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낳은정이냐 기른정이냐..종달새 왕이어도 행복한 허삼관의 고군분투기

 

허삼관 낳은정이냐 기른정이냐..종달새 왕이어도 행복한 허삼관의 고군분투기 

 

허삼관 낳은정이냐 기른정이냐..종달새 왕이어도 행복한 허삼관의 고군분투기 허삼관 하정우와 큰아들 남다름

 

배우 하정우가 감독도 하고 주인공 허삼관으로도 출연한 영화 [허삼관]은 돈도 없고 대책도 없는 허랑한 허삼관이지만 절세미녀 아내 허옥란(하지원)과 세 아들(남다름, 노강민, 전현석)을 거느리고 나름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다가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원작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중국의 위화가 쓴 [허삼관 매혈기]다. 문화대혁명의 물결이 거셌던 시기에 위기를 만날 때마다 피를 팔아 그 위기를 넘기는 아버지 허삼관을 주인공으로 한 내용인데, 하정우 감독은 이 소설에서 중국의 역사적, 정치적 문제는 모두 없애고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잘 다듬어 영화화했다.

 

스포일러의 염려가 있으니 홈페이지에 있는 줄거리를 따라가보면, 귀하디귀한 아들이 셋이나 있어서 늘 뿌듯해하던 허삼관은 그 중 유독 자신을 닮은 큰아들 일락이를 더 사랑한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일락이가 사실은 자기 자식이 아니라 아내가 결혼 전에 만났던 하소영(민무제)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결국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그 후 그는 아내는 물론 큰아들 일락이에게도 지난날 자상하고 따뜻하던 남편과 아버지 모습을 버리고 쪼잔하기 짝이 없는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짓을 하면서 두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일락이가 뇌염에 걸리고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없는 그는 또다시 목숨과도 같은 자신의 피를 팔아 아들을 구하려는 짙은 부성애를 보여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피보다 진한 물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낳은정이 기른정보다 더 크다고들 하지만 기른정이 낳은정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을 백 퍼센트 완벽하게 보여주는 허삼관이다.

  

허삼관 낳은정이냐 기른정이냐..종달새 왕이어도 행복한 허삼관의 고군분투기 허삼관과 허옥란의 결혼식

 

영화가 시작되면서 1953년 공주라는 자막이 나오는데, 원작이 있는 영화가 원작과 너무 달라도 위화감이 들지만, 영화 허삼관은 초반부에 나오는 대사도 그렇고 동네 분위기도 그렇고 원작과 거의 다를 바가 없어서 이미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처음엔 재미가 좀 덜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허삼관과 허옥란의 결혼식 장면이다. 삼관의 삼촌 주진모와 옥란의 아버지 이경영, 그리고 동네사람들로 정만식, 조진웅 등의 모습이 보인다. 이 외에도 윤은혜, 전혜진, 장광, 김기천 등 저마다 개성이 넘치는 명품조연들의 활약이 끊임없이 웃음과 활기를 불어넣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허삼관은 마을에서 강냉이를 팔고 다니는 절세미녀 허옥란에게 첫눈에 반한다.

 

 

갑자기 옥란과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싶어진 삼관은 한푼도 쥔 게 없으니 매혈, 즉 피를 팔아서 돈을 마련하려고 방씨(성동일)와 근룡(김성균)을 따라나선다. 피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물을 잔뜩 마셔야 한다는 말을 듣고 한껏 물을 마셔서 배가 빵빵해진 삼관은 소변을 보면 피가 적어진다는 말에 걸음을 걷기 어려울 만큼 소변이 마려운데도 꾹 참고 피를 뽑는다. 

 

이 대목에서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피를 팔 수 있을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남자여야만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영화 초반에서도 수박밭 주인인 계화 엄마(김영애)는 남자라면 밥 두 그릇쯤은 거뜬하게 먹어줘야 사윗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 정도는 되어야 피를 팔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남자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람의 피라면 목숨과도 같은 것이니 매혈이라는 것을 가족을 위해 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잣대로 삼은 게 아닌가 싶다. 

 

 

피를 팔아서 큰돈을 만든 삼관은 댓바람에 옥란을 찾아가 “만두 드실래요?”라며 접근한 후 냉면에 솜사탕, 돼지고기까지 한아름 떠안긴 다음 다짜고짜 이렇게 당신을 위해 돈을 많이 섰는데 저한테 언제 시집올 생각이냐고 묻는다.

