가 그대로 왕위를 계승할 경우 소론의 득세는 불보듯 뻔했다. 따라서 노론 입장에서 사도세자는 절대로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한 지 4년이 되어가던 무렵 모든 노론은 사도세자의 행적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문제는 어떻게 사도세자를 제거하느냐에 있었다.

 


이때 전면에 등장한 것이 경주김씨 일가였다. 노록벽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던 경주김씨는 풍산홍씨 집안과 함께 사도세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앞장섰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였다. 정순왕후는 영조가 침소에 들 때마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에 대해 있지도 않은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이간질했다. 처음에는 사도세자의 올곧은 충정을 믿던 영조도 자꾸 같은 말을 듣다 보니 사조세자를 의심하게 되었다.


사도세자 제거에는 정순왕후 김씨만 동원된 것이 아니었다. 숙의 문씨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사도세자를 모함했고, 여기에 화완옹주까지 나서서 사도세자를 모함했다. 이들은 모두 친정이나 시댁이 노론벽파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물며 혜경궁 홍씨의 부친, 사도세자에게는 장인이 되는 풍산홍씨 홍봉한까지 나서서 사도세자를 공격해 대니 사도세자로서는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이미 노인이 되어 새로운 계비를 얻은 영조는 정순왕후의 침소를 찾는 일이 많았다. 정순왕후는 그때마다 이른바 베갯머리송사를 했고, 그렇지 않아도 소론에 우호적인 세자의 행적이 못마땅하던 영조는 정순왕후의 거듭되는 간언에 마음을 흔들었다. 사도세자 폐위 작전은 완벽하게 진행되었고, 영조는 쌓이고 쌓인 분노를 터뜨리며 마침내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말았다.

 

 

 왜 하필 뒤주인가?

 

사도세자 사건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것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였다는 점에서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도대체 왜 이런 가혹한 방법을 썼을까? 휘령전에 온 영조는 세자의 죄상을 밝힌 후 자결을 요구했다. 그래도 '작은 임금'이라 일반 죄수처런 처형할 수는 없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것이었다. 세자는 한동안 변명을 하기도 하고 죽지 못하겠다면 저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영조의 굳은 뜻을 꺾지는 못했다. 

 

마침내 세자는 칼을 받아들고 목숨을 끊으려 고 했다. 그러나 호위군사를 뚫고 온 신하들이 칼을 빼앗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세자는 이번에는 옷을 찢어 목을 매려고 했지만 이 역시 곁에 있던 신하들이 묶은 것을 풀어 실패했다. 돌계단에 머리를 찧어 죽으려고도 했지만 죽을 수 없었고, 영조 역시 죽이려고 해도 죽일 길이 없었다. 누구도 감히 세자 몸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사도세자는 어쨌거나 명목상으로는 국정을 대리하는 조선 최고의 권력자였다. 비록 반역죄로 처벌받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더욱이 그의 아들(정조)은 이미 다음다음 왕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만큼 세자에 대한 충성심이 어떻든 신하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세자의 자결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뒤주 아이디어는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어영청의 뒤주가 오자 영조는 세자에게 그 안에 들어가라고 했다. 처음엔 들어가지 않겠다고 저항했지만 영조가 계속 강요하자 더 버틸 수가 없었다. 스스로 몸을 던져 뒤주로 들어가는 세자를 말릴 신하는 아무도 없었다. 뒤주에 들어간 세자는 밤이 깊어지자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뚱뚱한 체구에 원래부터 더위를 많이 탔던 터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자는 급기야 뒤주판을 차고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밖으로 나온 세자는 궁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나왔으니 안절부절 못한 것이다. 한편 세자가 뒤주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영조는 다시 세자를 잡아 뒤주에 들게 했다. 그리고 다시는 판을 깨고 나오지 못하도록 두꺼운 널판을 덧대어 큰 못을 치고 뒤주를 동앗줄로 꽁꽁 묶은 다음 승문원으로 옮겼다. 마침내 뒤주는 세자의 관이 되어버렸다.

 

 

 죽어서도 홀대받은 사도세자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해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제기되는 '놀라운 사실'은 영조가 아들을 죽일 뜻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조는 그저 가볍게 벌이나 주려고 세자를 뒤주에 가두었는데 세자가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세자가 죽었다는 보고를 들은 영조는 몹시 슬퍼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러나 영조는 휘령전에 있던 뒤주를 꽁꽁 봉해서 승문원으로 옮겨놓고 백 명 남짓의 군사들에게 지키게 했다. 그러고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자신의 처소인 경희궁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매일 뒤주를 감시하게 했다. 그러다가 19일 세자가 거의 죽음에 이른 시점에서야 환궁을 했다. 혜경궁은 사도세자가 20일에 죽었다고 보는데, 죽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21일(1762년 7월 12일. 음력 윤 5월 21일)에야 뒤주를 열었다고 한다. 어쩌면 세자는 19일에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즉 영조는 세자가 죽음에 다다른 것을 보고서야 자기 처소로 돌아간 것이다. 이런 전후사정을 볼때 영조가 세자를 죽일 뜻이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 쓴 [이재난고(頤齋亂藁)] 등에 의하면 영조는 환궁하면서 개선가를 연주하게 했다고 한다. 자식을 죽여놓고는 마치 적국을 평정한 것처럼 승전가를 연주하게 한 것이다. 신하들이 극구 말리는데도 영조는 듣지 않았다.

