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으로 보는 세상/시사/사회/교육

프란치스코 교황의 낮은 데로 임하는 겸손과 안도현의 연탄 한 장/성모승천대축일 미사

 

 

8월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

다녀온 후기입니다. 80세라는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아기와도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따스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는 5일간의 짧은 방한을 마치고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그날 찍은 사진들을 올려봅니다.

좌석이 4층에 있었던데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운집해 있어서 움직여 다니기가 어려웠기에 

앉은 자리에서나마 틈틈이 찍은 것입니다. 현장감은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대전월드컵경기장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입장하던 중 한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열리는 대전월드컵경기장의 새벽. 

 

 

이곳에 도착했을 때가 오전 6시 반쯤이었습니다. 합정동에서 새벽 4시 10분에 버스가 출발했고,

이른아침이어서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하며 잠시 쉬었는데도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버스를 내린 곳이 마침 화훼단지 앞이었고, 거기서 월드컵경기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른새벽을 향기롭게 물들이는 꽃향기가 내내 코끝을 맴돌아 아주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4층에서 내려다본 월드컵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입니다. 창문마다 사람들이 매달려 사진을 찍고 있어서

경기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조금 한가한 틈을 타서 잽싸게 한 컷 찍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무더운 여름 8월하고도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느닷없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 바로 안도현님의 이 시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뵙기 위해 새벽 3시, 부산이나 광주 같은 곳에서는 새벽 2시에는 일어나

집을 나왔을 텐데, 다들 피곤해하기는커녕 더없이 밝은 얼굴로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

 

 단 하루의 여정일망정 뭔가를 열망하는 마음 없이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 수 있었던 힘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

되고자 하는 열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경기장에 앉아 이 사진 속과 같은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2002년 월드컵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여의도에 살고 있어서 연일 이어지는, 거의 광기에 가까웠던 월드컵의 열기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시청 앞에서 매번 아음다운 붉은 꽃을 피워나갔던 

그때의 감동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동안 몸과 마음속에 갇혀 있던 우리의 열망과 열정이 얼마나 간절하게

그 돌출구를 찾고 있었던가를 뜨겁게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요.

 

 

 

 

대전교구 소년소녀 합창단의 공연이 맨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한복차림과 아리랑이 아주 멋지게 어우러지는 공연이었습니다. 

 

 

 

 

그 다음 순서는 대전교구 성가대의 합창이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건한 마음은 가수 인순이님이 나타난 순간 담박에 깨져버렸습니다.(ㅎㅎ)

무대에 오르자마자 어찌나 열정적인 노래와 댄스로 그 5만 여 관중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리는지

인순인님의 힘이 놀랍다는 것을 새삼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꿈을 놓치지 않도록 

열망을 북돋워주는 <거위의 꿈>도 함께 부르기에 참 좋은 노래였습니다.

 

 

 

 

소프라노 조수미님이 부르는 넬라 판타지아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노래를 듣게 해주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교황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앞서 무대에 서니 몹시 떨린다는 거짓말(?)을 

잘도 하는 조수미님이었습니다. 그분의 열정 못지않은 대담함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말입니다.(ㅎㅎ)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교황님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관중석을 돌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Viva il Papa, 비바 파파, 프란치스코 교황을 많은 사람들과 목소리를 합쳐 연호할 때는 저절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집단광기로 보인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뜨거운 열정의 기운이 그곳에 가득 퍼져나갔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더 많은 사람들을 더 가까이에서 섬기기 위해 방탄자를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려의 뜻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내 나이에 잃을 것은 많지 않다.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그것은 신의 뜻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바로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목숨을 잃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대적할 길이 없겠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강론대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훌륭한 강론은 새로운 포도주를 맛보게 해준다고 하셨던 교황님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미사에 관한 내용은 자세히 쓰지 않겠습니다.)

 

 

 

 

미사가 끝나갈 무렵 동쪽 관중석에 순식간에 쫙 펼쳐진 대형 플래카드가 사람들의 마음에

한층 더 뜨거우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흔히 아름다움을 판단할 때

그 아름다움이 안에 있는지 아니면

밖에 있는지를 가려서 결정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고 판단하지요.

하지만 보잘것없는 아주 작은 것에도 아름다움이 숨어 있으며,

드러나보이지 않는 내면의 마음이

더욱 감동적으로 아름다울 때도 흔히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미사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시는 모습입니다.

 

<신들을 배반한 열두 사람>의 저자 윌리엄 보리스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이익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것은 바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정말로 중요한 일은 손해에서 이익을 얻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한데,

바로 그 점이 영리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가르는 갈림길이라고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보면서 보리스가 말한 그 영리한 분이 바로 교황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꺼이 내어주고 기꺼이 낮아짐으로써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을

당신 가까이로 오게 하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분이니까요.

 

 

 

4박5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님의 또 다른 시 <연탄 한 장>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일

그것이 바로 지극히 낮은 데로 임하고자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우리의 삶 전반에 준엄하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