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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마츠코의 불행을 방치한 죗값은 얼마일까?

 

뉴욕 라과디아 공항은 뉴욕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한

라과디아 시장의 이름을 딴 공항이다.

그는 시장이 되기 전 법원에서 판사로 있을 때

명판결을 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빵 한덩이를 훔친 죄로 한 노인이 붙잡혀왔는데,

라과디아 판사는 그 노인이 빵을 훔친 것이 처음인 것을 알고

그 이유를 묻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동안 열심히 착하게 살아왔지만 이제 나이가 들자 일자리도 구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돈이 다 떨어져 사흘을 굶으니 배고픔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만 빵을 훔쳤습니다.”

 

그러자 라과디아 판사는 이런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는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노인이 빵을 훔친 것은 이분 잘못만은 아닙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분이 굶주림을 못 이겨 빵을 훔쳐야만 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방치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는 10달러의 벌금형을, 그리고 이 법정에 있는

시민 모두에게는 각각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렇게 거둬진 돈은 57달러 50센트였고, 노인은 그 돈을 받아 10달러는 벌금으로 내고

남은 47달러 50센트를 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법정을 나갔다고 한다. 

 

빵을 훔친 죄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했던 <레미제라블>의 장발장도

라과디아 판사 같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영화「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나오는 마츠코 곁에도 라과디아 판사 같은
가족과 이웃이 있었더라면, 혐오스런 일생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마츠코의 불행을 외면하고 방치한 가족과 이웃은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내야만 했을 것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2007)

Memories of Matsuko 
8.6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출연
나카타니 미키, 에이타, 이세야 유스케, 카가와 테루유키, 이치카와 미카코
정보
코미디, 드라마 | 일본 | 129 분 | 200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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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예쁘고 곱던 마츠코는 그 후 끝도 없이 덮쳐오는 불행 속에서도 아주 조그만 행복이나마

캐내고 싶어 마음속으로는 “그것으로 인생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라고 절망에 찬 외침을

발하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 일어나고 또 일어난다.

몸이 약한 아픈 동생만을 사랑하는 아버지에게서 자기도 사랑받고 싶고, 또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열심히 공부한 그녀는 교사가 되지만,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떠나 묵게 된 여관에서

돈을 훔치고, 남편이 기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자 남편의 유부남 친구와 살림을 차리고,

마시지숍에서 매춘을 하고, 돈을 떼어먹으려는 기둥서방을 칼로 찔러 죽이고,

감옥에서 나온 후에는 야쿠자의 여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서 본 그녀의 삶일 뿐,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속사정이 있었다.

수학여행에서 절도범으로 몰린 것은 실제로 돈을 훔친 제자를 감싸려는 것이었고
작가였던 동거남은 모든 불만불평을 툭하면 그녀를 때리는 것으로 발산하다가
어느 날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기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것이고,

아내가 있으면서도 그녀와 살림을 차린 남편의 친구는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동거남에게 가졌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그녀를 이용한 것이었다.

 

결국 혼자 남게 된 그녀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마사지숍에서 일하게 되고,

기둥서방을 죽인 것은 트라우마로 남은 옛상처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칼로 찌른 것이었다.
너무나 외롭고 힘들 때 과거에 자신이 대신 절도범의 누명을 썼던 제자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그가 야쿠자였다. 살인을 저지른 야쿠자 애인은 출소 후 그녀를 버린다. 

 

 

결국 어마어마한 바윗덩이 같은 불행의 무게에 짓눌린 그녀는 자기혐오에 빠져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밥벌레같이 살아간다. 그리고 40대 중반에는

아이돌 남자그룹을 쫓아다니다가 정신병까지 생기고, 마침내 53세에 한밤중에

동네 불량 중학생들에게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는다고 참견하다가 야구방망이에 맞아 죽는다.

 

이렇듯 불행에 허덕이고 있는 그녀에게 가족은 힘이 되어주기는커녕 매정하게 인연을

끊자고 한다. 절망에 빠져 살아가다 보니 그녀는 점점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무관심한

이기적이고 지저분한 여자로 변해가고, 아직 중년인 그녀를 사람들은 미친 노파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죽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늦게까지

집에 안 가는 불량 중학생들에게 일찍 집에 일찍 가라고 충고를 했는데,

그것이 그만 죽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뚱뚱한 몸에 넝마 같은 옷을 입고 한쪽 다리를 절며 걷는

마츠코의 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비애가 느껴졌다.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 얼굴은 봄날의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가도, 또 다른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지면 거의 노파의 얼굴로

변해가던 그 모습에서 불행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에 탔던 택시의 기사분은 택시를 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지리를 잘 모르니

자세한 부분은 좀 알려달라고 하면서 얼마 전까지 노숙자로 살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직장에서 해고된 후 여러 차례 장사를 벌였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잔뜩 졌고,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집을 나와 노숙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처음엔 자존심도 몹시 상하고, 누가 알세라 얼굴이 화끈거리는 수치심에 미칠 것 같았지만,

그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지니 아주 편해지더라고 했다.
그렇게 2년여를 보냈는데, 어느 날 문득 조금만 더 그러고 살다가는 영영 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악물고 청산하기로 마음먹었고,

가까스로 헤어나와 택시 기사를 하게 된 지 몇 달쯤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집을 나갔어도 단 한 번 연락을 해온 적이 없는 가족들이기에 
자기도 지금 가족을 찾지 않고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남이야 당사자가 아니니 그 속사정은 알 도리가 없고, 그 가족들에게도

집나간 가장을 더 이상 찾지 않을 수밖에 없는 연유가 있으려니 싶기도 했지만,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가족인데 싶은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이 혐오스럽게 여기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타고난 게으름으로 빈둥거리면서 어디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묘책이라도 없나 하며 주변사람들까지 살 맛 안 나게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그게 안 되니 별수없이 내리막길을 짚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포자기하게 되고, 또 그렇게 살다 보니 인간으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존엄성도 잃고 끝내는 수치심까지 내다버린 채 살아가게 된 것일 터였다.

 

그런 불행 속에서도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거나 가족이든 친지든 비빌 언덕이 있다면

그 고비를 의연히 넘기도 하겠지만,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 따뜻하게 붙잡아주는

손길은커녕 오히려 기피인물 취급을 받게 된다면 벼랑끝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별다른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상황은 도외시한 채

“왜 그러고 사냐”고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가기까지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는

인디언 격언에도 아마 그런 의미가 내포돼 있을 듯하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마츠코가 말하고 싶고, 또 바랐던 것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신들이 보기에 난 그저 혐오스런 인간으로 여겨질지 몰라도
내겐 이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된 아픈 사연이 있었답니다.
누구든 내가 불행 속에서 허덕일 때 나를 좀더 진정한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내가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따뜻한 마음으로 살펴주었더라면

이렇게 혐오스럽기만 한 인생으로 끝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라는 것.
 
유홍준님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이 새삼 아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