 

 

삼관의 말에 어안이 벙벙벙해진 옥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버지가 하소영을 사윗감으로 점찍고 있어서 당신과 결혼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자 삼관은 이번에는 옥란의 아버지를 찾아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따님을 제게 주십시요" 하며 그럴싸한 말로 옥람의 아버지를 꼬드겨 결혼 허락을 얻어낸다. (여담이지만 드라마 <미생>의 영향 탓인지 옥란의 아버지 이경영을 보면서 자꾸 원인터내셔널의 최전무가 오버랩되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눌러야 했다.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 것 같고, 이경영의 연기가 강냉이 장수 옥란의 아버지를 표헌하기에는 너무 고급스러웠다고나 할까.)

 

그 후 삼관과 옥란은 아들 셋을 낳아 기르면서 가난해도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큰아들 일락이가 실은 제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치미는 화를 억누를 길이 없다. 갑자기 사는 것이 시들해진 그는 하루 종일 빈둥거리면서 아내의 속을 있는 대로 긁어놓는다.

 

여기까지가 영화 허삼관의 전반부 줄거리다. 그리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본격적인 내용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일단 허삼관을 보려면 필히 종달새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종달새는 남의 둥지에 슬쩍 알을 낳아놓는 뻔뻔스러운 뻐꾸기 대신 알을 품어주고, 이윽고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면 이번에도 역시 뻐꾸기 대신 정성껏 새끼를 길러주는 멍청한 새다. 자기 새끼도 남이 기르게 하는 철면피 뻐꾸기가 있는가 하면, 남의 새끼까지 떠맡아 힘겹게 길러주는 이른바 호구, 종달새가 있는 것이다.

 

영화 허삼관은 이 뻐꾸기와 종달새, 즉 자기 아들을 남이 기르게 하는 뻐꾸기 하소영과 남의 아들을 자기 아들인 줄 알고 키운 종달새의 왕 허삼관 사이에 벌어지는 한판승부다. (원작에서는 종달새의 왕이 자라대가리의 왕으로 나오는데, 자라대가리는 중국에서는 호구, 즉 남에게 이용만 당하는 멍청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아주 심한 욕이라고 한다.)

 

승부를 겨루려면 경쟁자끼리 쟁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뻐꾸기와 종달새가 서로 경쟁하면서 쟁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삶의 행복'이 아닌가 싶다. 외면적으로는 자신의 안락한 삶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아들을 외면하는 영리한 뻐꾸기 하소영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남의 자식까지 떠맡아 기르면서도 진한 행복을 느끼는 어리석은 종달새의 왕 하삼관의 삶에 이 영화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누구할 것 없이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화두로 삼는 문제, 많이 가지고도 불행한 사람 대 적게 가지고도 행복한 사람 간의 대립을 종달새의 왕 삼관을 내세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승리는 당연히 삼관의 것이다. 

 

 

사람은 행/불행을 기준으로 할 때 대략 네 분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첫째는 많이 가지고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더 바랄 게 없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현실적으로 인간의 속성상 많이 가지고도 행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둘째는 많이 가지고도 불행한 사람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는 아귀처럼 가져도 가져도 더 갖고 싶은 것이 탐욕스러운 인간의 속성이며,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세번째는 많이 갖지는 않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다. 많이 가지고 행복하면 딱 좋겠지만, 굳이 많이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만 있다면 많이 가지고 행복한 사람보다 계산상으로는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많이 갖지도 못하고 불행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죽지 못해 사는 삶이기 십상이다. 이런 삶에서 벗어나려면,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세번째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회나 주변에서도 아낌없이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제 자식도 아닌 남의 자식을 위해, 심지어 아내의 외도로 태어난 일락이를 위해 매혈을 해서 행복을 쟁취해 내는 허삼관이 바로 그 산 증인이다.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는 책의 머리말 서두에서 "이 책은 <평등>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말하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이상하게 들리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작가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12세기 아프리카 북부에서 씌어졌다는 시를 읇조린다.

 

가능할 것인가

나

야곱 알만스의 일개 백성도

장미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죽어갈 수 있을까?

 

일개 백성도, 아름다운 장미도, 박학다식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까? 그렇다, 죽음을 앞두고 그 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계산을 맞춰볼 때는 아름다움도 똑똑함도 다 소용없고 부질없는 것일 뿐이다. 그보다는 누가 더 지나온 삶의 순간순간을 행복으로 채워냈느냐에 더욱 높은 점수를 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호의호식하며 거들먹거려도 막상 사경을 헤매는 지경이 되자 친아들에게서조차 외면받는 불행한 하소영보다는, 남의 자식이라도 목숨을 걸고 제 피를 팔아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허삼관, 그리고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몸속 장기를 떼어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허옥란이 사실은 더 행복한 사람들이기에 감히 세상은 공평하고 또 평등하다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용인받는 단 하나의 정신병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서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정신병에 걸려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일락이를 사랑으로 품은 종달새의 왕 허삼관이 바로 그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허삼관 낳은정이냐 기른정이냐..종달새 왕이어도 행복한 허삼관의 분투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