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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달리 무의식을 통해 치유의 길을 찾다

 

달리 무의식을 통해 치유의 길을 찾다

 

달리 무의식을 통해 치유의 길을 찾다

 

독특한 시각과 상상력의 소유자인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기괴함과 대중성을 높이 사며 달리를 보통사람과는 다른 별난 사람, 혹은 천재로 받아들입니다. 또 괴짜 예술가, 오만한 천재, 괴팍한 광인 등 그 이름 앞에 언제나 다양한 수식어가 따르기도 합니다.

 

달리의 창작욕구의 근원적 힘은 어머니라는 원형에 대한 갈망과 이상화된 어머니상, 그 부분을 채워주는 아내 갈라의 절대성, 그 안에는 평범한 여성이 아닌 자신을 돌봐주고 신격화된 존재로서 갈라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거세공포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근원지로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훗날 갈등의 대상이 된 아버지가 있습니다. 또 자신은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이름을 물려받은, 죽은 형에 대한 미화와 콤플렉스로 인한 죽음의 본능과 동시에 삶에 대한 본능도 함께 합니다.

 

달리 무의식을 통해 치유의 길을 찾다..달리의 그림은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사실 달리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그는 어떤 생각으로 그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듭니다.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문의 꼬리를 물게 만들고, 환상적이고 파괴적이고 괴상하며, 때로는 너무나 노골적으로 에로틱해서 보는 내내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달리의 입장에서, 달리의 시선으로 다시금 그림을 바라본다면, 달리가 좀더 친숙한 인물로 다가올 것이며, 그의 그림들을 통해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심리학 명화 속으로 떠나는 따뜻한 마음여행]의 저자 김선현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김선현 교수님이 달리의 그림에 대해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잠깨기 직전 석류 주위를 한 마리 꿀벌이 날아서 생긴 꿈(Dream Caused by the Flight of a Bee)

 

                
한 여인이 허공에 뜬 채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긴 총끝에 달린 칼날은 여인의 팔을 찌르듯 시선을 자극하고 있고, 망망한 바다, 단애의 절벽, 표효하는 호랑이, 그 호랑이를 삼키고 있는 물고기, 그리고 잘 익은 석류, 그 주위를 날고 있는 한 마리의 꿀벌, 이러한 것들이 균형된 짜임새와 더불어 극적 율동감을 자극하고 있다. 


이 그림은 달리가 전형적인 꿈에 대한 프로이트적 발견을 처음으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처럼 자신의 생각을 아무런 저항 없이 표현하다 보면 무의식이 이끄는, 또는 바라는 메시지와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프로이트의 자유연상이나 꿈의 해석처럼 구체적일 수 있고, 비록 무의식이 왜곡되게 나타난다 해도 그림을 통한 통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윌리엄 텔의 수수께끼(Enigma of William Tell)

 


이 그림에서 달리의 아버지는 ‘윌리엄 텔’이라는 인물과 ‘레닌’이라는 인물과의 동일시를 통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권위적이며 자신을 억누르는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 그림 속에서 레닌은 마치 갓난아기 모습을 한 달리를 품고 있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고, 아기 머리 위에는 사과가 아닌 작은 고깃덩어리가 놓여 있다. 길게 늘어난 엉덩이에는 배설물인지 살덩이 같은 것이 붙어 있다. 이렇듯 달리는 기괴한 변형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모욕과 두려움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프로이트의 성 심리성격 발달에서 남근기(3세~6세)에 아동이 이성의 부모에게 성적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욕망을 나타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이론이 바탕이 된 것이다. 남근기 때 어린아이의 눈에 아버지의 역할은 어머니와 자기 사이를 갈라놓고 거세하는 매우 두려운 존재다. 하지만 좀더 자라면 아버지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을 표현한다. 그런데 남근기 때 트라우마가 생겨 아버지를 내면화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달리는 마드리드 미술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외설적인 그림을 그려 아버지에게 추방당하는 등의 행동으로 아버지를 괴롭혔다. 또 아버지의 추방령으로 카다케스로 갈 수 없었던 그에게 아버지는 자신을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인물이자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 갈라를 잡아삼킬 것만 같은 인물로 느껴졌을 것이다. 

