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로 읽는 단어의 어원과 역사 7선
우리가 늘 보고 듣고 먹는 먹거리인데도 그 단어의 어원과 역사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이자 [단어로 읽는 5분 한국사]의 저자인 김영훈 박사는 단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역사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 중 먹거리의 단어의 어원과 역사 7선을 발췌하여 요약정리해 보았습니다.
김영훈 박사가 들려주는 [먹거리로 읽는 단어의 어원과 역사 7선]입니다. 일상 속 먹거리들 속에서 역사와 선조들의 생활상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먹거리로 읽는 단어의 어원과 역사 7선
1 굴비
굴비는 소금에 절여 만든 조기를 말한다. 굴비라는 이름으로 불린 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굴비라는 단어가 말린 조기의 모습에서 왔다는 것이다. 조기를 짚으로 엮어 말리는 과정에서 점점 머리와 꼬리 부분이 아래로 처지는데, 이 모습이 굽은 등처럼 보여 '굽이'라고 부르던 것을 점차 구비, 굴비로 바꿔 불렀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설은 900여 년 전 고려시대에 일어난 '이자겸의 난'과 관련이 있다.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은 당시 정주라고 불렸는데, 정주는 이자겸이 반란에 실패하고 귀양을 갔던 곳이다. 이곳에서 이자겸은 굴비를 처음 맛보았는데, 혼자 먹기에 아까웠는지 자신을 폐위시키려고 한 인종에게 굴비를 진상한다.
이때 그는 굴비를 한자로 '屈非'라고 써서 함께 보낸다. 한자를 직역하면 '굽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자신이 귀양오긴 했지만 절대로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보낸 것이다. 수도 개경에서 최고의 복락을 누릴 때는 맛보지 않다가 귀양을 가서야 먹어본 굴비 맛은 어땠을까? 또 인종에게 보낸 정주 굴비의 맛은 어땠을까?
먹거리로 읽는 단어의 어원과 역사 7선
2 막걸리
한국의 대표 전통주는 여전히 막걸리다. 쌀, 누룩, 물 세 가지 원료로 만드는 막걸리는 가장 신선한 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막걸리가 익는 데 3일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름의 뜻도 쉽다. '막 걸러서 먹는 술'이라고 해서 막걸리로 불렸다.
옛적부터 농사일이나 힘든 집안일을 하다가 마시는 막걸리는 목 넘김이 시원하고 포만감을 줄 뿐 아니라 영양에도 좋았다. 오늘날에도 농사일을 하면서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막걸리를 농주農酒라고 부르는 지역이 많다. 막걸리는 탁주濁酒라고도 불린다. 맑은 술을 뜻하는 청주淸酒와 대조되는 의미다. 청주는 백자로 된 잔이나 놋으로 만든 잔에 마시지만 막거리는 그 이름만큼이나 소박한 잔에 마셔야 제격이다.
이처럼 농민과 서민들에게 사랑받던 술이 한때 금지된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넌 가뭄 등으로 쌀이 귀해지면 쌀로 술을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 큰 흉작이 든 1785년에는 궁중의 제사에도 술 대신 차를 썼다. 해방 후 막걸리가 다시 등장했지만, 전통적인 주재료인 쌀 대신 밀가루로 술을 빚으면서 맛이 달라지자 예전만큼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 지방의 특색 있는 방식으로 제조된 막걸리가 출시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3 비빔밥
비빔밥은 원래 한자로 '골동반骨董飯'이라고 했다. 1800년대 말엽에 편찬된 저자 미상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는 비빔밥을 한자로 '골동반骨董飯'', 부뷤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문인 동기창이 쓴 [골동십삼설]에서도 비빔밥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동기창은 분류되지 않은 옛날 물건을 통틀어 '골동'이라고 부르면서 이 뜻을 이용해 여러 가지 음식을 혼합해 조리한 국을 골동갱骨董羹, 밥에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서 익힌 것을 골동반이라고 소개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 홍석모가 세시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에서도 골동을 뒤섞는다는 뜻으로 사용했는데, "젓, 포, 회, 구운 고기 등을 밥 속에 집어넣은 이것은 곧 밥의 골동이다"라며 비빔밥을 소개하고 있다.
