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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미스틱 리버와 공포의 트라우마 극복하는 법 4가지

 

스틱 리버와 공포의 트라우마 극복하는 법 4가지

 

 

책이나 영화를 다시 읽거나 보게 되면 당시에는 미처 못 보고 놓쳤던 장면도 보게 되고, 그때 흥미를 끌었거나 생각에 잠기게 했던 문제나 주제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매번 볼 때마다 새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빠삐용]이 특히 그렇고, 얼마 전에 다시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미스틱 리버]도 그런 영화 중 하나입니다.

 

 

미스틱 리버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어린시절 같은 동네 친구였던 지미(숀 펜)와 데이브(팀 로빈스), 숀(케빈 베이컨)은 뜻하지 않은 일로 운명이 바뀌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하키를 하며 놀다가 아직 마르지 않은 시멘트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고 있던 이 세 소년에게 경찰 배지를 단 남자가 다가와 야단을 치더니, 그 중 한 명인 데이브를 차에 태워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간 데이브는 성폭행을 당하다가 며칠 만에 필사의 탈출을 감행해 간신히 그 손아귀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끔찍한 일을 겪은 데이브도 그렇고, 단짝친구가 혼자 끌려가 그런 험한 꼴을 당했는데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다른 두 소년도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25년 뒤, 문제아로 성장하면서 정착을 못하던 지미는 사랑하는 딸 케이티 덕분에 어엿한 가장으로 자리잡고, 데이브는 지미의 처제와 결혼해 이웃에 살고, 숀은 형사가 되어 동네를 떠난 후 그럭저럭 평화로운 일상을 보냅니다. 그런데 지미의 딸 케이티가 살해되고 사건을 맡은 숀이 돌아오게 되면서 세 친구는 달갑지 않은 만남을 갖는데, 지미는 데이브가 딸 케이티를 죽였다고 오해하고 그를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미스틱 리버에 수장시킵니다.  

데이브의 아내 셀레스트(마샤 게이 하든)

 

이 영화를 전에 보았을 때는 평생 지울 길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되는 불행을 보여주고, 마음속에 독버섯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던 그 상처가 급기야 살인을 저지르게 하고 또 친구를 의심하고 살해하는 범죄에 이른 수사과정을 밟아나가는 스릴러물로 여겼었습니다. 물론 마음의 상처, 그 중에서도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던 가공할 공포의 트라우마와 친구를 구할 수 없었기에 본의 아니게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배신의 트라우마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시켜 나가는지도 가슴아프게 보았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영화를 보면서 주목하게 된 것은 주인공으로 나오는 세 남자가 아닌 그들의 아내들이었습니다. 직접 사고를 겪은 데이브만이 아니라 그날 함께 놀다가 데이브가 자동차에 태워져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지미와 숀도 마음의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이 세 사람의 아내들이 보여주는 대처법은 저마다 달랐던 것입니다. 

 

먼저 데이브의 아내 셀레스트(마샤 게이 하든)는 남편이 지미의 딸 케이트를 죽이지 않았는데도 남편의 말을 믿지 못해 지미에게 남편이 의심스럽다고 밀고를 합니다. 숀의 아내는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 사는 남편 숀 곁을 떠난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런가 하면 지미의 아내 아나베스(로라 린니)는 남편이 딸을 죽인 살인자로 오해해서 데이브를 죽였는데도 아빠로서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남편에게 용기있는 행동을 해주어서 고맙다고 따뜻하게 위로하면서 괴로워하는 남편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돕습니다. 