 

서랍이 달린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of the drawers)

 

                         
‘밀로의 비너스상’을 달리가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재창조한 그림으로 먼저 비너스상에 서랍을 끼워넣었다. 서랍은 비밀을 상징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는 곧 여신이 자신의 비밀을 세상 밖으로 그대로 드러냈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달리는 이 그림을 두고 “불멸의 그리스와 우리 시대의 유일한 차이점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그는 그리스인들의 시대에는 전적으로 신플라톤학파의 순수한 신체가, 오늘날에는 정신분석에 의해서만 열 수 있는 서랍으로 가득차 있다”고 거의 예언에 가까운 말을 했다. 이 말에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과 증오, 거짓, 갈등 등을 정신분석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이 그램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기를 바라는 달리의 심중이 담겨 있으며, 또 그가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기억의 고집(The Persistence of Memory)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고, 숨마저 쉴 수 없을 것 같은 차가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망망한 지평선은 공포증마저 일으킨다. 시계들의 형상과 누런색은 유년기의 엄마와, 대소변 가리기를 요구받았던 항문기, 거세공포에 위축되어 있던 달리의 억압된 남근기 욕구, 그리고 상처들이 투사된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다. 구부러진 시계는 원래의 정상적인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는, 처음 구부러졌을 때 그대로 영원히 정지해 있을 수밖에 없어보이며, 마른 올리브 나뭇가지와 태아의 형상을 한 사람은 달리 자신으로 무력감과 우울감, 성적 욕망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이 그림 속에는 형의 죽음으로 인한 어머니의 우울로 인해 '진정한 사랑'을 받기 어려웠을 한 아이(엄마에 달라붙은 시계), 그로 인한 편집분열적 불안(벌레), 자신을 추방시킨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 분노와 거세불안과 성 공포증(황량한 가지에 붙은 시계)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낯설게 하기’ 기법에 의해 적절히 변형되고, 선, 색, 혈상'을 미적 조형원리에 맞게 창조적으로 가공하는 탁월한 미적 표현력 덕분에 보는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기보다 무의식을 공명, 대면, 정화, 회복, 승화 시키는 묘한 초현실적 여운을 남긴다.

 

태어난 순간부터 달리에게 엄습한 것은 ‘죽은 형의 그림자와 어머니의 우울’이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복잡하게 꼬인 운명으로 태어났기에 그는 어머니로부터 결코 온전히 ‘달리 자신으로’ 사랑받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즉 ‘아기 달리’는 편안하고 당당하게 사랑받기보다 엄마의 우울을 위로해 주어야 하는 ‘봉사자’, 죽은 형의 ‘대리자’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비존재 경험은 자기 존재에 대한 뿌리깊은 수치감을 일으키며 자존감을 추락시킨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조차 자존감의 회복을 위한 생존차원에서 “나 자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말과 “쾌감을 얻기 위해 죽은 엄마의 사진에 침을 뱉곤 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우울한 놀이(Lugubrious Game)

 

 

화면 가운데 여자 얼굴 형상을 하고 있는 큰 조각상의 입에 붙어 있는 메뚜기가 눈에 띈다. 메뚜기는 평생 달리에게 붙어다니던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달리는 어린시절부터 메뚜기만 보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는데, 그것에 연상되는 모든 것을 싫어했고, 때로는 도처에 메뚜기가 뛰어다니는 착란에 사로잡혀 학교에서 자주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달리가 가진 공포증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프로이트에 의하면 공포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그에 유래한 거세공포, 근친상간에 대한 불안, 기타 성적 흥분에 따르는 갈등이 불안을 초래하며 이때 불안은 용납되지 않는 무의식적 갈등에 대한 경고다. 그렇다면 달리의 메뚜기에 대한 공포증은 아버지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달리에게 나타난 메뚜기의 환상은 아버지를 나타낼 적당한 대상을 찾지 못해 무의식 바깥의 대상을 지목한 경우다. 아버지를 직면하지 않아도 되는 대가로 그는 메뚜기를 통해 공포증이 낳는 강력한 심리적 공황상태를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림 속에는 다양한 상징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달리 자신의 어릴적 자위행위의 무의식적인 기억을 나타내는 고개 숙인 남자, 남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나무줄기, 메뚜기, 펼친 우산, 위로 치켜세운 손가락, 담배 등의 길쭉한 물건들과 여성을 의미하는 유기적인 형태의 알들, 입술, 개미, 토끼, 상자 등이 있다. 이 모든 상징물들은 어린시절의 유아성욕과 항문기 고착 등을 내포하고 있다.

     

 

  소녀라고 믿었던 6살의 달리, 바다의 그림자에서 잠자는 강아지를 보기 위하여 물의 껍질을 들음

(Dali at the Age of Six, when he Thought he was a Girl, Lifting the Skin of the Water to see a Dog Sleeping in the Shade of the sea)

       

 

꿈과 같은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상단부에 있는 울퉁불퉁한 암벽의 산은 마치 바다를 건너는 철도를 암시하는 개를 포옹해 주고 있고, 개는 길게 누워서 잠자는 형태를 취하며 상상의 세계를 비춰주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이상한 영혼들의 거리 같은 해변에는 조개껍질을 들고 있는 소녀가 이러한 적막감의 세계를 깨뜨리고 있다. 이러한 정경이 놀라운 명확성을 가지고 튀어 오르지만 다른 것은 현실세계를 떠나는 도피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달리는 "나는 결코 죽은 형이 아니며, 살아 있는 동생이라는 것을 항상 증명하고 싶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워낙 첫아들을 총애했던 달리의 아버지는 달리를 첫아들의 부활로 믿을 만큼 첫아들의 그늘 속에 그를 가둬두고 매사에 그에 맞추어 교육시켰으며, 예술적 재능을 일찍부터 드러낸 달리에게 "큰애였다면 더 잘 그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말을 할 정도로 달리의 재능마저 죽은 첫아들과 비교했다.

