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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사는 성자 서베드로님

 

 

“이 책을 손에 든 사람은 행운입니다.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사는 한 성자를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염으로 찌든 우리 시대에 향기롭고 빛나는 영혼의 사람을,
손만 뻗으면 가까이 손잡을 수 있는 이웃으로 소개받는다는 것은
정말 멋진 행운 아닙니까?”

 

위 글은 예수살이공동체 대표신부님인 박기호 신부님이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의 뒤표지에 추천사로 남겨주신 글이다.

그 말씀대로 이 책을 손에 들면 멋진 행운이 생길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

 

민들레 국수집에서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대접하는 서영남 베드로님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25년간의 수사생활을 마감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환속했다.

민들레 국수집을 차린 후 노숙인들이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게 하려고 만든

민들레 쉼터는 그 후 민들레 희망센터로 발전해 국수집 손님들이 희망을 갖게 해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후 어린이들을 위한 민들레 꿈 공부방과 민들레 꿈 밥집도 열었다.

 

 

 

 

민들레 국수집은 가파른 산에라도 올라가는 듯한 오르막 위에 있었다.
그 가까이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아이들 소리로 왁자지껄할 것 같은데 무척이나 조용했다.

서영남 베드로님은 이 학교에는 어느 초등학교에나 주변에 있게 마련인 것 중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불량식품을 파는 가게라고 했다.

그 이유는 워낙 집안형편이 어려워 오뎅 하나, 떡볶이 한 접시 사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다수여서 어떤 가게도 버텨낼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서베드로님이 식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을 꼭 ‘우리 손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척 인상깊었고,

희망지원센터에서 베드로님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계신 아내 베로니카님은

날개만 안 달렸을 뿐 천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따님인 모니카님은

민들레 공부방과 민들레 꿈 밥집에서 방과후 갈 데가 만만치 않은

아이들을 돌보며 먹을것도 챙겨준다고 했다.  


베로니카님이 일하고 계신 희망지원센터엔 작은 도서관이 마련돼 있어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분에게는 천원에서 3천원을 드린다고 했다.

노숙인으로 그곳에 오시는 분들은 보통 입을 꾹 다문 채 거의 말을 하지 않는데,
처음엔 돈을 받을 욕심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지만, 어느새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자신감이 붙자 면접도 보고

취직도 될 때는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했다.

 

게다가 그저 고픈 배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했던 분들이 독서를 통해

자존감을 찾게 되면서부터는 잘 씻고 옷차림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베로니카님 방 벽에는 또 하나 인상적인 일정표가 붙어 있었는데,

의사, 변호사, 교수님 등 각계각층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주기 위해 이곳을 찾는 분들의 일정을 표시해 둔 것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돕고 있다니,
나 살기도 바쁘다고 허덕였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저자
서영남 지음
출판사
| 2010-03-3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인간극장] 두 차례 방영! 노숙인을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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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책 중 함께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글을 발췌한 것이다.

 

 

왜 날 도와주는 거예요?

 

글쎄, 도와주는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 봐도 이웃을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뿐이다.
그냥, 아무런 이유가 없다. 약간 여유가 되니까 도와주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다.
교도소에 가서 면회를 신청하거나 영치금과 먹을 것을 넣어줄 때,
민들레의 집 식구들을  병원에 모시고 갈 때도 똑같은 소리를 듣는다.

 

“무슨 관계예요?”
“가족도 친척도 아닌데 왜 도와주세요?”

민들레 국수집을 도와주시는 분들도 그냥 도와주신다. 아무 조건도 없다.
오늘만 해도 어느 고마운 분이 김치를 보내주시고 요구르트를 선물해 주셨다.
가지 말린 것, 무말랭이, 시래기며 고구마 줄기 말린 것을 커다란 상자에

가득 담아 보내주셨다. 예쁜 옷을 손질해서 보내주신 분도 계시고,

만 원, 5천 원, 몇 달간 모은 돼지저금통을 통째로 보내주는 분도 계시다.

 

 

밥’보다 ‘사람대접’

 

민들레 국수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핀잔으로,

감사할 줄 모른다는 비난으로 사람대접 못 받고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
크고 화려한 교회 담 모퉁이에서 노숙을 하거나 자유공원 계단 밑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전철역사에서 더럽다고 쫓겨나 어쩔 줄 모르고 길을 헤매기도 한다.

