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개봉영화(2018년) 명당 협상 원더풀 고스트 물괴
올 추석 전후로 김광식 감독 조인성 주연의 [안시성]을 비롯하여 [물괴], [명당], [협상], [원더풀 고스트] 등 여러 편의 영화가 상영됐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이루지 못한 듯하다.
[안시성]은 누적관객수가 550만 명에 이르지만 제작비가 워낙 높아 손익분기점을 못 넘긴 듯싶고, [명당]과 [협상], [원더풀 고스트]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협상]은 추석 개봉영화로는 좀 어울리지 않지만, [명당]이나 [물괴], [원더풀 고스트]는 추석연휴를 맞아 가족끼리 보러 가기에 안성맞춤인데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추석 개봉영화(2018년) 명당 협상 물괴 원더풀 고스트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지관 박재상은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는 장동 김씨 가문의 계획을 막다가 가족을 잃게 된다. 13년 후, 복수를 꿈꾸는 박재상 앞에 세상을 뒤집고 싶은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이 나타나 함께 장동 김씨 세력을 몰아낼 것을 제안한다. 뜻을 함께하여 김좌근 부자(백윤식 김성균)에게 접근한 박재상과 흥선은 두 명의 왕이 나올 천하명당의 존재를 알게 되자 저마다 다른 뜻을 품는다.
추석 개봉영화(2018년) 명당 협상 물괴 원더풀 고스트
아무리 풍수지리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스토리로 했다 해도, 땅으로 시작해서 땅으로 끝나는, 오직 땅, 땅, 땅만 외치는영화 [명당]이다. 물론 좋은 땅을 찾아 부모님 묘를 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명당을 찾는 것을 넘어 이른바 '명당'으로 불리는 땅에 묻힌 관을 파내고 그 자리에 자기네 조상의 관을 묻는 정도가 되면 악랄하기 그지 없는 짓 아닌가? 그런 악랄한 짓을 한 사람들이 조상의 음덕을 좋은 땅을 통해 흠뻑 받고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살아서 남의 묫자리나 탐내는 악독한 짓을 하고도 명당을 찾기만 하면 대를 이어 권세를 누리며 잘살 수 있다는 전개가 힙겹게 살아가는 현실의 삶을 너무 허망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럼 지금 힘들게 사는 이유가 오로지 조상 묫자리를 잘못 쓴 탓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렇다면 너나할 것 없이 일손을 놓고 현재는 물론 자손들도 평생 배 두드리고 권세를 누릴 수 있는 땅이나 찾아다니면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직한 삶이 뭐 필요하며,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그렇다면 사필귀정이니 인과응보니 하는 것도 전혀 두려워할 것 없지 않을까.
너무 땅 얘기만 하면서 지루한 전개를 보여서 그런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인상적으로 남는 장면이 별로 없다. 그나마 조승우와 유재명의 케미가 볼 만했다고 할까. 아마도 배신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배신하는 없이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끝까지 함께한 두 사람의 우정을 높이 사고 싶어서였으리라.
오로지 땅에 얽애며 사는 사람들.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권세를 누리는 자들의 오직 한 목표인 듯하다. [명당]에서의 그들 또한 옷만 옛옷이고 무대만 조선이지 좋은 땅을 위해서라면 살인과 폭력도 불사하는 조폭들의 세계가 따로 없다. 덕으로, 지혜로 나라나 집안을 잘 다스리고 제대로 이끌면 그리 땅에만 목매지 않아도 자손들에게 더 큰 복덕이 내리게 될 텐데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일까?)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권세도 기우는 법이다. 바로 그 대단한 권세로 벌인 일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죽은 후에 묻힐 명당을 찾아 혈안이 될 게 아니라 살아 있을 때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사람 살리는 일을 하며 살아가라는 것이 [명당]의 교훈인 듯하다.
그로부터 10일 후, 경찰청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제 범죄조직의 무기 밀매업자 민태구(현빈)가 태국에서 한국 경찰과 기자를 납치하고 그녀를 협상 대상으로 지목한다. 이유도 목적도 조건도 없이 사상 최악의 인질극을 벌이는 민태구와 그를 멈추기 위해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협상가 하채윤, 남은 시간 12시간,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협상이 시작된다.
