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 세책단속 금지령으로 한석규(영조)와 대립하는 이제훈(국본 이선)
비밀의 문 세책단속을 금하고 유통을 허하라는 국본 이선(이제훈)과 영조(한석규)의 대립
역사적 사실에 가상의 스토리를 입혀 흥미롭게 재해석해 내고 있는 궁중 미스터리
비밀의 문에서는 맹의나 선위파동 외에도 세책이며 세책방, 책쾌와 같이
평소에 자주 접하지 못한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세책이란 서책의 출판과 배포를 오직 국가에서만 주도했던 당시 백성들이 남모르게
책을 만들어 유통시킨 도서 대여 형태를 말하며, 세책방은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일종의
도서대여점을 말합니다. 힘겨운 백성들의 삶에는 크나큰 즐거움을 주는 것 중 하나였지만
나라에서 금지령이 내려 있었던 것이니만큼 언제나 단속의 표적이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국본(왕세자) 이선(이제훈)이 세책단속을 금하는 것은 물론 모든 서책의 출판과 유통을
허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아버지 영조(한석규)는 그런 이선을 못마땅해하면서 선위를 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두 사람의 갈등과 대립이 시작됩니다.
오늘 포스팅은 왜 영조가 서책의 출판과 유통을 금했는지, 책쾌란 무엇인지 알아본 것입니다.
비밀의 문에 관련된 내용을 좀더 알고 싶으시면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비밀의 문 세책을 하러 나갔다가 세책단속 중이던 포졸들에게 쫓기는 왕세자 이선
아버지 영조(한석규)를 대신하여 대리청정 중인 국본(왕세자) 이제훈은 신분을 숨긴 채
저자거리에서 몰래 세책을 하려다가 세책단속 중이던 포교들에게 들켜 쫓깁니다.
포졸들에게 쫓기던 이선은 포졸들이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모습을 보고는 분노해서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지도 모르는 염려도 잊고 포졸들과 맞서싸웁니다
궁궐 밖에서는 이렇듯 세책단속이 심했지만, 사실 당시 세책은 궁궐에도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왕세자 이선 역시 세책을 하여 재미있게 읽고 있었습니다. 왕세자비 혜경궁 홍씨(박은빈)는 왕세자 이선이
머무는 동궁전에 들렀다가 이선이 빌려다 보던 세책을 발견하고는 "민간에서 사사로이 서책을 만들어
유통하는 것은 국법이 엄히 금하는 일이거늘 세책 따위가 어찌 동궁전에 뒹굴어!" 하고 호령합니다.
한편 저자거리에서 백성들이 세책단속을 하는 포졸들에게 뭇매를 맞는 모습을 목격하고 싸우다가 돌아온
국본 이선은 궁궐로 돌아오자마자 곧 중신들을 불러모아 "앞으로 세책은 물론이요 민간의 출판과 유통도
모두 허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놀란 중신들이 서책의 출판과 배포는 오직 국가가 주도하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나서자 세자는 내관을 불러 세책들을 가지고 들어오게 합니다.
내관들이 궁안에서 거둬들인 세책만도 100여 권이 넘습니다. 중신들이 놀라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세자는 "서책의 출판이 오직 국가의 몫이라 했지만 보시는 바와 같이 이미 민간에서
출판된 세책들이 궁 안 깊숙한 곳까지 버젓이 들어와 있습니다. 법도가 지엄한 궁이 이와 같다면
여항(백성들이 사는 곳)은 어떻겠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중신들이 "사세가 그와 같으니 더욱 더 강력하게 규제하고 단속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혹세하고 무민한 잡서들이 아닙니까?"라고 반대하자
세자는 "무민이 아니라 낙민, 백성들을 미혹케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것이니
잡서가 아니라 양서이지요"라고 답변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역심을 부추기는 내용 또한 태반이라는 중신의 말에 세자는 분노한 얼굴로
"책을 읽고 역심을 품는다면 그건 이 나라가 틀린 겁니다. 정사를 대체 어찌하였기에
백성들이 고작 이야기책 하나를 읽고 역도로 돌변한단 말입니까?"라며 "민간의 출판은 물론
유통까지 모두 허할 것이니 세책 단속부터 전면중단하시오"라고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정사를 대체 어찌하였기에 백성들이 고작 이야기책 하나를 읽고 역도로 돌변한단 말입니까?"
라는 말에서는 소름이 오싹 돋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렇듯 올바른 군주관을 가지고
있었던 사도세자 이선이 왜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게 된 것일까,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것처럼
그저 억울한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EBS 역사채널e 책의 신선 책쾌 중에서
그런데 당시 영조는 왜 서책 출판과 유통을 엄하게 금지했던 것일까요?
1771년 영조는 조선의 왕을 모략하는 내용이 담긴 중국의 서적 [명기집략](明紀輯略)이 유통되는
것을 알고 조선 내 모든 책을 거둬 불태우고 명기집략을 유통한 사람들을 처형합니다.