 

아무리 열심히 하고 아무리 잘해도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없었던 달리는 성장하면서 자신에게서 형의 모습을 찾으려는 아버지에게 심한 반발심을 갖게 되고, 아버지의 비위를 건들고 약올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달리의 강요된 주체성의 혼동은 훗날 그의 그림에서 이중상, 혹은 다중상의 특징을 낳게 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죽은 형으로 살아가야 했던 달리가 혼자 카다케스 바닷가를 거닐고 하얀 암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면서 어린 달리가 가졌을 고통이 아프게 느껴져 온다.

 

욕망의 수수께끼-어머니, 어머니, 어머니(The Enigma of Desire; My Mother)

 

 

눈을 감고 태아의 형상을 한 얼굴은 달리의 자화상이다. 자화상은 ‘나의 어머니’라고 적혀 있는 덩어리와 연결돼 있는데, 이것은 어머니와 함께하고 싶고 애정관계를 누리고 싶어하는 오디푸스적 욕망이 드러내고 있다. 위쪽에 이빨을 드러낸 공격적인 작은 사자 또한 달리의 또 다른 이면으로 작지만 어머니를 지배하고자 하는 달리의 욕망을 느낄 수 있다. 

 

그림 속에서 태아의 얼굴을 파먹고 있는 개미의 모습은 죽음과 삶에 대한 달리의 이중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다. 달리는 자신의 일기에서 ‘죽음의 욕망은 우리가 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억누를 수 없는 충동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머리 바로 위쪽에는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두상, 서로 끌어안고 있는 남녀, 피 흘리는 머리, 추파를 던지는 사자 얼굴, 단검을 든 손 등이 한데 뒤섞여 서로 녹아들면서 꿈속의 경험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하나의 이미지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달리의 공격적인 면과 오이디푸스적 콤플렉스를 함께 드러내고 있다.

         
 원뿔 모양의 괴물이 들이닥치기 직전 갈라와 밀레의 만종(Gala and the Angelus of Millet)       

 

 

<달리의 만종 시리즈>의 작품 중 하나다. 달리가 밀레의 만종을 비극적 신화로 보고 그토록 집착하게 만든 이유는 그의 무의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은 형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과 형의 죽음으로 인한 죽음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에 기인한 것이다. 

 

열린 문 뒤에 갑각류를 머리에 얹고 방안을 훔쳐보고 있는 늙은 남자가 있는데, 이는 달리 자신인 듯하다. 왜 달리는 방안을 몰래 보고 있을까? 방안의 갈라는 레닌을 닮은 아버지와 불빛이 환한 방에 함께 있다. 아버지 앞에 모자를 쓰고 서 있는 갈라는 아주 작게 그려졌다. 겉모습은 위축돼 있는 것 같지만, 갈라는 분노를 숨기고 있다. 갈라의 뒤쪽 과장된 그림자의 표현을 보면, 달리는 갈라가 자신을 달리의 아내로 인정하지 않는 달리의 아버지에게 가졌을 분노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는 아버지가 갈라를 한 번 만나봐주기를 원하는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했고, 아버지의 뒷모습을 극도로 초라하고 불편해 보이는 어깨로 표현하며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자기 순결의 뿔에 의해 자동능욕 당하는 젊은 처녀(Young virgin Autosodomized by her own chastity)

 

 

동생 아나 마리아에 대한 불쾌감을 나타낸 그림으로 달리는 동생을 천박한 여성처럼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전달하고자 했다. 동생 아나 마리아가 달리를 이토록 화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동생이 쓴 책으로 인해 자신의 이미지가 실추되었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치부를 들춰낸 동생에 대한 감정보다 실제로는 달리 자신이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신격화해서 쓴 자서전을 보면, 달리는 자기애가 강하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식하지 않고 소신대로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달리의 우월의식에 가려진 심각한 콤플렉스가 자리 잡고 있다. 

 

죽은 형에서 비롯된 콤플렉스는 무의식 속에서 항상 달리를 괴롭혀왔지만 그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사실 어린시절 달리는 사랑을 받기 위해 자주 아프거나 괴상한 행동을 해서 부모로부터 관심을 받으려고 했다. 그에게 형의 이름을 물려줄 만큼 죽은 형을 잊지 못하는 부모를 향해 달리는 끊임없이 자신만을 봐달라고 투쟁했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달리를 괴롭힌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용기가 그에게는 필요했다.

 

달리 무의식을 통해 치유의 길을 찾다, 흥미롭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