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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그것이 알고 싶다 위험한 소문 '찌라시'와 공지영의 <진지한 남자>

 

 

공지영님의 단편 <진지한 남자> 는 이른바 ‘카더라통신’이 어떻게 한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를 시종 담담한 유머로 포장해서 이야기해 나간 풍자소설이다. 

이 <진지한 남자>는 <맨발로 글목을 돌다>로 2011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공지영님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선정한 작품인데, 전혀 의도치 않게 하루 아침에 유명인이 되어 주위사람들부터 

시기와 질타를 받는 화가가 주인공이며, 그를 둘러싼 언론의 속물적인 자세를 비꼬는 풍자가

이 단편의 주제다. 개인적으로는 대상작인 <맨발로 글목을 돌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줄거리를 대략 짚어보면, 예술에 대한 자기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진지한 남자>는 타인의 이해타산에 따라 떠도는 말들에 의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다가

결국은 자신의 신념마저 뿌리채 휘둘려버리게 되고, 마침내 이러한 '카더라통신'의 희생양이 되어

"살아 있으되 숨만 쉬는 사람"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공지영님은 이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자신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때 공지영님의 책들은 출간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인기가 대단했는데, 그때 사람들은 질투와 시기어린 눈초리로 작가의 작품성을 떨어뜨렸다느니,

예쁜 얼굴로 책을 판다느니, 독자의 구미에 맞춰 책을 쓴다고 떠들어댔고, 이 때문에 

작가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듯이 7년간 공백기를 가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면서도 소문이 돌았다 하면

마치 기정사실처럼 이야기하면서 마녀사냥식의 여론재판이 벌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다수가 한쪽으로 이야기하면 무조건 기정사실화 한다.

 

증거가 명확치 않을 때 흔히들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바로 자신이면서

소문이 난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피해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자신이 한번 누명의 희생자, 오해의 희생자가 되어서 억울한 처지를 당해보지 않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폴 발레리가 말한 것처럼

"거짓말과 그것을 쉽게 믿는 성질이 하나가 되어 뜬소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사고에서도

배에 탄 아이들의 생사를 몰라 미칠 것 같은 부모들에게로 '배 안에 살아 있다'는 문자가 속속 도착했다.

아이들의 생존신호를 받은 사람들은 이를 믿고 한시라도 빨리 구조되길 기다렸지만, 해당문자들은

경찰조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번복과 오보의 되풀이, 정부와 언론이 제공하는 믿을 수 없는 정보들.

모든 것이 불투명한 혼돈의 상황에서, 우리가 정말로 믿을 수 있었던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위험한 소문 '찌라시'>에서는

일명 카더라통신에 더 현혹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전문가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공신력 있는 집단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찌라시와 유언비어, 루머가

더 통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검찰이 성매매에 연루된 연예인을 수사한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연예인들의

이름이 적힌 '연예인 성매매 리스트'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순식간에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리스트에 오른 연예인들이 곧바로 강경대응을 하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닌 유언비어였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 뜬소문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연예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뜬소문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연예인들뿐만이 아니다.

2013년 5월 미국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 기간 중에 윤창중 전 대변인은 주미대사관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20대 교포 여성과 술을 마시다가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았는데,

이때도 그 사건과 젼혀 관계가 없는 한 여성의 사진이 '윤창중의 그녀'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심지어는 실명과 직장 이름까지 공개됐고, 그 거짓소문은 곧 사람들의 입과 소문을 타고 사실로 둔갑했다.

 

 

 

 

또한 이른바 '별장 성접대 리스트'가 떠돌고, 별장 성매매 사건 당시 촬영된 동영상에 나온 인물이라며

특정인의 이름이 근거없이 리스트에 오른 적도 있는데, 그때 지목되었던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은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을 호소하며 이런 거짓소문이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찌라시가 흘린 루머로 직장은 물론 명예가 실추돼 힘들었던 전 국회의원 보좌관도 있다.

그가 미혼 여비서를 성폭행했다는 거짓소문이 떠돌았던 것이다.

그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예전엔 찌라시나 루머를 볼 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싶었는데

내가 직접 겪고 나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더라"라고 억울함을 털어놨다.

 

 

 

 

이러한 루머의 근원지는 바로 '증권가 찌라시'였다.

이처럼 전염성과 중독성 강한 찌라시는 무엇이며 누가, 왜,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SBS 제작진이 만난 찌라시 유통업자는 1년에 500만원을 지불하면 암호가 설정된 PDF 형식의

찌라시 파일을 메일로 보내준다고 했다. 이 유통업자는 찌라시를 만드는 사람이 누군지,

왜 만드는지 알 수 없지만 "정보맨이라 불리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난다. 상류사회라고,

정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인다", "모임이 폐쇄적이라 아무나 끼워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서 찌라시 판매업자는 "기업에서 70년대 유신정권하에 살아남기 위해 정치, 경제동향을 알고자 했다.

전쟁터나 다름없었다"고 찌라시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 대기업 임원이 경쟁사

임원에 대해 나쁜 정보를 흘려 명예를 실추했다. 이는 역정보인 거다. 여기서 찌라시의 문제가 나온다"며

"정확도가 높을 때 정보에 가깝고 허위 쪽으로 갈 때 찌라시가 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의 말에는 힘이 있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처가 깊어지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연예인도 있고,

누명을 쓰고 재판에 져서 죄를 선고받은 후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한 사람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 때문이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고 전하는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되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 해준 <진지한 남자>와 <그것이 알고 싶다-위험한 소문 '찌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