이 ‘명기집략 사건’은 박필순의 상소로 시작되었는데, 청나라 주린(朱璘)의 명기집략이라는 책에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의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실은 조선의 정통성을 무너뜨리는 내용이 담긴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유통을 금했는데,
그 후에도 책쾌를 통해 이 책이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는 내용의 상소였던 것입니다.
EBS 역사채널e 책의 신선 책쾌 중에서
영조실록에 따르면, 이에 크게 노한 영조가 명기집략을 모두 불태우고 이를 유통시킨 책쾌들과 책을 구입한
사람들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죽이거나 유배를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 벌거벗긴 채 두 손을 뒤로 묶이고
태양 아래 엎드려 죽게 된 자가 100여 명에 달했으며, 그 후 서적 유통은 더욱 강하게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국본 이선이 허하라고 명령을 내렸으니 영조로서는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비밀의 문에 나오는 서가세책 지하공방입니다. 여기서 필사를 하고 책을 만들어 빌려줍니다.
이렇게 몰래 숨어서 만든 책들을 사람들이 빌려보아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니
몇 년 전 킬링필드의 나라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을 여행할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때 유적지에 닿을 때마다 어린아이들 무리가 버스 옆으로 벌떼처럼 다가와
"1달러, 1달러"를 외치며 무작정 손을 내밀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뭔가를 만들어 팔러 나온
아이들도 있었고, 그 중에는 거의 자기 키만한 동생을 업고 있는 어린 소녀도 있었습니다.
그 시간쯤이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나이의 아이도 있었는데, 왜 저 아이들은
학교에 안 가느냐, 학교에 안 가고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어도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가만히 내버려두느냐고 물으니 가이드는 참 어이없으면서도 가슴아픈 대답을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워낙에 없이 살다 보니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벌어다준 돈도 고맙게
여긴다는 것이었고, 선생님들도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데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나라 자체가 오히려 지식인들이 양산되는 것을 꺼린다고 했습니다. 많이 배워서
지식층이 늘어날수록 권력을 가진 자들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였지요.
■ 책쾌 권해효(서균)
서지담(김유정)의 아버지이자 책쾌 서균(권해효)입니다. 신흥복 살해사건을 지담을 잡기 위해 세책방 단속을
빙자하여 급습한 포도청 사람들에게 서균은 "소인 책쾌 서균이라고 합니다"라며 자신의 신분을 밝힙니다.
다행히 위기를 모면하고 포졸들이 돌아간 후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담이 문제라며 야단을
좀 치라는 운심(박효주)에게 서균은 "문제라니? 우리 지담이가 뭐가 어때서?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와 그 유족이 안타까워서 진실을 밝혀보겠다는 게 뭐가 문제야? 우리 지담이 문제없어.
문제가 있다면 자식놈 귀한 뜻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이 못난 애비가 문제고, 진실이나 정의 따위는
관심조차 없는 이 험한 세상이 문제인 게지"라며 한숨을 내쉽니다.
이처럼 이 드라마에서는 말투도 옛스럽지 않아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옷차림만 옛 복장일 뿐 오늘의 현실에 대입해도 전혀 낯설 게 없는 사건들이며 대화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는 요즘처럼 다양한 매체나 루트를 통해 지식을 쌓거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시절이니만큼
이 책쾌의 활약상이 눈부셨다고 합니다. 책쾌란 오늘날의 서적판매상을 말하는데, 마침 EBS 역사채널e에서
[책의 신선 책쾌]라는 제목으로 책쾌에 대해 살펴본 것이 있어서 함께 올립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팔던 서적중개상인 책쾌는 희귀본이며 금서를 구하는 데 능통하고 손님이 원하는 책을
주문까지 신출귀몰한 행적과 책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신선(神仙)이라고 불리던 인물입니다.
책속의 지식이 권력이 되던 시대로 조선의 지배층은 지식을 나누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민간서적이 거의 없었던 당시 조선에도 책을 유통하던 주역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책쾌입니다.
책쾌가 소매에 잔뜩 넣어가지고 다니는 것은 오직 책뿐이었으며, 그가 몸속에서 한 권 한 권 계속 꺼내놓으면
책이 방안 가득 쌓이곤 했다고 합니다. 시장 골목에서 관청으로, 양반에서 마부, 소년까지 책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바람처럼 달려가 책을 팔았던 책쾌들입니다.
특히 책쾌 조생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책장수로 ‘조신선’이라고도 불릴 만큼 행적이 기이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지식과 학식을 고루 갖춘 그는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거간꾼이 아니라 책을 보는 안목 또한 뛰어나
당시 지식인들에게 책을 소개도 하고 추천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책 내용을 비롯하여 사회며
역사 전반에 대해서도 토론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조수삼의 추재집 조신선편에 실려 있는 "천하에 책이 없다면 나는 달리지 않을 것이요
이는 하늘이 천하의 책을 통해 나에게 명한 것이니 나는 천하의 책과 함께 생을 마칠 것이요"라는
글이 책쾌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그 시대를 살았는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서적외판원이자 출판판매 담당자, 책 비평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전파하는
문화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책쾌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전쟁 이후까지 이어지다가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1960년대에 이르러 사라져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