숀의 아내 아나베스(로라 린니)

 

그런 의미에서라면 세 남자의 아내 중 지미의 아내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아내가 더 좋은 아내인가를 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살인이라는 대범죄를 저질렀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여유자적하게 일상을 즐기는 지미의 가족을 옹호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가정에서조차 불신이 팽배한 오늘날, 죽음에 이를 만큼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곁에서 따뜻하게 다독여주고,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가족이고 아내라면 아무리 엄청난 불행의 나락에 빠진 남편이라도 다시금 용기를 내어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 것이니까요. 남들이 차가운 눈길로 비난의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가정이라는, 가족이라는 마지막 보루가 건재하는 한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데이브(팀 로빈스)

 

미스틱 리버의 주제 중 하나인 공포의 트라우마를 보면서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의 [트라우마 테라피]공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법 4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자도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가장 힘이 되어주어야 할 사람은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보다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 훨씬 빨리 회복될 수 있으며, 어렸을 때부터 안정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충격에서 빨리 회복되지만 가정폭력에 의한 위험에 반복적으로 시달리며 자란 경우는 똑같은 공포라도 그 충격이 심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또 실직상태나 사업이 어려울 때 공포를 경험하게 되면 불안의 트라우마가 겹치면서 공포의 상처가 더 심하고 오래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지미(숀 펜)

 

 공포의 트라우마

 

죽은 뻔한 일을 직접 당하거나 목격하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공포 경험이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사고를 당한 것은 아니더라도 끔찍한 상황을 보거나 현장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두려움, 우울함, 불안감이 생기는데,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거나 범죄의 대상이 되어 처절하게 상처입은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다. 이렇듯 남이 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공감능력 때문이다. 그러한 공감능력이 있기에 영화에서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게 되면 보는 사람들도 마음을 졸이게 되며, 이러한 공감능력이 자신이 직접 당하는 것에 준하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이렇듯 공포에 의해 일련의 증상이 발생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syndrome: PTSD)라고 하는데, 흔히 다음 세 가지 증상이 동반된다.

 

첫째 공포스러운 상황이 계속 떠오른다

건물이 무너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이 자꾸 그 상황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중앙선을 침범한 차를 피하다가 차가 전복된 후 깨진 유리창에서 기어나온 사람도 그 순간이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공포상황과 관련된 꿈도 계속 꾸게 된다. 밀폐된 공간에서 강간을 당한 여성은 설혹 가족이라도 남자와 단둘이 있으며 그때 상황이 떠오르고 불안해지며, 고문을 당한 사람은 고문자와 비슷한 톤의 목소리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진다. 지하철 화재에서 생존한 사람은 지하철만 타면 그때 생각이 나고 탈출구가 어디인지 살피게 된다.

 

둘째 공포상황과 관련된 자극을 피하게 된다

세상이 회색으로 바뀐 듯 멍하고 좋은 일에 대해서건 나쁜 일에 대해서건 감정반응이 예전 같지 않으며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하다. 사고와 연관되는 얘기도 꺼내기 싫고 생각도 하기 싫다. 상처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행동, 장소, 사람들을 피한다. 전쟁으로 따지면 죽을  위기를 넘긴 군인이 다시는 전쟁에 나서고 싶지 않은 것과 같다. 공포의 충격이 심한 경우 직장생활, 학교생활, 부부생활 등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 만나기를 꺼려하고 혼자만 있으려고 하며 감정도 황폐해진다.  

 

셋째 사소한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민감하게 된다

잠들기가 힘들고 막상 잠이 들어도 자주 깬다.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집중하기도 힘들다. 주위를 경계하고 조금만 자극이 있어도 깜짝깜짝 놀라고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조금 마음이 안정되는 듯싶다가도 한밤중에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리거나 아파트 위층에서 쿵하는 소리만 들려도 다시 깜짝깜짝 놀란다. 일단 놀라게 되면 공포상황이 떠오르면서 긴장이 더해지고, 그렇게 한번 온몸의 아드레날린이 모두 동원되고 나면 맥이 탈 풀리면서 세상만사가 다 귀찮고 무덤덤해진다. 

