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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으로 보는 세상

자기관찰-자기이해-자기변화..홍성남 신부 강론 중에서

 

자기관찰-자기이해-자기변화..홍성남 신부 강론 중에서

 

 

우리는 왜 살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가닿은 결론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첫째는 건강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둘째는 돈입니다. 강남에 빌딩을 몇 채씩 가지고 떵떵거리면서 사는 그런 경제력이 아니라 그저 아프면 병원으로 달려가고, 여름이면 남들 다 가는 휴가대열에 끼어 산으로 바다로 떠나고, 매일매일 지루하게 흘러가는 날들 속에서 마음이 내키면 몇 사람쯤의 점심값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척 낼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일을 통한 성취감입니다. 매슬로 욕구이론 중 4단계인 인정 및 존중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1단계 신체적 욕구, 2단계 안전 및 안정의 욕구, 3단계 애정의 욕구가 만족스러워도 삶에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넷째는 좋은 인간관계이고 다섯째는 정신적/영적 성장입니다. 대인관계가 좋아야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정신적/영적 성장은 매슬로의 욕구이론 중 5단계인 자아실현과 정신적 성장의 욕구를 말합니다.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원활하게 충족되고 나면 비로소 5단계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5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관찰이 필요하고 그 다음 자기이해가 필요하며, 이 두 단계를 잘 거치면 자기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러한 자기변화를 이룬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이웃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 포스팅은 가좌동 성당 주임신부이자 가톨릭 영성심리 상담소장인 홍성남 신부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입니다. 행복한 자기변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자기관찰-자기이해-자기변화..홍성남 신부 강론 중에서

 

욱하는 성질

 

욱하는 성질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당하면 생각할 여지도 없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당연히 결과가 좋지 않다. 그런데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욱하는 것은 현실과 자신에 대한 지각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근시안적인 감정과 기분에 좌우죄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했을 때 일어날 여러 가지 결과를 미리 생각해 보고 감정을 자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두번째는 불편함을 인내하는 훈련이다. 우리는 흔히 늘 웃고 사는 사람들은 삶이 편안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 누구의 인생에나 불편함이 있는 법이다. 불편한 것을 잘 견디는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에 편안해 보이는 것이고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부족한 것뿐이다. 즉 욱하는 심정으로 감정표현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불편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이런 불편함을 늘 삭히고 참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달래고 풀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감정대로만 한다면 생각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나 듣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신뢰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핍증후군

 

사람의 마음에는 끊임없이 욕구가 떠오른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욕구를 모두 채우고 사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욕구들은 채워져야 한다.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진 사람들은 자기정체성을 깨닫기가 수월하며 자기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안다. 즉 삶과 자연에 대하여 공동체적인 공감, 존중하는 마음, 관용적 태도를 갖는다.

 

반대로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이른바 결핍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 즉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져서 열등감에 시달리고 불신이 커지며 삶에 대해 무의미한 체험만을 되풀이하게 된다. 또 성향이 종속적이어서 자신을 통제해 줄 권위적인 사람을 찾는다. 자신의 욕구를 대신 충족시켜 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사상들을 탐색하면서 자기 생각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외적 가치나 경직된 이데올로기를 선택해 거기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즉 강요된 속박을 필요로 하는 노예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싸잡아서 비난을 하거나 철저하게 부패하는 것이다.

 

 

관계맺기

 

사람의 일생은 관계를 맺는 것으로 시작해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마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갈증을 채워주는 깊은 관계가 정기적으로 믿음직스럽게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심리적인 충족은 오직 의미있는 관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전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심리학자 E. 맨셀 패티슨(Memseii Pattison)은 정상적인 사람은 사회심리학적으로 의미있는 관계범위가 20명에서 30명 정도라고 한다. 신경증인 사람은 10명에서 12명 정도이고 정신증을 가진 사람은 4명에서 5명 정도라고 한다.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관계범위가 좁은 이유는 그들의 삶이 상호파괴적이고 엄격하며 억압적인 구조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관계 지지체계의 빈곤은 정서적인 영양실조를 초래하고, 정서적인 영양실조는 다시 성장감소라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어쨌든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의미있는 관계 안에서 생명력을 키워야 한다.

 

 

무기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집안에서 시간을 죽이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무기력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무기력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첫째 두려움이다.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것이다. 두번째는 미래에 대한 지나친 근심걱정이다. 미래에 확실한 비전을 갖지 못하고 미래를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으로만 인지하기 때문에 엉뚱한 공상만 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만 사는 삶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과민증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과민증은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즉 짜증이 많음을 의미한다. 짜증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이 되어 나중에는 분노로 터지고 만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있다 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을 갖는 것이 인생을 전환시키는 데 참으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감정 얼리기

 

얼음공주란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별명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도 웃지 않고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울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유치하다고 여기고 자기감정을 얼어붙게 하는데, 얼핏 초연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병적인 상태에 빠진다. 감정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자기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제거하는 것인데, 이것은 스스로를 엄청나게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무감각증에 빠져 자발성, 감수성, 잠재적 창조성을 말살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얼어붙은 마음을 풀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도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저녁놀을 보고 감탄하고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면서 삶의 움직임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게 된다.

 

 

 허술함


심리학자 에론슨에 의하면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보다 약간 빈틈이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완벽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또 완벽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완벽한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결점이 노출되기 때문에 경계심을 갖게 되고 마음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또 결점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왠지 위선적이고 인간미가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완벽한 사람들에 대해 친근감을 갖기가 어렵다.


반대로 빈틈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호감을 준다. 그 이유는 결점을 드러내는 사람은 진솔한 사람이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결점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는 것에 대한 역반응이다. 또 결점을 드러내는 사람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우월감을 가질 수가 있다. 그래서 유능한 사람이 실수를 하면 그 사람에게 친근감을 갖게 되고 경계심을 늦추며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자신과 조상들을 미화시키려는 분위기가 상당히 강하다. 체면 콤플렉스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존경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일들이 일어난다. 즉 자기미화를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피하거나, 가까이 오더라도 진심을 털어놓지 않고 숨기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드러내는 삶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상, 자기관찰-자기이해-자기변화..홍성남 신부 강론 중에서였습니다. 도움이 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