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해 써라..직장인 작가 조성기의 글쓰기
나를 향해 써라..직장인 작가 조성기의 글쓰기
직장인으로서 또 작가로서 두 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조성기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에 관한 포스팅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글을 쓴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로 여기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데 더 큰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검증하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참으로 건설적인 현상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쓰는 사회는 지금보다 더 깊이있는 세상이 될 것이며, 보다 많은 직장인들이 글을 쓴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늘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생활과 사회생활로 인해 도무지 엄두를 못 내고 망설이고만 있는 분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꿈과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를 향해 써라]가 출간된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간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보려는 많은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이 씌어진 과정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드리고자 한다.
나를 향해 써라..직장인 작가 조성기의 글쓰기
■ 두 개의 삶
나는 글을 쓴다. 지난 10년간 여섯 권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직장을 다니는 입장에서는 분에 넘치는 호칭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삶을 사는 사람을 일컬어 ‘작가’라고 부른다면 나도 작가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앞에 ‘직장인’이라는 단어를 붙여준다면 그 호칭이 좀더 겸연쩍지 않을 것이다.
실상 ‘직장인 작가’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다. 회사에 매여 있는 직장인의 신분으로써 남의 구속을 받지 않는 삶을 사는 ‘작가’가 되어 자신만의 세계를 누린다는 것은 호사스러운 모순이다. 그런데 그 모순을 이루는 두 단어를 조합해 보면 현재의 내 모습이 비쳐진다. 직장인으로서 나의 삶은 나의 개인적 삶과 단절된 것이 아니다. 나는 직장이라는 세계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나의 관점으로 '생각'해 보고, 나의 세계에서의 생각을 회사라는 세계에 적용해 보려고 애쓰면서 개인의 삶과 직장의 삶을 공존시킨다. 그 두 개의 삶은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며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시너지를 내며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정도는 충분히 봐줄 만한 모순이 아닌가?
물론 직장이라는 곳은 내 뜻대로만은 돌아가지 않는다. 매일매일 상사로부터 업무 스트레스를 받거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그에 비해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드는 시간만큼은 나 자신이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인 시간이다. 산다는 건 <좀 덜 나다운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좀 더 나다운 것>으로 이동해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글을 쓰는 시간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좀 더 나다운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직장인으로서도 꼭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회사에서도 사내 방송에서도 두어 번 소개가 되는 바람에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사람들은 부럽다 어쩧다 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인세는 좀 나오냐?”는 말들을 하지만, 내가 볼 때 지금 하는 모든 활동 중에서 지금 이 시점에 나를 존재하게 하는 활동 하나만을 남기라고 한다면, 그건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장인으로 글을 쓰는 것은 충분히 우리 모두에게 권해봄직한 가치가 있는 활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 왜 글을 쓰는가?
그런데 많고 많은 취미활동에서도 왜 하필 글을 쓰게 된 것이었을까? 글쓰기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는 것일까? 한 작가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왜 이 원시인은 밤하늘의 별을 고인돌로 옮겼을까? 어디서 태어났고 누구를 사랑했으며 무슨 일을 겪은 후에 제일 슬펐고 또 언제 가장 행복했을까.
다른 질문들은 선뜻 답하기 어렵지만, 마지막 질문엔 내가 그인 듯 속삭이곤 했다.
“밤하늘의 별들을 정확히 고인돌에 새길 때 저는 행복합니다.”
‘정확히’란 단어에 힘을 준다. 각 별의 크기는 물론이고 별과 별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이 고개를 치켜들었다가 숙였을까?"
(김탁환, 한국일보 칼럼)
고인돌에 별을 새기는 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기록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글을 쓰는 순간 역시 그런 순간이다. 삶의 행복도 이런 것인지 모른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일일지 몰라도 자신만의 성실함으로 그대로 해나갈 때 행복에 잠길 수 있다.
글을 쓰는 순간 동안 나를 둘러싼 세상은 변화된다. 그 시간은 세상이 인식의 객체라는 위치에서 사유라는 주체의 세계 안으로 흡입되어 오는 시간이다. 마치 초능력자가 나오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초능력을 쓰는 순간 주인공의 주변에 돌풍이 불어닥치며 세상이 소용돌이치게 되는 것처럼, 내 속에 있던 글쓰기의 힘이 무서운 기세로 내 몸을 감싸듯이 둘러싸고 나 자신을 확장시켜 나가 내 몸속을 뚫고 나와 아우라를 만들어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커져 나만의 우주를 만들어내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글을 쓰는 동안 커졌던 세계가 설령 글쓰기를 마친 후 다시 원래의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글을 써나가면서 느꼈던 생각들은 글을 쓰지않고 있는 동안에도 내 속에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친구 중에는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며 스노보드를 즐기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스노보드를 타는 순간의 짜릿함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글을 쓰면서 생각의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활강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글쓰기에는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책 속에서 읽은 한 문장이나 한 단락의 짧은 글은 종종 근사한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데, 나도 그런 멋진 글을 써보고 싶은 욕망을 잠재울 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세상에 표현하고 싶어하는 본능 말이다. 그 이름은 작가 본능이 아닐까? 조정래 작가가 <황홀한 글감옥>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던 것처럼 작가에게는 글을 쓰는 순간을 즐기는 본능이 있다. 말이나 그레이하운드와 같은 견종이 질주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글쓰기에는 본능적인 욕구가 뛰따르는 것이 분명했다.
