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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보는 세상/음악/문화/공연

[명화의 치유력] 로트렉 그림을 통해 상처와 아픔을 매만지다

 

 

얼마 전 어느 블로그 친구님 댁에서 상황에 따라 몸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만드는

부엉이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상대에게 강하게 보이기 위해

마치 진빵처럼 몸을 부풀리는가 하면, 강한 상대가 나타나면 앗 뜨거라 하는 표정으로

몸을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홀쭉하게 만들더군요.

 

그러고 보면 몸의 크기나 키가 힘을 상징하는 것은 분명한가 봅니다.

영화 <부시맨>에서도 꼬마는 위협적인 동물을 만나면 들고 다니던 막대기를

머리 위로 세워 자기가 더 크다는 것을 나타내곤 했으니까요.

또 사람들은 키가 작거나 몸집이 왜소하면 그것을 상쇄시키기 위해 굳이 목소리를 우렁차게

내려고 애쓰거나 힘센 척하거나 실제로 태권도며 유도 같은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등 독재자들 중에는 키가 작은 경우가 많고,

그렇듯 악랄한 독재를 행사했던 힘은 키가 작은 데 대한 열등감이 바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그렇듯 키가 작은 데서 비롯된 콤플렉스를 그림으로 승화시켜 낸 

화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1864-1901)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그림 중 자화상을 모아본 것입니다.

 

 

로트렉의 자화상 

 

 

로트렉은 열세 살과, 열네 살 때의 두 번의 사고로 다리의 발육이 정지되어 150센티미터 남짓에서

성장이 멈추었다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발달한 상체와 어른스러운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다리를 가졌기 때문에 그의 외모는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총망받던 명문가의 자제가 난쟁이가 되어버린 겁니다.

 

정상적인 성인의 사고와 성인의 욕구를 가진 명문가의 남자가 이 같은 신체적 결함을 가졌을 때,

그 심리적 갈등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적 갈등’은 다루기에 따라서 삶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삶을 발전시켜 나가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로트렉 스스르도 "내가 키가 작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 말에서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그림을 그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트렉과 물랑루즈 지배인 샤를 지들러

 

 

전통적인 화단 출신의 화가가 아니었던 그는 기이한 행동과 스캔들, 또 환락가의 풍경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서 ‘퇴폐화가'라는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광고 및

다양한 디자인의 포스터를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그는

어떤 유파나 예술사조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삶을 예술로 녹여낸 화가였습니다.

 

 

거울 앞에 선 자화상

 

 

위 그림은 화가로서 인물을 위한 많은 소묘를 한 로트렉이 유화로 그린 초기의 작품이며

많은 화가들이 그러하듯 가장 가까운 모델인 자신의 얼굴을 놀랍게도 16세 때 그려낸 수작입니다.

자신의 콤플렉스인 하체는 표현되지 않은 채 신체의 절반가량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인물의 표정에서 16세의 소년이 가지기 어려운 고독이 배어 있는 듯합니다.

 

로트렉의 작품에 드러난 갈등의 승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가진 심리적 갈등을

이해해야 합니다. 로트렉과 같은 신체적 결함을 갖는 마음에 어떤 갈등을 일으킬까요?

일차적으로는 몸 자체가 가지는 생동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을 겁니다.

운동을 하고, 성생활을 하고, 춤을 추고,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는 모든 활동에서

완전하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차적으로는 소외감과 열등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리적 갈등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이 대처하기에 따라 심리적 갈등은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창조적인 형태로 승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트렉 또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창조적인 의미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의 작품은 자신만의 갈등을 승화시킴으로써 예술적인 면이나 치료적인 면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으니까요.
  
  

<로트렉을 그리는 로트렉>

 


로트렉은 타인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도 희화화해서 그리기를 꺼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고통 혹은 비애를 진지하게 드러내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것을 오히려 스스로 선수를 쳐서 희화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요.

실제로도 일상생활에서의 그는 더없이 밝고 천진난만할 정도로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작품에서 항상 느껴지는 깊은 인간애는 고달프고 힘든 삶과 결코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로트렉은 항상 위트와 쾌활함을 지니기 위해 노력했고, 

이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역설적인 삶의 표현방식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의 작품이 오늘날 높이 평가받는 것도 바로 이런 특성 덕분이지요.

 

▷ 참고도서 <심리학, 명화 속으로 떠나는 따뜻한 마음여행>(김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