 

동인천역을 지나다니면서 배고픈 사람들이 비참하게 길거리에서 끼니를 때우고,
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줄 세우는 사람들의 인정머리 없는 잔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배고픈 사람들을 앞에 세워놓은 채 설교를 하고 기나긴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다 식어버린 밥을 먹는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또 밥을 먹은 후에 설교를 하면

전부 가버리니까 먹기 전에 먼저 해야 한다는 열정이 가슴 아팠다.

 

그래서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을 흉내내어 민들레 국수집을 열었다.
배고픈 이들이 언제나 마음 편하게 식사하고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거리에서 주린 배를 채우는 분들에게 한 그릇의 밥보다

사람대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민들레 국수집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대접’이라
손님들이 눈칫밥 먹지 않게 무료급식이라는 표시를 내지 않도록 했다.
지금은 필요없어서 취소했지만 사업자등록도 하고 보통 음식점처럼 일반요식업 등록도 했다.
손님들께 잘 살라거나 기도하라고 잔소리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배고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음식이 남아 썩어 넘쳐나도 나눌 줄 몰라서 그렇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자발적인 나눔에 있다.
가진 것 없는 우리의 삶을 조금씩 나누기 시작할 때 비로소 해결할 수 있다.

 

 

 

 

 

누구는 노숙인이 되고 싶을까?

 

“세상에, 내가 노숙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나한테 이런 일이 있을 줄 어찌 알았겠어!
예전에 노숙자를 보면 게으르고 일 안하니까 저렇게 산다고 손가락질했는데,
내가 그 처지를 당해보니 꼭 그런 게 아니더구만.”

 

손님은 한참 동안 ‘게으른 사람에게 밥을 주면 더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라며

천 원짜리 한 장 나누지 않았던 자신을 책망했다.

몸 하나만 믿고 품을 팔아 살아온 사람들은 늙거나 아프면 도저히 살아갈 길이 없다.

 


이름을 불렀을 때 ‘꽃’이 되는 진실

 

손님들은 같이 노숙하면서 매일 얼굴 보고 함께 지내는데도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름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름을 부르고 말을 하는 행위는 무척 중요하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손님들은 어느새 자기 존재감을 잊으면서
홀로 설 용기를 잃고 자포자기하기 쉽다.
그래서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손님들 스스로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할지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게 되고
서서히 살아갈 의욕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처음엔 배고픈 손님들께 밥만 드리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손님들이 스스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손님들이 배만 채울 게 아니라 씻고, 낮잠도 자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면서

문화적인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국수집에서 조금 떨어진 자유공원 올라가는 곳에

어렵사리 희망 지원센터를 열었다.

 

 

 

 

사랑으로 하는 일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천년을 두고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김남주 <사랑>

 

2003년 민들레 국수집을 시작하면서 칠판에 적어놓고 마음이 흔들리 때마다 외웠던 시다.

피터 모린은 환대의 집을 찾아온 배고픈 노숙인들을 ‘하느님의 대사들’이라고 불렀다.
하지반 이 사실을 내가 직접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술 취해서 다른 손님을 못살게 굴거나 음식을 접시에 가득 담아놓고 남기는 손님들,
다른 사람이야 기다리든 말든 좁은 식탁을 혼자서 독차지하는 밉상손님들 때문이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술 한잔 들어가면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변해버리는 손님들에게

온갖 욕을 실컷 얻어먹기도 했고, 멱살을 잡혀서 끌려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지나온 날을 돌이켜보니 착한 분들이 훨씬 더 많았다.

 

민들레 국수집에서는 식사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손님들이 줄을 서지 않는다.
줄을 서면 첫번째 사람들부터가 아니라 꼴찌부터 식사를 들게 하기 때문이다.
손님이 많아서 기다릴 때의 식사 순서는 무조건 제일 많이 굻어 제일 배고픈 분 우선이다.

노숙인이나 배고픈 사람들은 모두 줄서기경쟁에서 밀려난 꼴찌들이다.
그런데 민들레국수집에서마저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밥을 먹어야 하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다.

 

순서에 상관 없이 가장 배고픈 분 먼저 식사를 들게 하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힘있는 사람이 힘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양보하고 배려하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먼저 식사하시는 분이 뒷사람을 배려해서 되도록 빨리 드시려 하고,

밥과 반찬도 다른 사람들 생각해서 적절하게 담아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언제나 구원투수처럼


비빌 언덕조차 없는 이들이 인생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고달픈 세상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등을 비빌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세상에 슬픔과 고통을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슬픔과 고통은 우리의 인생을 진지하고 맑게 해준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온전히 겪어본 사람은

고통을 피하려다가 고통을 겪는 사람과 달리 자비롭고 너그럽다.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슬픔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사람은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너그러움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