'비빔밥'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이후부터로 보인다. 비빔밥이라는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바쁘게 일하는 농번기에 들에서 먹기 편하게 만든 음식이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궁중에서도 구색을 따지지 않고 간단히 먹고 싶을 때 비빔밥을 먹었다고 하니 실용적인 면에서 유래한 음식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4 소주
8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소주는 '태울 소燒'와 '증류 酎'로 구성된 한자어로, '태워서 만든 술'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태울 소燒' 대신 '불 화火'를 써서 화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름부터 거창하게 느껴지는데다 만드는 법이 남다른 소주는 원래 귀족들이나 마실 수 있던 고급 외국 술인데, 13세기 무렵 원나라가 고려에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끼친 후 한반도에 알려졌다. 하지만 원나라, 즉 몽골 역시 소주의 원산지는 아니며, 그들 역시 아랍에서 소주를 수입했다. 실제로 소주는 고려시대에 '아락주'라고 불렸는데, 아랍어 '아라크araq'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고려시대 귀족들이 마신 소주는 오늘날 마시는 소주와는 달랐다. 지금의 소주는 역사가 50년밖에 안 된다. 쌀을 충분히 먹기 어렵던 시절인 1965년 정부가 법으로 소주를 원래 제작 방식인 곡식으로만 증류하던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먹을 곡식도 모자라다 보니 곡식이 많이 소비되는 전통식 소주를 제한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에탄올에 물과 감미료를 섞은 오늘날의 희석식 소주가 탄생했다. 이 법 덕분에 누구나 마실 수 있을 만큼 가격이 저렴해지기는 했다.
5 수박
수박은 고려시대에 원나라로 귀화한 고려인 홍다구가 개성에서 돈을 벌 목적으로 들여와 재배한 것인데, 큰 돈을 벌지는 못햇다고 한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로, 사막 기후에서 잘 자라는 과일이었 때문이다. 그래도 홍다구 덕분에 귀족들 사이에 수박이 알려지자 수박은 곧 인기있는 과일이 되고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실제로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수박 한 통 값이 쌀 반 가마니 값과 같아서 '금박'으로 불리기도 했다.
수박이 워낙 귀한 과일이다 보니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진상되었는데, 중간에서 관리들의 개입이 심해 민초들이 큰 고초를 겪었다. "평생토록 수박을 심지 않은 까닭은 아전 놈들이 트집 잡고 시비 걸까 무서워라네"라는 정약용의 시에도 당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수박을 잘 키울 수만 있다면 요즘 말로 대박이 나는 셈이었는지 "되는 집에는 가지에 수박이 열린다"는 옛 속담도 있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 '수박 겉핥기' 등 수박 관련된 속담이나 관용구나 많은 것을 보면 수박이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잡은 대표적인 서양 과일임을 알 수 있다.
6 참외
참외는 최고를 의미하는 순우리말 '참'과 오이를 뜻하는 '외瓜'자가 합쳐진 말이다. 즉 최고의 오이라는 뜻이다. 오이나 박처럼 넝쿨식물인 참외는 삼국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의 참외 모양과 맛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고려시대에 참외의 형태를 본떠 청자를 만들었다는 기록과 청자 모양을 통해 오늘날의 참외와 비슷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보 제94호로 지정된 청자의 몸통은 참외 모양과 거의 같은데, 마치 참외의 꽃잎 같은 8개의 잎이 이어지는 듯한 윗부분은 매우 얇고 넘실대는 곡선을 빚어내고 있다. 세계 최고의 청자 제작 기술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과일 모양과 접목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청자 참외 모양 병은 우리나라의 매우 독특한 유산이다.
7 탕수육
탕수육은 중국식 한자로 '糖醋肉'이라고 쓰는데, '엿 탕糖'과 '식초 초醋', '고기 육肉'이 합성된 말이다. 이를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탕추러우'라고 한다. 탕수육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달고 신맛 나는 고기'라는 뜻이다.
탕수육의 유래에는 중국인들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아편전쟁이 연관돼 있다. 영국이 청나로에서 차, 도자기 등을 구입하면서 청나라에 아편을 판매했는데, 이 아편이 여러 가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청나라는 아편을 몰수해 폐기했다. 이를 빌미로 영국은 1840년에 전쟁을 일으켰고, 자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만하던 청나라는 이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만다. 그 결과 홍콩을 내주고, 다섯 개의 항구를 개방하게 된다.
이후 영국인을 비롯한 여러 유럽인들이 청나라로 들어왔고, 그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는 과정에서 탕수육이 탄생했다. 이렇게 탄생한 탕수육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임오군란 이후 정착한 청나라의 화교들이 중국집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상, 먹거리로 읽는 단어의 어원과 역사 7선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