 

이 세 종류의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고 한다. 공포를 경험하자마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6개월쯤 후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가까스로 견뎌가던 중 가정문제, 경제문제 같은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공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믿음, 사회에 대한 믿음, 자신에 대한 믿음,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숀(케빈 베이컨)

 

 공포의 트라우마 극복하는 법 4가지 

 

1  지나친 분노와 원망은 상처만 더욱 키운다

 

누구나 생각지도 못한 공포를 대면하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는 감정을 느끼는 것마저 사치다. 하지만 공포의 순간이 지나가면 공포의 순간에 쌓인 감정이 분출된다. 억울함, 슬픔, 절망 등도 중요한 감정이지만, 분노가 그 중 가장 강렬하다. 내가 피해자의 입장인 경우 가해자에 대한 원망을 가지게 된다. 때로는 그 분노의 화살이 자신을 겨냥하기도 한다. 분노에 사로잡혀 꼼짝도 하기 싫고 치료를 받는 것조차 거부한다.

 

물론 가해자를 원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감정이 끝없이 이어지는 경우는 자신을 병들게 할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흔히 사건, 사고, 재해 등에 휘말리게 되면 괴로운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 소방공무원 분들의 경우 끔찍한 사고현장이 자꾸만 떠올라 괴롭다는 분들이 있다. 삼풍아파트나 대구지하철 참사의 생존자들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은 누군가 그렇게 괴로운 기억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면 “이젠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잊어버려”라고 말하곤 한다. 끔찍한 장면을 자꾸 생각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특징 중 하나다.

 

2  억지로 기억을 지우려고 하지 마라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치료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끔찍한 경험을 온전히 떠올리고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사고 당시를 심상재현(心上再現) 하되 두려움, 공포, 당황 같은 연관된 감정은 약화시켜야 한다. 억지로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효과가 없다.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는 공포 상황에 대해서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얘기를 듣는 대상이 전적으로 그를 위로해주고 지지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감당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 한 번쯤 트라우마와 관련된 장소를 방문해서 회상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할리우드 범죄영화를 보게 되면 매일 악몽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범죄가 이루어졌던 장소에 가서 비로소 공포를 극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옆에 함께 하는 사람에게 당시의 무섭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하나하나 털어 놓는다. 함께 하는 이는 당사자가 공포를 견뎌낼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면서 회상을 돕는다. 이런 범죄영화에 나오는 기법들도 나름대로 심리학적 근거에 기초해 있다. 작가들이 정신과의사나 심리학자에게 자문을 요청해서 시나리오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3  뇌가 회복되기를 기다려라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경우 뇌에 물리적 충격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었다 겨우 살아난 극심한 공포상황은 물리적 충격에 준하는 정신적 충격을 뇌에 가한다. 뇌 안에서 인간의 기억과 감정은 신경전달물질의 흐름, 세포 내외의 전해질 이온 농도의 변화, 전류의 발생과 같은 물리적 현상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한 물리적 현상이 복잡하게 중첩되면서 마음이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도 뇌가 공포에 압도되어 있을 때는 마음먹은 대로 마음이 통제되지 않는다. 조급해한다고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음속에서 회복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할 때 그 신호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회복의 시기가 점점 뒤로 늦춰지게 된다. 물에 빠져 강물에 떠내려갈 때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려고 해도 소용없다. 일단은 흐름에 나를 맡겨야 한다. 즉 마음의 방향, 뇌의 방향, 정신의 방향을 거스르지는 말되 회복의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필요할 때 전문가와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4  연관된 마음의 상처를 해결하라

 

공포의 순간 마음의 집이 무너지게 되면 꼭꼭 숨겨놓았던 괴로운 감정과 기억이 표면 위로 다시 떠오르게 된다. 공포 자체를 잊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공포가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그 동안 숨겨놓았던 감정을 풀어놓는 것 역시 문제다. 괴로운 감정에 압도되면 공포의 순간이 계속 떠오르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미래가 없을 것만 같다. 더군다나 사고를 당해 학교나 직장에 나가지 못하면 공백이 생기게 된다. 장애라도 생기면 과거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없다.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하게 되면 점점 고립된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공포를 얘기하고,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 줄 사람도 주위에 없다.

 

따라서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태도, 불완전하나마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포 그 자체 뿐 아니라 연관된 괴로운 기억과 감정도 떠오를 때마다 미루지 않고 매순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나가야 한다.

 

이상, 미스틱 리버와 공포의 트라우마 극복하는 법 4가지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