홈피 줄거리 소개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던 하채윤이 현장에서 인질과 인질법이 모두 사망하는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인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협상의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최고의 협상가인데, 충격을 받았다고 그토록 흔들려도 됐을까.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해야 할 협상에서 시종일관 찌푸린 얼굴과 갈피를 잡지 못하는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대응하는 것이 안타까움을 넘어 짜증을 불러왔다. 저 정도로 할 거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다 협상가가 돼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협상의 목적이 인질을 구하는 것인데, 급기야는 오히려 인질범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질범과의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해도 협상가가 감정적, 감상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협상가의 목표는 오로지 인질들을 구하는 것이지 인질범을 동정하고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악할 상황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전략상에서만은 아닌 감정적인 차원에서 인질범을 도우려는 모습이 과연 협상가로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협상 중에 밝혀진 비리를 저지른 집단의 무거운 죄도 당연히 응징해야 하겠지만, 거기에 경도되는 것은 협상가로서 실격이다. 아마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도중에 전도돼 버린 듯하다. 이래서는 백이면 백 협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심리를 간파하고 머리 위에서 노는 듯한 심리전도 없고, 어쩌면 손예진과 현빈의 애틋한 로맨스라도 넣고 싶었던 걸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조차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추석 개봉에 맞춘 영화로는 좀 어울리지 않아서, 또 [안시성]과 [명당]과 경쟁이 붙어서 관객들의 호응이 적은 줄 알았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중종 22년 거대한 물괴가 나타나 백성들을 공격하고, 물괴와 마주친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살아남아도 역병에 걸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이로 인해 한양은 삽시간에 공포에 휩싸인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영의정과 관료들의 계략이라고 여긴 중종은 옛 내금위장 윤겸(김명민)을 궁으로 불러 수색대를 조직하게 하고, 윤겸과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성한(김인권)과 윤겸의 외동딸 명(혜리), 그리고 왕이 보낸 허선전관(최우식)이 물괴를 잡으러 나선다.
중종실록 59권에 따르면, 물괴는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으며, 비린내를 풍겼다고 한다. [물괴]의 제작진은 이 글을 바탕으로 6개월 동안 20여 개의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고 왕까지 궁을 버리고 도망가게 만들 만큼 무시무시하고 괴이한 모습의 물괴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무섭거나 괴이하다기보다는지저분하고 더럽게 생긴 모습의 물괴였다. 물론 물괴가 잘생겼기를 바랄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꼭 그렇게 지저분하고 더럽게 보이는 모습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게다가 웬 토사물은 자꾸 그렇게 쏟아내는지 그때마다 비위에 거슬려서 나도 모르게 눈살이 눈살이 찌푸려졌다.
중종을 내세우고, 영의정이 나오고, 조선왕조실록을 기반으로 했다는 언급이 나왔으면 당시의 역사적 사실도 탄탄하게 엮어주어 흥미로움을 느끼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작정 물괴만 잡으러 다니는 데 온 시간을 다 바치는 것이 좀 안타까웠다.
더욱이 혼비백산하며 물괴를 잡으러 다니던 와중에 명이가 허선전관에게 "우리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해요"라는 멘트를 날렸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명이가 허선전과 혼인을 한 것을 보면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한데, 굳이 그런 어설픈 로맨스를 넣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중종 역을 맡은 박희순은 어느 역을 맡든 맞춤옷을 입은 듯한 연기를 보여주는 믿보배임에도 이 영화에서는 그리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만든 허상에 잡아먹힌 영의정 심운(이경영)이 물괴에 꿀꺽 잡아먹힌 모습을 본 것이 그나마 통쾌한 장면이었다.
딸 앞에선 바보지만 남의 일에는 1도 관심 없는 유도 관장 장수(마동석)에게 의욕과다 경찰 출신 고스트 태진(김영광)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 들리는 척, 안 보이는 척해도 장수에게 달라붙은 고스트 태진은 그에게 자신과 함께 이 동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함께 수사해 줄 것을 부탁한다.
'내 눈에만 보이는 고스트와의 합동수사’라는 신선한 설정 안에 유쾌한 웃음과 통쾌한 액션, 그리고 따뜻한 감동의 순간을 선사하겠다고 소개한 영화 [원더풀 고스트]이지만, 마동석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챔피언]도 보면서 어쩌면 이리도 재미없고 식상한 영화를 골랐을까 싶었는데, [원더풀 고스트]는 한술 더 뜬다. 마치 식어버린 숭늉 맛 같다고나 할까. [범죄도시]에서 보여주었던 그 대단한 위용을 그 후로 자꾸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김영광도 그렇고 최귀화도 그렇고 이유영도 그렇고, 다 개성 강한 연기를 펼쳐 보여주는 배우들인데, 이 영화에서는 도무지 자신만의 캐릭터가 살아나지를 않는 것 같다. 어울리지 않는 배역을 맡은 걸까. 어울리지 않는 배역을 맡아도 잘 살려내는 것이 배우들의 역량이라면 역량이긴 하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드라마 1회분을 본 것만도 못한 매력 없는 [원더풀 고스트], 요즘처럼 한국영화의 성장과 관람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가는 시기에 이렇게 영화를 무성의하게 막 만들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너무 혹평일까?
이상, 추석 개봉영화(2018년) 명당 협상 물괴 원더풀 고스트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