■ ‘깨어 있다’는 의미
글은 전업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많은 글들이 비전업작가에 의해 씌어졌다.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는 사람을 직장인 작가라고 정의한다면, 수많은 작가가 직장인 작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직장인 작가들 중에서 단 한 명의 롤모델을 꼽으라고 한다면 카프카를 꼽아야 하겠는데, 누구보다 위대한 작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직장생활을 지속하는 가운데 작품활동을 해나갔기 때문이다. 그의 글 중 <밤에>라는 글에 있는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여기 있어야 한다'라는 문장은 나의 마음을 울렸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며 사색에 잡겨 완전히 밤에 빠져들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각자의 집에서 튼튼한 지붕 밑, 안온한 침대 매트리스 위 시트를 깔고 담요를 덮고 발을 편히 뻗거나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다는 것은 연극 놀음이고 순진한 자기기만일 뿐. 사실은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겠지만, 수많은 사람들, 군대, 백성들이 차가운 하늘 밑 한 때 그들이 서 있었던 차가운 대지 위 황야 벌판 캠프에서 이마를 조아리고 바닥에 엎드려 숨죽인 채 모여 있을 뿐이다.
그런데 네가 지키고 있구나,
파수꾼 중 하나인 네가,
옆에 놓인 장작 더미에서 활활 타는 장작을 꺼내 휘두르며 다른 파수꾼을 찾는다.
너는 왜 지키고 있는 거니?
누군가는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거기 있어야 한다.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이뤄져 있습니다'”라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어디 감히 카프카를 단지 직장인 작가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어 있다’는 것이야말로 전업작가든 아마추어 작가든을 떠나 우리 모두에게 글쓰기의 가치를 대변하는 단어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비전업작가에게는 비전업작가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경험이다. 작가에게 경험보다 소중한 것은 없는데, 경험이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쉽게 얻어지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우리는 사회에 나와 ‘직장’이라는 이름의 학교를 다니게 된다. 직장은 학교 중에서도 가장 좋은 직업학교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배우는 것은 전문지식과 경험뿐이 아니다. 직장에서는 조직문화도 배운다. 학교나 군대에서도 조직문화를 배우지만 회사는 가장 사회다운 조직문화를 가르쳐준다. 그래서 직장은 우리에게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전달하고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다.
■ 왜 ‘나를 향해 써라’인가?
‘나를 향해 써라’의 제목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은 ‘나’를 찾는다’는 의미가 담겨지는 이름이었다. 그만큼 ‘나’를 찾는다는 것은 글쓰기의 가장 큰 목적이자 본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을 바꾸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이기 세상을 발견하는 것만큼 크고 가치있는 일이 아닌가? 세상의 변화는 스티브 잡스와 같이 세상을 바꾼 인물들의 삶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국 한 개인의 자기 발견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나 큰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출판사와 함께 책의 제목을 ‘나를 향해 써라’라고 정했고 그에 맞는 예쁜 표지도 만들었다. 나는 표지에 그려진 책상 그림을 볼 때마다 내 방에서 지금 이순간에도 컴퓨터 자판을 치고 있는 작은 책상을 떠올린다. 그 책 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글쓰기 독립선언문이라도 되는 것같이 자못 진지하고 선언적인 문구 속에 이 책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글쓰기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설령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 Everybody Write! Everybody's Right
나는 가끔 노래를 만들곤 하는데 이 책을 완성한 후 이런 노래를 만들었다. 언젠가 독자와의 만남의 자리를 가지게 된다면 이 노래를 기타를 치며 불러보리라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지치고 힘들 때
아무도 곁에 없다 느낄 때
이 순간이 너무 외로워 견디기 힘들다 느낄 때
지금 네게 필요한 건 나를 돌아보는 시간
가만히 들어보네
마음의 창을 열고
Everybody write Everybody's right
마음 속의 얘기 모두 들려주오
Everybody write Everybody's right
오늘 밤 그 얘기 내게 들려주오
우리는 이 노래의 가사처럼 외롭고 답답한 순간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독자 여러분도 잠시나마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라며 [나를 향해 써라]에 관한 짧은 설명의 글을 마친다.
이상, 나를 향해 써라..직장인 작가 조성기의 글쓰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