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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세계에서 치유의 통찰력을 얻다

 

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세계에서 치유의 통찰력을 얻다

 

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세계에서 치유의 통찰력을 얻다

 

벨기에 출신의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그림들은 현대미술에서의 팝아트와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영화 매트릭스 등의 대중매체, 문학,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세계에서 치유의 통찰력을 얻다..끊임없이 존재에 대한 고민과 의문을 제기한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는 브뤼셀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한 후 1920년 중반까지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성향의 그림을 그렸지만 그 이후에는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꿈이나 무의식, 인간의 욕망세계에 매료되었던 것과 달리 그는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존재에 대한 고민과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으며, 우리 주변에 있는 대상들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것과는 전혀 다른 요소들을 작품 속에 배치하는 더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CHA의과대학교 통합의과대학원 임상미술치료전공 주임교수이자 차병원 미술치료 클리닉 교수인 김선현님이 [심리학 명화 속으로 떠나는 마음여행]에서 초현실세계를 통해 치유의 통찰력을 얻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다른 화가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인간의 조건 

 

 

창문 앞에 이젤이 서 있는데 실내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정확하게 그 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한 장의 창유리처럼 보이는 것을 그 창문이 받치고 있다. 그러나 유리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은 캔버스 위의 그림, 즉 그림 속의 그림이다. 그림 때문에 가려진 창 밖의 풍경은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그림 속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 따라서 그림 속 나무는 방 밖의 실제 나무가 있는 장소 앞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적인 양식으로 인해 우리가 현실의 풍경에 대한 그림 속 풍경을 인식하게 되는 것과 그것들이 모두 단지 그려진 것이라는 지식 사이에서 강한 긴장감을 형성하게 된다. 이젤에 걸려 있는 캔버스의 그림은 창문 너머 풍경을 그렸지만 정작 캔버스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도록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대가족

 

 

새는 하늘을 닮아 있고 하늘은 새를 닮아 있다. 즉 자유의 상징인 새의 몸을 구성하는 깃털의 재질이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로 바뀌어 있음으로 인해 현실에서의 구속된 삶을 벗어난 그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로운 정신세계에 대한 갈망은 어두운 바탕의 현실세계와 경계하여 새의 형상에 갇힌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두운 하늘을 날고 있는 새와 새의 몸을 구성하는 맑은 하늘의 대비, 새의 꼬리가 닿아 있는 수평선 너머와 새의 머리가 향하고 있는 파도치는 해변 쪽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경계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마치 서로 상반되는 세계가 합해지려는 시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현실을 뛰어넘는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개인들이 모여 현실의 고통과 희망을 함께 하는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온 인류, 나아가 온 우주가 대가족임을 상징하는 듯하다.

 

불길한 날씨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해변의 하늘에 토르소의 여체와 튜바, 의자를 흐릿하게 그려넣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중력의 법칙은 무시된다. 작품 속 물체들은 고정되거나 확정된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는 특성을 잃고 하늘 위로 붕 뜨고 있는 것인지,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공간 속에서 일시정지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공중에 떠 있는 여인의 토르소에서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보인다. 튜바를 비롯한 악기는 마그리트의 작품 속에서 종종 그려지는 오브제다. 튜바는 음악가로 활동한 동생과 관현이 있고, 빈 의자는 어머니의 부재를 뜻한다고 할 때 공중에서 이루어지는 이 세 가지 물체의 만남은 죽은 어머니와 재회하고 싶은 가족의 열망을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겨울비  

 


중산모를 쓰고 검은 외투를 입은 남자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수많은 남자들이 하늘로 오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현대사회의 인간상의 한 단면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나타내고 있는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은 사회화, 세계화라는 전체 속에서 한 개인은 몰개성화되어 가며 생활의 패턴마저도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차갑게 느껴지는 건물의 벽과 커튼으로 닫혀 있는 똑같은 모양의 창문도 빗방울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더불어 개인의 상실과 자아의 부재, 소통 없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마그리트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싫어했는데, 이러한 특성은 중산모를 쓴 남자의 익명성에 반영되었다. 1950년대 이후 그의 작품의 주요한 주제 중 하나가 된 중산모를 쓴 남자는 대개 뒷모습으로 그려져 있거나 얼굴이 보이지 않거나 사과 등으로 가려진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평범한 표준형 모자는 그가 늘 사용하는 일종의 변장도구였다.


대화의 기술

 

 

드넓은 평야에 대충 깎아서 쌓아올린 직육면체 돌덩이들의 거대한 구조물 앞에서 작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거대한 구조물이 주는 중압감에 의해 지극히 작아보이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듯 보인다. 또한 그들의 대화는 사막같이 건조해 보이는 땅과 푸른 하늘 사이로 흩어져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이어지는 듯하다.

 

이 거석 아랫부분에는 ‘RENE’라는 알파벳이 보인다. 프랑스어로 ‘꿈’이라는 뜻인 이 문자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힘은 크지만, 때로는 이것이 인간 사이의 관계를 방해하거나 혹은 꿈과 같이 홀연히 사려져버리는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거석의 구조물은 꿈의 구조물, 무의식의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연인

 

 

연인의 머리가 헝겊으로 가려져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인물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가 어린 시절에 받았던 충격적인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마그리트의 어머니는 그가 열네 살 때 자살을 했다. 마을의 강에서 익사한 시신을 찾았을 때 어머니의 잠옷이 얼굴 부분을 휘감고 있었는데, 죽은 어머니의 이미지는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기의 그에게 크나큰 심리적 충격을 주게 된다.그의 작품에서 ‘얼굴 없음’은 잠옷으로 얼굴을 감싼 채 발견된 어머니의 시신에 대한 무의식적인 기억과 관련이 있으며, 또한 그때의 충격과 트라우마에 대한 불안한 심리, 그리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가능의 시도

 

 

마그리트의 다른 인물 표현과는 달리 그림 속 여인의 얼굴 한쪽 부분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작가가 시도한 불가능이란 어떤 것에 대한 도전이었을까? 그림 속에서 작가는 화가로서 한 여성의 그림을 창조하고 있다. 마그리트는 여인의 왼쪽 어깨 밑 팔부분을 붓으로 그리려고 하고 그림 속의 여인은 자신의 모습이 완성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기다리는 듯 보인다.

 

그림을 통해 그가 완성시키고자 한 대상은 바로 작가 자신의 트라우마의 근원이 되는 ‘어머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복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떻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삶으로 복귀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 이미지를 화폭 속의 투사적 요소로 사용해서 잃어버린 어머니를 회복하고 그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세계에서 치유의 통찰력을 얻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