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베테랑인 어떤 경찰관은 살인현장에 가면 먼저
죽은 사람을 보고 “범인은 바로 너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가?
대개 살해당한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게끔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몇 해 전 일어난 살인사건 하나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폭력적인 사람이 마음이 여린 사람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나 죽이고 싶지? 죽여봐, 죽여봐” 했다고 합니다.
참고 참던 그 마음여린 사람은 결국 분을 참지 못해서
그 폭력적인 사람을 흉기로 죽이고 말았습니다.
죽은 사람이 자기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한이 맺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그 한이 결국은 자신에게 해가 되어 돌아오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불교에서는 그 한이라는 것이 그 사람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대손손 불려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상은 유대교에서도 있어서,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이
병에 걸리면 그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해 병에 걸렸다고 해서
병자들을 죄인 취급하기조차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한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께서 아주 명백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 몸처럼 돌보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그렇게 대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더더우기 우리나라 땅은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아서
한 집 건너 아는 사람이란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런 좁은 곳에서 다른 사람의 한을 맺히게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아시고 가능하면 주위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고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위 글은 홍성남 신부님의 미사강론집 중 <너나 잘해>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TV 프로그램에서 “화 풀고 살자”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서
국민 힐링 신부님으로 일컬어지는 홍성남 신부님 방에는
샌드백이 하나 있는데, 화가 날 때마다 그 샌드백을 팬다고 합니다.
매일 그렇게 하다 보면 화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답니다.
게다가 신기한 것은 어떤 날은 샌드백이 안 보인다는 겁니다.
화가 완전히 풀린 것이지요.
그러다가 다시 화가 나면 또 샌드백을 팬다고 합니다.
그래서 샌드백은 신부님의 영성생활에 필수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도 방에 샌드백 하나 아니면
화풀이용 베개라도 하나씩 장만해 두라고 합니다.
남가좌동 성당에 계실 때 가끔 강론을 들으러 가곤 했는데,
고스톱을 즐기신다는 이야기, 화가 나면 “시벌시벌” 욕을 하고 다녀서
신자분들이 질색을 하시다는 이야기 등 전혀 거리낌 것 없이 말씀하셔서
정말 속풀이가 저절로 되는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