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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가버나움 무책임한 부모를 고소한 레바논의 12세 소년 자인

가버나움 무책임한 부모를 고소한 레바논의 12세 소년 자인

 

지난달(2019년 2월)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인도에 사는 27세의 청년이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이유로 부모를 고소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부모에게 특별히 원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태어나면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데 아기를 낳는 것은 잘못됐다"며 고소하는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낳은 게 죄가 된다니,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소중히 자식을 키워온 부모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소리다. 하지만 그 청년의 부모는 언짢아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독자적 사고를 가진 젊은이로 성장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가버나움 무책임한 부모를 고소한 레바논의 12세 소년 자인

 

그런데 여기 부모를 고소한 또 한 소년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가버나움](나딘 라바키 감독)의  주인공인 자인(자인 알 라피아)이라는 12세 소년이다. 그가 부모를 고소한 데에는 앞에서 소개한 청년처럼 낙낙한 분위기가 아니라 끔찍하리만큼 절박한 상황이 있다.

 

사진으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어린 나이에 삶의 의욕이라고는 1도 없는, 마치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표정이다. 사진의 인물은 실제 인물인 자인 역을 맡은 자인 알 라피아인데,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이 아이 역시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던 시리아 난민 소년으로 베이루트 지역에서 [가버나움]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영화에 첫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버나움 무책임한 부모를 고소한 레바논의 12세 소년 자인

 

몇 주 전, 강론의 주제는 인도의 달리트 계급, 즉 불가촉천민을 어떻게 하면 체계적으로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이었다. 극심한 계급사회인 인도에서 그 계급에서조차 속하지 못한 사람들, 손길조차 닿은 것을 터부시하여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리는 그들의 삶은 최소한의 생존환경도 보장되지 않는 개돼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극악한 삶이다. 내가 그들과 같은 참혹한 삶을 겪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행운을 얻은 덕분일 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가버나움, 내전 후 레바논 사람들의 삶도 참혹하기로는 그들 못지 않다. 하물며 아이들이 무슨 죄라고! 도저히 살기 힘겨운 집에서 도망쳐 나온 자인은 우연히 어느 아주머니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또 불법체류자여서 붙잡혀 간 바람에 자기에게 잠자리며 먹을것을 챙겨준 보답을 하느라 그 집 아이를 돌보게 된 자인이다. 자기 피붙이도 아니고 생판 남남인 아이이지만 우유도 먹여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잠도 재워주며 돌본다.

 

 

12세 어린 소년도 이렇게 남의 집 아이마저 돌볼 줄 아는데, 정작 자인의 부모는 자식들을 거의 방치한 상태다. 심지어 자식들의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아서 자인은 엄연히 존재하되 기록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다. 게다가 자인의 부모는 딸을 나이 많은 남자에게 결혼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데, 안타깝게도 얼마 안 돼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진다. 이에 분노한 자인은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게 된다.

 

자식을 전혀 돌볼 수 없는 상황임에도 무작정 자식을 낳고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부모들도 알아야만 한다. 자신들도 죽어라 열심히 살고 있다는 변명으로 울며 불며 호소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닌 것이다. 더욱이 자인의 엄마는 그 지옥 같은 지경에서도 또 아이를 가졌는데, 자인이 엄마에게 정말 한심한 일 아니냐고 말하자 그에 대한 엄마의 대답이 가관이다. 신께서 하나를 거둬가셨으니 또 하나를 주신 거라는 것이었다.  

 

 

그게 딸을 팔아먹고 죽게 한 엄마가 할 수 있는 대답일까? 그런 상황에서 임신한 것을 또 하나의 선물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다니, 참으로 무책임한 부모라 할 수밖에 없다. 어린 아들의 생각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모라면, 그래, 자식에게 고소를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들만이 아이들의 삶을 망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온 세계에 어른들 싸움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이 영화에 나오는 실제 인물들은 그나마 나중에라도 자리를 잡은 듯하지만., 그들 말고도 최악의 환경에서 죽지 못해 목숨을 부지하면 사는 아이들은 어찌하나. 정말 답이 없다. 그런데 정말 답이 없는 걸까? 어떤 방법으로든 답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나딘 라바키 감독 

 

[가버나움]은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최장 15분간의 기록적 기립박수가 터진 영화로 심사위원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 영화를 연출한 레바논 출신의 나딘 라바키 감독은 제작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레바논은 현재 난민 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경제 문제로 연결되고 있고 그래서 거리의 아이들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일상이 되어버린 풍경에 나는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가 왜 이런 범죄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을까?’ 이 아이들을 지속적인 위험에 방치하는 건 진짜 범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아이들을 지나쳐버리기만 한다. 아이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 문제에 대해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지 먼저 알고 싶었다.” 

 

 

칸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후 자인과 가족들은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을 받아 2018년 8월 노르웨이에 정착했다. 현재 14세가 된 자인은 생애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게 됐다. ‘요나스’를 연기한 트레저와 가족들은 불법체류 중이던 레바논을 떠나 케냐로 돌아갔다. 트레저도 곧 학교에 다닐 예정이며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사하르와 메이소운 역을 맡은 시드라와 파라는 베이루트의 거리를 벗어나 유니세프의 특별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 제작진은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가버나움재단'을 설립했다고 한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갈릴리 바다 북쪽 해안마을이며, 히브리어로 가버나움은 ‘나훔(위로자)의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대로라면 좋겠다.

 

이상, 가버나움 무책임한 부모를 고소한 레바논의 12세 소년 자인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