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로 시작한 SBS 주말드라마 <엔젤아이즈>는 아픈 가족사 때문에 첫사랑을 떠나보낸
남녀 주인공 동주(이상윤)와 수완(구혜선)이 12년 후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아직 1회밖에 못 보았는데, 첫 회에서는 아역 탤런트들이 등장해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수완(남지현)이 간신히 살아남지만 눈을 잃게 되고, 역시 그 사고로 구조대원이었던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 동주(강하늘)가 남몰래 수완(남지현)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한편 눈이 안 보이게 된 수완은 살아 있기에 무슨 일에든 쓸모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천문대에서 별자리를 설명해 주는 일을 하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동주는 우연히 수완을 보러 갔다가 수완이 눈이 안 보이는 것 같다며
장난을 치고 놀리는 남학생들과 맞부딪치게 되자 그 남학생들에게 분노의 주먹을 날립니다.
그리고는 화를 내기는커녕 연신 "잘못했다"며 머리를 조아리는 수완을 밖으로 끌고 나가
"사람들에게 조롱받으면서까지 꼭 천문대 일을 해야 하냐, 안 보이는 게 네 잘못이냐"면서
"그렇게 보이는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기를 쓰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그러자 수완은 "네가 그까짓 것이라고 하는 자리까지 3년 걸렸다"고 화를 내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사람들은 그러지. 매일매일 습관처럼 하는 일들, 너무 쉬워서 눈 감고도 할 수 있다고.
그런데 그런 일은 없더라. 진짜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동주는 수완이 겪어온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두건으로 눈을 가리고 거리로 나섭니다.
하지만 몇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가 없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은 더더욱 힘겨워 사람들과 부딪친 동주는
자동차들이 클랙슨을 울리며 속력을 내어 거침없이 달리는 도로 한복판에서 쓰러지며 두려움에 몸을 떱니다.
그렇게 직접 실행을 해보고서야 비로소 눈이 안 보이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이며 고통인지를
이해하게 된 동주는 다시 수완을 찾아가 "내가 잘못했다. 몰랐다. 이렇게 힘든 줄은.
이렇게 아플 줄은. 참말 몰랐다"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빕니다.
지금 8회 정도까지 <엔젤아이즈>가 진행된 듯한데, 첫 회만 보고 이 드라마를 포스팅하게 된 이유는
주인공 동주가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두건으로 눈을 가리고
거리로 나선 것을 보고 몹시 놀랐기 때문입니다. 여느사람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도 쉽지 않고,
또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하더라도 선뜻 실행하기는 어려운 일일 텐데, 그런 장면을 그려낸 작가가 놀랍기도 했구요.
역지사지..라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얼마 전에 종영한 막장드라마의 대명사였던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는 가훈으로까지 등극한 고사성어입니다.
"남의 신을 신고 보름 동안 걸어보기 전에는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삼가라"는
인디언의 기도문도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사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들은 단 한 번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잘 알면서도
무조건 자기 입장만 내세우다가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는 일이 허다하지요.
우선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대표적 예입니다.
그리고 보통은
남이 일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 느린 것이고, 내가 그러면 일을 철저히 하는 것,
남이 제때에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게으른 것이고, 내가 그러면 너무 바빠서 그런 것,
남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하면 탈선이고, 내가 그러면 주도적으로 일할 줄 아는 것,
남이 자기 의견을 내세우면 고집이 센 거고, 내가 그러면 의지가 굳센 것,
남이 예의에 어긋난 짓을 하면 버릇이 없는 것이고,
내가 그러면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원장인 양창순님도 <당신 자신이 되라>에서 이 점에 대해 짚으면서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 글도 요약정리해서 함께 올려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극적인 연애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연애가 다 쓰라리고 애달프다.
또 결혼생활이 불행한 사람은 알콩달콩 재미있는 결혼도 더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법이다.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을,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을,
상처를 주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겪은 것,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만이 나를 이루는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나르시시스틱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장미의 전쟁>이라는 오래된 영화가 있다.
부부가 서로를 미워하다 못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전투를 벌이듯 싸우는 것이 기본 줄거리였다.
극단적인 블랙코미디로,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더 잔혹한 방법으로
상대방을 골탕먹이던 커플은 결말에 이르러 마침내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냉소적이고 어두운 유머로 가득차서 다소 으스스한 데마저 있는 영화이지만,
재미있게 보았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전혀 다른 감상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이혼한 여자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도 지독한 적개심과 복수심에 시달려 거의 숨도 쉴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그런 심정이 되었을까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영화 <장미의 전쟁> 올리버(마이클 더글러스)와 바바라(캐서린 터너)는 첫눈에 반해 결혼하지만
경제적, 물질적 안정을 이루고 나자 사소한 것으로부터 의견충돌이 잦아진다. 대화도 줄고 자존심만
내세우는 둘은 이혼한 후에도 한지붕 아래에서 살며 생사의 전쟁을 벌인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자신의 경험에서 얼마나 자유롭지 못하는지를 새삼 깨우쳐준다.
영화 한 편을 보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전부 투사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따라서 삶의 여러 질곡 앞에서 균형감각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때때로 터무니없는 편견이나 흑백논리에 갇혀 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즈 돌토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 버린 것들을 자신의 내면에서 다시 찾는 순간 성장한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주장하지만, 어느 순간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내가 모르는 생의 이면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리라.
자기만이 옳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거기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논리에 맞으면 무조건 옳고 아니면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
사람들을 대할 때도 자기만의 시각에 갇혀 다른 면은 전혀 보지 못한다.
심지어는 자기 가치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인간의 부류에도 안 넣으려고 한다.
당연히 인간관계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지만, 그 책임 역시 남에게 있다.
나는 옳고 상대방은 틀렸기 때문이다.
병적인 나르시시즘의 극단을 보여준다고 할까.
그런 함정에 빠지기 싫으면 늘 열린 시각,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 애써야 한다.
첫번째 방법은 유머감각을 키우는 것이다.
늘 뚱해서 다른 사람을 재단하기만 해서는 순발력도 유머감각도 생겨날 여지가 없다.
편협하고 완고한 사람은 농담의 대상이 되는 걸 못 견뎌한다.
하지만 유머감각이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웃을 수 있는 능력이다.
따라서 유머감각을 키운다는 것은 곧 자신의 완고함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두번째 방법은 인간관계에서파스텔 색조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흑과 백으로만 분류하기엔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은 너무도 다양하다.
우리는 무지개가 일곱 색깔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컴퓨터로 분석해 보면 무지개 속에는 수많은 색깔이 들어 있다고 한다.
우리 개인이나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당당한 색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잠재력 개발에 성공할 후 잇다.
인생을 힘들어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에 대하 흑백논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나 남에 대해 이런저런 단정을 하지 말자.
예상치 못한 면이 튀어나와도 이제껏 몰랐던 새로운 면이 있구나 하고 이해하고 수용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을 넓혀갈 수 있다.
또한 인간사의 파스텔 색조를 발견하도록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