 

 

사도세자를 향한 영조의 분노는 사후의 상례(喪禮)과정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사도세자의 발상이 있었던 21일 영조는 폐서자한 사도세자를 다시 세자의 지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빈소를 세자시강원으로 하게 했다. 세자 대접을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상례과정에서는 제대로 된 대접을 해주지 않았다. 신하들에게 상복으로 옥색 천담복 (淺淡服)을 입게 했을 뿐 아니라 상복을 입는 달수도 크게 줄였다. 옥색 천담복은 3년상 후에 입는 옷으로 특별히 상복이라고 할 수 없는 옷이다. 십수년 대리청정을 한 세자의 상례에 신하들에게 그런 상복 같지 않은 상복을 입게 한 것이다.

 

더욱이 발인하는 날 어린 정조가 대궐 문 밖에서 아버지를 영결하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못하게 했다. 죄인인 아버지와 정조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시키려고 한 것이다. 영조의 가혹한 처사에 대해서는 영조실록에서 사관조차 그 부당함을 지적할 정도다. 기왕 복위를 시켰으면 상례도 지위에 맞게 해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조의 조치에 아무런 간언도 올리지 않은 대신들도 비판했다.

 

영조는 생전의 세자에게 그랫듯이 사후의 세자에게도 가혹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자식을 죽인 자신의 판단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소문에서는 후회가 언급되는 것은, 세자를 죽인 데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할지라도 죽음의 책임에서는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적어도 군주로서 신하들 앞에서는 아비로서 괴로운 척, 불편한 척, 안타까운 척이라도 해야 했을 터이니 말이다.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영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소지섭)다. 정조는 열한살 때 죄인이 되어 아버지께 비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졸지에 대역죄인의 아들이 된 그 날의 충격과 공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정조는 등극 초기에 대대적인 숙청을 벌인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이 개입했던 죽은 권신 김상로와 홍계희에게서는 그 명예와 지위를 빼앗았고, 영조의 총애를 받은 후궁 문녀 등에게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책임을 물었으며, 정순왕후의 오빠 김귀주는 오만방자에게 행동했다 하여 흑산도로 유배를 보냈고, 외가의 작은할아버지 홍인환과 화완옹주의 양자 정후겸은 등극을 저해했다고 해서 사사했다. 그리고 홍계희 후손 등이 주축이 된 역모사건을 적발하면셔 영조 때의 권세가를 완전히 재기불능읠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정조는 즉위 1년 만에 종전의 기듣득층을 모두 무너뜨리고 홍국영 등 동궁의 궁료를 중심으로 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르는 역사가 어김없이 되풀이된 것이다.

 

이상, 사도 아버지 영조(송강호)에게 죽어서도 홀대받은 사도세자(유아인)였습니다. 흥미롭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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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질리언 2015.09.17 08:53 신고

    여러번 다뤄지지만, 언제나 흥미있는 소재이네요.`
    안타까운 역사이지만 볼때마다 새롭네요~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08 신고

      네, 연출하는 사람에 따라
      새롭게 해석이 가능하니
      볼 때마다 새로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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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델 ♥ 2015.09.17 09:32 신고

    역사속 실제했던 비극에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더해져서 새롭게 재탄생된 영화라니~
    시간을 내서 이영화를 보러가야겠습니다.^^
    사실 유아인이 나와서 보려고 했던 영화이기도 합니다.ㅎㅎ
    그리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홀대받은 사도세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네요.ㅠㅠ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12 신고

      출연진들이 모두 열연을 해주었습니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요.
      다만 영조도 그렇고 분장이 좀 과한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끔무렵에 문근영이 맡은 혜경궁 홍씨의 분장이
      좀 과해서 놀랐지요.
      더 말을 하면 스포가 될 테니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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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기한별 2015.09.17 10:50 신고

    송강호가 사극연기하는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현대연기만 봐서...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13 신고

      네, 사극을 연기하는 송강호도 멋지네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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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녁노을* 2015.09.17 11:00 신고

    기대되네요.
    잘 보고가요^^

    답글 수정

  • 메리. 2015.09.17 11:06 신고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늘 단골소재죠
    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라 그런가봐요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15 신고

      네,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보았는데도
      이번에도 역시나 충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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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쌤』 2015.09.17 11:40 신고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가만히 글을 읽고있으니
    화면이 눈 앞에 보이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죠,,
    불과 250년 전에 바로 이땅에서 일어난,,
    송강호씨와 유아인씨가 연기하는 영조와 사도의 모습도 내심 궁금합니다^^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18 신고

      실록에 따른 역사적 사실도
      후대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미화된 부분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뭐가 사실이고 진실인지 모르겠는 일들도 많으니까요.
      이번 영화에서는 사도세자가 너무 안타깝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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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다시보기 2015.09.17 11:43

    으..근데 보고온 친구들 말로는 루즈하다고 하긴 하는데
    걱정도 되면서도 송강호 유아인 기대도 되고 ㅋㅋ
    궁금하네요 얼른 보고싶어요!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19 신고

      전 몰입해서 보았는데
      루즈하게 느끼신 분들도 계시는군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금방 일어서고 싶지가 않더라구요.
      사조세자에 대한 가슴 먹먹함이 가라앉질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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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耽讀 2015.09.17 12:29 신고

    갈수록 우리 영화 수준이 높아집니다.
    요즘 거의 외화는 보지 않습니다. 사도도 보고 싶네요.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22 신고

      네, 보러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왕을 둘러싼 중신들 때문에 나라꼴이 엉망이 되는 것이
      지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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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mi 2015.09.17 15:14

    영조 자신의 열등감이
    아픈 패착으로 내 몰렸는지도 모르겠네요
    내리사랑일진데 마음이 아픈 역사죠~
    송강호와 유아인 이라서 이준익 감독이 다시 한 번
    1000만을 넘을지 기대해 봅니다 ~
    봉리브로
    잘보고 갑니다 m(_ _)m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25 신고

      콤플렉스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영조가 사도세자가 하는 패악을 보면서
      부모만이 할 수 있는 갑질을 자식에게 하는구나 싶기도 했구요..^^
      순조로운 시작인 듯하니 천만도 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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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로끙이 2015.09.17 15:37 신고

    예고편이 많이 나오길래 예전에 개봉한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
    저는 송강호씨 나온다고하니 보고싶더라구요 ^^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28 신고

      송강호씨도 유아인씨도 아주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해주셨습니다.
      여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구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수정

  • 뽀시기 2015.09.17 16:37

    참으로 슬픈역사이지요 ...
    영조도 어쩔수 없었을것이고 ...
    헌데 사도세자에 대한 기록들은 ...
    다양하게 나와있다고 하더군요 ...
    정말 인품도 .. 머리도 비상한 .. 그런 기록도 ...
    어쨋든 ... 말씀하신것 처럼 ...
    왕관의 무게가 .. 참이나 무거운듯 합니다 ...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30 신고

      이 영화를 보면서는 사도세자가 너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왕가에서 태어난 것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었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저런 삶이라면, 그리고 선택이 가능하다면
      절대로 택하고 싶지 않았을 그런 삶 같더라구요.
      결국은 누구할 것 없이 자기 삶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것도 느꼈구요.

      여유롭고 편안한 밤 보내세요^^

      수정

  • pennpenn 2015.09.17 18:58 신고

    이 영화가 개봉되면 아마도 대박일 것 같습니다.
    사도세자는 정말 똑똑했는데
    때를 잘못만나 비운에 간 것 같아요.
    창경궁에 가면 사도세자의 비극적 현장이 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답글 수정

    • 봉리브르 2015.09.17 21:32 신고

      시작이 순조로우니 대박을 치긴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영조처럼 저렇게 아들을 몰아세우면
      바보가 되거나 미쳐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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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프란 2015.09.17 23:19 신고

    믿고 보는 영화배우 송강호씨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오네요. ^^

    영,정조 시대, 사도세자의 죽음 등의
    역사적 사실과 영화와의 매칭도 재미있을 듯 싶습니다.
    주말에 시간이 나면 간만에 영화 보러 가야 겠네요.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봉리브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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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 2015.09.17 23:40

    뒤주속에 갇혀서 죽은 비운의 사도세자
    상세한 설명과 함께 감상 잘 하고 있습니다..
    봉리브르님,건강속에서
    편안하신 숙면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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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리양네Enid 2015.09.19 03:07 신고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는, 어렸을 적에 '하늘아 하늘아'라는 대하 드라마를 계기로 처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번에 개봉하는 '사도'는 그 이야기를 어찌 다뤘을지 궁금하네요. 봉리브르님의 블로그에서 살짝 맛보고 갑니다. 영화 꼭 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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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2015.09.19 15:02

    천만 가기에는 아쉬운 영화입니다........................

    다른 관객 반응도 다르지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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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5.09.25 10:06

    사도세자에게 죽임을 당한 100명의 무고한 사람들에게도 연민을 가져봐야죠.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으면 죽어갔을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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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5.09.25 10:07

    세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연쇄살인마를 동정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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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순주 2015.09.28 08:16 신고

    여기 포스팅이 있었네요. 영화를 보고 글을 읽으니 더욱 흥미롭군요. 사관에 따라 역사의 해석이 다르지만 전 이준익 감독에 한표. . . .
    재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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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5.11.04 14:38 신고

    영화 보고 마음 아파서 관련 기록을 읽어봤는데... 영조는 아들이 특출난데다가, 자기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성격 파탄 아버지로 보입니다... 사도세자가 통치자 그릇이 아니었단 의견도 있는데, 전 오히려 너무 일찍부터 잘나서 아비의 두려움을 자극했고 그게 학대로 이어졌다는 생각이예요. ㅠ.ㅠ 그래서 리뷰 첫부분 특히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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